올해의 '지못미' & '깜놀' 히트작②

[★리포트]

김현록 기자  |  2009.12.08 07:30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불신지옥', '날아라 펭귄', '파주', '호우시절' <사진=영화스틸>
저물어가는 2009년, 올해의 영화계는 유난히 역동적이었다. 위기와 우려 속에 출발한 한국영화는 그러나 3년만에 1000만 관객의 초대형 히트작을 냈고, 2편의 800만 영화가 탄생했으며, 독립 다큐멘터리가 무려 300만의 관객을 모으기도 했다. 그 사이 작은 영화들은 '퐁당퐁당' 속에 종영하는 아픔을 맛봐야 했고, 호평 속에서도 흥행 실패를 곱씹어야 했다.

한 해를 정리하는 12월, 그래서 꼽아봤다. 올해의 '지못미' 영화들과 '깜놀' 히트작.

◈소중한 영화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불신지옥'(감독 이용주)
귀신들린 여동생과 광신도 어머니. 무속신앙과 교회조차 벗어난 극단의 믿음. 이를 제대로 다룬 공포영화가 언젠가는 한국에서 나오리라 했다. 그리고 올해, '불신지옥'이 그것을 해냈다.

'불신지옥'은 황량한 복도식 아파트를 배경으로 믿음과 불신, 광기와 폭력이 어우러진 현대의 살풍경을 치밀하게 그려냈다. 핸드폰 불빛에 의지한 지하실신, 현관문 자물쇠신 등은 참신하고만 공포스러웠다. 올해 등장했던 공포영화들이 대개 범작 내지 졸작에 머물렀던 점을 감안하면, 여름 최고의 공포영화라는 평가가 결코 과하지 않다. 그러나 이를 극장에서 알아 본 관객은 약 25만 명에 불과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감독 홍상수)
절묘한 제목을 계속 되뇌게 하는 홍상수 감독의 9번째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이름마저 의미심장한 감독 구경남에게 생긴 기막힌 봉변을 비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웃고, 말하고, 약속하고, 아는 척을 하는 평범한 속물들의 이야기가 '허허실실' 웃음에 담겼다.

고현정, 김태우, 엄지원, 공형진 등 화려한 출연진은 기꺼이 노게런티로 영화에 합류했다. 개봉 전 이같은 사실이 화제에 오르기는 했지만 흥행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관객 수는 고작 4만 명 가량. 영화의 저조한 성적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어느 때보다 관객에게 가까이 다가오려 했던 홍상수 감독의 신작이 철저히 외면 받았기 때문이다.

◆'호우시절'(감독 허진호)
섬세하게 사랑의 감정을 포착하기로 이름난 '멜로 감독' 허진호의 장점은 '호우시절'에도 변함없었다. 다만 씁쓸했던 사랑의 뒷맛이 보다 달콤해졌을 뿐. 유학 시절 애틋한 마음을 안고 헤어진 한국 남자와 중국 여자. 시간이 지나 다시 중국에서 만난 두 사람 사이에 피어난 설렘이 아름다운 영상 속에 담겼다.

채 30만이 될까말까 한 관객이 들 만한 영화는 아니었다. '지독한' 멜로, '터지는' 웃음, '장쾌한' 액션에 반응한 2009년의 관객에게 '호우시절'의 잔상은 너무 곱기만 해 밋밋했던 걸까.

◆'날아라 펭귄'(감독 임순례)
인권영화란 타이틀은 정말 흥행에 전혀 도움이 안 되나보다. 추석시즌 개봉한 '날아라 펭귄'은 약 4만 명의 관객을 모으고 상영을 마감했다.

'날아라 펭귄'은 한국을 살아가는 평범한 부모, 직장인, 부부의 이야기다. 자녀 영어공부에 목숨 걸고, 기러기 아빠 설움에 눈물짓고, 직장에 어울리느라 눈치보고, 아내에게 호통 치다 후회하고야 마는 우리 일상이 유쾌하고도 사랑스럽다. 인권영화라는 엄숙한 타이틀은 일찌감치 저 멀리 던져놨다.

인권영화란 타이틀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유는 단 하나다. 내년의 인권영화도 무사히 제작돼 극장에 걸릴 수 있을 것인지 기약할 수가 없다는 것.

