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인기사극 '추노'는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나.
'추노', 처음엔 그냥 짐승남들의 가슴 짠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언년이(이다해)를 향한 짐승남 대길(장혁)의 가슴 아린 순정, 대길을 향한 짐승남 천지호(성동일)의 사나운 독기..'추노'는 또한 영화 '300' 같은 핏빛 칼부림 액션 사극인 줄만 알았다. 결정적 순간에 등장한 슬로모션과 부분 컬러로 심지어 유려하기조차 했던.
지난 4일까지 10회가 방송되면서 '추노'를 보는 심정의 8할은 기대감 내지 호기심이었다. 대길은 과연 혜원이가 된 언년이를 만날까, 만나면 어떻게 될까. 송태하(오지호)는 노비로 떨어진 옛 훈련원 동지들을 모아 거사에 성공할 수 있을까. 옛 훈련원 동기 철웅(이종혁)은 과연 속마음조차 저리 비정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천지호는 '추노'의 모든 등장인물 인생에 모질게 초를 칠까.
이러한 행복한 호기심과 기대는 '추노'라는 사극의 태생적 특성 때문이었다. '선덕여왕' '태왕사신기' '이산' '대조영' '태조 왕건' 등 왕조사극, 아니면 '대장금' '상도' '허준' 같은 인물사극. 어쨌거나 이들 사극의 결말은 시청자들 모두가 빤히 알았다. 덕만(이요원)이 훗날 선덕여왕이 되는 것, 임상옥(이재룡)이 당대 동아시아의 거상이 되는 것, 태생이 스포일러였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과정 그 자체를 음미했다. 그것이 매회 아이템을 얻는 롤플레잉 방식이 됐든, 매회 손바닥 터치로 이어지는 태그매치 양상이 됐든.
그리고 이러한 즐거운 상상은 '추노'가 매회 정성들여 내놓은 미장센 덕분에 더욱 즐거웠다. 송태하 등에 업혀가던 혜원이 떨어뜨린 돌멩이(이 돌멩이에 어떤 사연이 깃들어 있는지는 다 아시리라), 그리고 이를 낙엽 쌓인 땅바닥과 같은 높이에서 천천히 잡아낸 카메라 워크. "선봉은 언제나 제가 섭니다"라는 한섬(조진웅)의 듬직한 멘트와 함께 절벽에서 꽃처럼 떨어져 내리던 아름다운 조선의 무관들.
'추노'는 잘 알려진 대로 청에 볼모로 잡혀갔던 소현세자가 귀국 후 한 달 만에 의문사한 이후의 역사다. 그 세 아들이 제주로 유배를 가고, 얼마 안가 석철 석린 두 아들마저 죽고, 이제 막내 석견만 남은 그런 상황. 아직 인조는 임금의 자리에 있고, 훗날 효종이 되는 봉림대군(소현세자의 동생)은 세자로 책봉이 된 그런 시대. 좌의정(김응수)을 정점으로 한 대신들의 권모와 술수는 여전히 역겨운 냄새를 펄펄 풍기는 그런 참혹한 시대가 바로 '추노'의 배경인 것이다.
어쩌면 송태하 패거리들은 이런 비극을 더욱 비극답게 할 희생양에 불과한지 모른다. 홀로 살아남아 훗날을 기약해야 했던 한섬의 숨겨진 충심과, 물에 젖은 비밀문서를 꿀꺽 삼키며 내일을 꿈꾸는 옛 훈련원 무관들의 인고는 아름다울지언정 빛바랜 초롱불 아닐까.
이들이 마마로 모신 석견마저 품은 뜻을 펴지 못하고 이곳저곳 귀양 끝에 22세 나이에 숨졌으니까. 세상은 석견-송태하-한섬 같은 이들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무참히 앞만 보고 달려갔으니까. 하긴 졸지에 부모를 잃고, 졸지에 추노패가 돼 팔도를 떠돌아다닌 대길 역시 이 피비린내 역사의 또 한 마리 희생양이었다.
산은 정녕 강을 넘지 못하는 걸까. '추노'를 보면서 이 옛 말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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