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 감독 "난 박찬욱·봉준호보다 행복하다"(인터뷰)

전형화 기자  |  2010.09.10 12:03
이동훈 기자
장진 감독이 추석 시즌에 코미디 영화 한발을 장전했다.

16일 개봉하는 '퀴즈왕'은 여러모로 장진표 영화다. '퀴즈왕'은 4중 충돌사고를 겪은 사람들이 한번도 우승자가 없어 100억원이 넘는 상금이 누적된 퀴즈쇼 마지막 문제를 알게 된 뒤 퀴즈쇼에 도전한다는 이야기다.

수많은 배우들이 왁자지껄하는 군상코미디, 카메라에 30분째 한 장소에서 이동하지 않은 연극식 구성, 쉬지 않고 주고받는 말장난식 대사...'퀴즈왕'은 장진 감독 영화의 전형을 한 지점까지 끌어올리려 시도한 영화다.

이런 구성은 욕심을 비웠기에 가능했다. 장진 감독은 '퀴즈왕'을 한국영화 평균제작비의 10분의 1쯤 되는 3억5000만원으로 2주 동안 촬영했다. 김수로 한재석 정재형 등 이른바 장진사단 배우들이 출연료를 투자로 돌려 가능했다.

스태프도 마찬가지. 장진 감독은 "내가 찬스 한번 쓴다니깐 많은 사람들이 도와줬다"고 했다. 원래 번듯하게 개봉할 생각도 없었다. 장진이기에 가능했던 사연을 들었다.

-영화 초반에도 그렇고 중반에도 MB에 관련한 유머가 있는데. '굿모닝 프레지던트'에 이어 그런 부분이 있으니 의미심장한데.
▶그 부분에서 다들 '빵' 터진다.(웃음) 대중영화니깐 그다지 혐오스럽지 않게 애교스런 재미를 느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끝내고 저예산 영화를 만들었는데.
▶진짜 개봉 생각없이 시작했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주주지분제를 계약서에 명시했다. 배우, 스태프들이 원래 받는 돈 대신 지분으로 영화제작에 참여했다. 우리 제작사인 소란도 아예 제작대행으로 넣었다. 제작사 지분을 없앤 거다. 수익률도 200% 인정한다고 했고. 만일 '퀴즈왕'이 흥행에 성공해 220만명이 들면 원래 1000만원 받는 스태프는 3000만원을 넘게 받게 된다. 충무로 제작방식에 하나의 좋은 사례가 됐으면 했다.

-에필로그가 없다보니 뒷이야기들에 궁금증이 일던데. 돈이 없어서 못 찍었나.
▶이한위가 폐차장에서 살아나고 류승룡이 로또에 당첨되고 그런 에필로그가 있기는 했다. 마지막까지 고민했는데 물리적으로도 힘들었고 관객들이 그 뒤를 상상하게 만들고 싶었다. 돈 없어서 못 찍었단 것 '쪽' 팔리니깐 쓰지 말아달라.(웃음)

-군상 코미디고 연극식 구성인데.
▶'아들'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찍으면서 내가 생각해도 짜증날 만큼 순해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예 나답다고는 하는 끝을 보여주자고 생각했다. 연극식이라고 지적한다면 끝가지 연극식으로, 말장난이라고 뭐라고 했으니 말장난의 끝까지 가보자, 이런 생각을 가졌다. 애초 소규모로 개봉하고 TV에 판권 팔 생각이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갖고 찬스 한 번 쓴다고 하자 모두들 도와줬고.

-여러 사람들이 등장해 왁자지껄하는 방식이 어느 순간 트레이드 마크처럼 됐는데.
▶평면적인 구조보다 그런 병목적인 구성이 좋다. 사람들의 갈등이 체증이 생기고 그러면서 우월감이 생기는 방식. '아는 여자'처럼 주인공 몇 명이 이끄는 영화도 했지만 개인적인 취향이 이런 게 더 좋은 것 같더라.

또 군상들에 관심이 있다. 여러 사람들이 각자 삶이 있고 과정이 있고, 그 과정을 통해 정답이 아닌 무엇인가를 찾는 게 좋았다. 모든 질문에 답이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정답이 아니더라도 해결할 수 있고.

-일반 코미디에 익숙한 관객들에겐 이런 구성이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라 낯설 수도 있다. 그래서 장진 감독이 제작하면 터지는데 연출하면 관객이 덜 든다는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닐까.
▶내가 다른 감독과 다른 변별적인 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그런 걸로 꾸중도 듣고 핀잔도 많이 들었다. 어릴 적엔 고민도 많이 했고. 하지만 이제는 즐겁다. 나 같은 놈도 있어야지 싶고.

-'퀴즈왕'을 한 건 '굿모닝 프레지던트'에 대한 반성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던데.
▶없지 않다. 방식이랄까 그런 것도 그렇고, 순해졌단 느낌도 들었고. 다음 영화인 '로맨틱 헤븐'에 빨리 들어간 것도 비슷한 이유다. 애초 '퀴즈왕'으로 승부보자고 만든 게 아닌데 자꾸 그런 생각이 들까봐 빨리 영화를 찍으면서 잊자고 생각했다.

-수많은 문제를 직접 만들었나.
▶제작부와 같이 100개쯤 만든 것 같다. 내가 작가 출신 아니냐. 원래 퀴즈를 좋아한다. '골든벨'이 제일 재밌다. 가장 짜증나는 게 시청자에 먼저 답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형사 역에 직접 출연했는데. 원래 연기지도를 잘 하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이번에는 본격적인데.
▶다음에는 안할 생각이다.(웃음) 처음부터 내가 할 역은 없었다. 정재영이 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영화 속 그 역할을 하겠다고 하더라. 영리한 거지. 그 다음 신하균이 한다고 했는데 '페스티벌'이 늦어지면서 일정이 안됐고. 차승원도 '포화 속으로'가 늘어지면서 안됐다. 그러다보니 내가 할 수밖에 없었다.

이동훈 기자
-교통과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10년전에 직접 목격한 것이다. 교통과에 뺑소니 목격자로 갔는데 4중 추돌한 사람들이 와서 한창 시끄럽더라. 그런데 정말 영화에서처럼 다 세워놓고 경찰이 정리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교통과와 응급실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런 광경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교통과를 '퀴즈왕'에 응급실을 '로맨틱 헤븐'에 담은 것인가.
▶그건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니 너무 허무하더라. 그래서 그 뒤에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시나리오를 결혼하고 한 달 뒤에 썼는데 아내한테 내 유서라고 줬다. 내가 죽어도 이렇게 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로맨틱헤븐'도 '퀴즈왕' 같은 방식으로 제작하는데. 홍상수 감독 같은 방식으로 만드는 것 같기도 하고.
▶그건 아니다. 홍상수 감독 같은 제작은 그 분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난 투자비를 정상적인 방식으로 줬다고 계산하면 '퀴즈왕'도 14억원이 든다.

-미투데이로 열심히 사람들과 소통한다. 장진 코미디는 일방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여느 코미디와 달리 연극처럼 관객과 소통하려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게 특징인데. 그런 방식이 더 많은 관객들과 소통하는 것을 막아선다고 생각은 안하나.
▶그런 생각이 세상살이를 어렵게 하는 것 같다. 난 적지 않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고, 만만치 않게 사람들의 충고를 받고 있다. 그런 사람들 덕에 봉준호 김지운 박찬욱 감독보다 행복하다.

-세상에 던지고 싶은 퀴즈가 꼭 하나 있다면.
▶아~. 최근 몇 년간 받은 질문 중 최고로 난이도가 높다. 역시 퀴즈 내는 건 어려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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