◆'파주'(감독 박찬옥)
아내의 동생과 언니의 남편은 정말 사랑했을까. 안개 자욱한 무채색 도시 파주에서 9년에 걸쳐 벌어진 이야기를 담은 영화 '파주'는 친절하지 않다. 말로 표현 못할 복잡 미묘한 감정을 그저 보여준다. 두 사람의 마음을 직접이나마 보여준 건 뒤늦게 터져나온 한 마디의 고백 뿐. '파주'를 보면 스산한 침묵이,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이 얼마나 훌륭한 대사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러나 8년 만에 돌아온 박찬옥 감독의 절절한 신작을 극장에서 확인한 관객은 약 13만 명에 지나지 않았다. 서우 이선균의 호연을 눈으로 확인한 이도 마찬가지였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과속 스캔들', '워낭소리', '애자', '거북이 달린다' <사진=영화스틸>
◈늦게 발견된 영화들, 이렇게 만나 반가워

◆'과속 스캔들'(감독 강형철)
'과속 스캔들'은 올해의 첫 히트작이었다. 한동안 흥행이 부진했던 차태현과 알려지지 않았던 신인 박보영, 아역 왕석현을 내건 코미디 영화가 관객에게 첫 선을 보인 것이 지난해 12월말. 유쾌하고 즐겁다는 호평 속에 이어진 관객의 발길이 무려 800만에 달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과속 스캔들'은 연말연초 시즌, 코미디와 가족, 음악이라는 검증된 주제로 영리하게 관객들을 파고들었다. 세 배우의 척척 들어맞는 호흡, 편안하고 부담없는 웃음도 힘을 더했다. 영화의 흥행은 새로운 CF 스타 탄생으로까지 이어졌다. '과속 스캔들'의 코믹 3대는 현재까지도 TV를 누비며 CF계를 주름잡고 있다.

◆'워낭소리'(감독 이충렬)
늙은 소와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300만 관객을 울렸다.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 온 팔순의 노인과 그와 40년을 함께 한 이름조차 없는 '소'가 '워낭소리'의 주인공이다.

그들의 마지막 동행이 78분의 필름에 담겨 어렵사리 극장에 걸린 것이 지난 1월. 개봉관조차 제대로 잡지 못해 고전하던 '워낭소리'는 입소문에 입소문을 탄 끝에 올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 자리에 올랐다.

무려 300명의 관객이 극장을 다녀갔다.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사상 최고 흥행기록이자, 한국 독립영화 사상 최고 흥행 기록이기도 했다. 영화 카피 그대로, 모든 것이 기적이었다.

◆'애자'(감독 정기훈)
모녀의 코믹하고도 눈물겨운 이야기를 담은 멜로영화 '애자'는 추석 멜로 대전에서 한발 비껴난 틈새의 영화였다.

말썽많은 딸과 걱정많은 어머니의 투닥거림에서 시작해 슬픈 이별로 이어지는 '애자'는 '내사랑 내곁에'와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한판 승부를 앞두고 9월 초 일찌감치 승부를 걸었다. 이 선택이 주효했다. 입소문 속에 소리없이 흥행한 '애자'는 200만 관객의 눈물을 쏙 빼놨다.

철없는 부산 아가씨로 분한 4차원 아가씨 최강희와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배우 김영애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는 흥행 요소다.

◆'거북이 달린다'(감독 이연우)
올해 개봉한 영화 가운데 주연배우의 덕분에 화제가 됐고, 또 그 덕분에 히트한 영화를 꼽으라면 단연 '거북이 달린다'가 될 것이다.

'거북이 달린다'는 살벌한 탈주범을 쫓는 시골마을 형사의 좌충우돌 코믹 액션. 관객은 '타짜'의 악질 아귀에서 '추격자'의 강력반 형사에서 질기디 질긴 아저씨 형사로 분한 김윤석의 코미디를 보러 먼저 극장을 찾았다. 여기에 탄탄한 각본, 짜임새 있는 연출 덕에 흥행 속도가 더 붙었다. 결과는 300만 돌파. '거북이 달린다'는 여름 블록버스터 '해운대'-'국가대표'가 맞붙기 전 최고의 여름 히트작에 등극하며 짭짤한 흥행 성적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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