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영화계에 류승범의 저주란 말이 떠돌았다. 준비를 하는 작품마다 족족 엎어지거나 뒤로 미뤄졌기 때문이다. 온당히 배우의 탓으로 돌리기엔 적절하지 못한 말이지만 류승범은 고스란히 그 말을 감당해냈다.
류승범은 '라듸오 데이즈' 이후 2년 여 동안 작품 활동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미뤄왔다. 마침 한국영화가 침체의 늪에 빠졌던 기간과 같다. 이는 류승범이 활약할 수 있는 한국영화의 다양함이 줄어들었단 뜻이기도 하다.
류승범이 돌아왔다. 경인년 첫 선을 보이는 한국영화 '용서는 없다'에 그는 연쇄살인범으로 출연한다. 한 다리를 절면서 복수를 꿈꾸는 캐릭터, 어쩌면 류승범과 닮은 듯도 하다.
-2년 여 동안 작품활동을 제대로 못했는데. 불안하지는 않았나.
▶성격일 수도 있는데 욕심 같은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승부욕도 별로 없고. 그러다보니 조바심 내거나 불안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기간 동안 나를 돌아보고 좀 더 여유있게 됐다.
-이젠 흥행에 욕심이 난다는 소리도 곧잘 하는 것 같은데.
▶이 일을 오래 하고 싶으니깐. 상업 배우라는 타이틀로 활동하니깐 아무래도 결과물로 보여줘야 한다. 현실을 좀 더 직시하게 됐다고 할까.
-'용서는 없다' 뿐 아니라 몇몇 영화에 출연 응답을 했었다. 먼저 들어가는 영화를 하겠다고 했다던데.
▶어쩌면 건방져 보였을 수도 있다. 오래 동안 한 작품을 준비했던 분들에게는 안좋게 생각될 수도 있고. 그런데 연이 돼야 되는 것 같다. 류승범에게 작품은 인연인 것 같다. 아무리 피해가려고 해도 만나는 작품은 만나게 되고, 만나려고 노력해도 안되는 것은 안된다.
수비형 답변일 수도 있지만 모든 작품은 과정인 것 같다. 대신 작품에 임할 때는 최선을 다하고. 쉬는 동안 삶의 태도가 바뀐 게 예전에는 칼을 뽑으면 무조건 잘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칼을 뽑으면 계속 들고 있고 싶다. 예술이 인간을 선택하지 사람이 하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어찌보면 '올드보이' 유지태 같은 역이다. 다른 작품과 달리 감정을 지르지 않고 담아놓던데.
-상복 없는 대표적인 배우다. 누구를 이기려 연기를 하진 않지만 상대보다 더 나아가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는데.
▶상도 받아본 사람이 욕심 낸다. 난 아예 감흥이 없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역이 1등 죽이는 2등이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숀 펜이 객석에 앉아있는 '레슬러' 미키 루크에 공을 돌렸다. 난 미키 루크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 선수에게 인정받는 선수. 또 좋은 배우들과 대결할 때 희열을 느끼지 결과로는 아직 희열을 못본 탓도 있다.
-클럽 DJ 활동에 최근 부쩍 재미를 느끼는 것 같은데. 돈도 많이 번다는 소리도 있고.
▶DJ 피를 얼마 받는지 알면 깜짝 놀랄 것이다. 5만원도 못받고 할 때도 많다.(웃음) 그래도 너무 좋다. 연기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이쪽에서 배설하고, 이쪽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연기로 발산한다. 그 밸런스가 좋다. 남들이 사진이나 그런 취미로 균형을 맞추는 것과 같다.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가 최근에는 다시 홀로 일을 하는데.
▶일을 하다보면 정으로 하는 게 많은 것 같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내가 기도하는 것도 다 가짜가 되는 것 같고. 내 최종목적은 인격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일을 봐주는 친구와 이제는 서로 존칭을 쓰자고 했다. 그런 관계가 필요한 것 같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기부천사다.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이 수억원에 달하는데.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난 종교인으로 사는 게 너무 힘들다. 한혜진씨 정도라면 모를까 모든 게 거짓인 것 같고 그래서 혼란스럽다. 그렇기에 그런 일들이 알려지는 게 두렵다. 또 기부가 아니다. 십일조라고 생각한다. 원래 내께 아닌 것을 돌리는 것 뿐이다.
-결혼 계획은 있나.
▶보통 사람처럼 평범하게 결혼하고 평범하게 아기 낳고 키우고 싶다. 그러니깐 너무 늦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하고 싶다. 왜 예전에 결혼한다고 기사도 나고 그랬지 않나. 그 때 기도했었다. 우리는 모르지만 혹시 어떤 신호인가 싶어서. 시간이 흐르면 그저 자연스럽게 진행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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