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초 연기의 대명사, 김인권이 코미디 영화를 들고 돌아왔다.
1998년 '송어'로 데뷔한 그는 '아나키스트' '말죽거리 잔혹사' '숙명' '시크릿' 등 수많은 영화에 얼굴을 비추며 자신의 존재를 관객들에게 각인시켰다.
'방가? 방가!'는 그런 그의 12년 만의 단독 주연작품. 김인권은 취업난 때문에 부탄인으로 위장 취업을 하는 백수 방태식 역을 맡았다.
많은 매체가 앞다퉈 단독 주연을 꿰찬 그의 행보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있음에도, 그 자신은 별 감흥이 없었다. 이미 공동 주연을 맡아본 경험도 있고, 단막극을 통해 주연 연기도 해본 적이 있다는 설명. 정작 연기를 하는 동안에는 주연이라는 생각조차 못했다는 그다.
"시나리오 상 이야기의 흐름을 끌고 가는 인물이라 많이 등장해서 그렇지 사실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극 속에 등장하는 외국인 노동자 친구들이죠. 원래 영화의 원제도 '아세아 브라더스'였어요. 제가 포스터에 크게 혼자 나오고 눈에 띄어서 그렇지 사실 이 영화에서 방태식은 관찰자 역할을 수행하는 것일 뿐,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니에요. 주연이라고 뭐 폼 나거나 격정적인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니구요."
김인권은 88만원 세대의 취업난, 외국인 노동자의 애환 등을 담은 '방가? 방가!'의 시나리오를 받아들고 일종의 사명감을 느꼈다고 했다. 사회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한 영화라는 생각에 '시나리오를 망치지 말고 정말 좋은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고. 출연을 결정하는 데에는 무엇보다 육상효 감독에 대한 믿음이 크게 작용했지만 그 외에 아버지로서의 딸 사랑도 한 몫 했단다.
"첫째 아이가 팬티만 입고 발차기를 하다가 자빠지고 하길래 '왜 저러나'했는데 '조폭마누라'에서 제가 팬티만 입고 나오는 신을 따라한다고 그러더라구요. 그 때부터 작품을 고르거나 할 때 아이들도 신경이 쓰이게 됐죠. 애들이 크면 좀 센 작품이나 역할을 하더라도 어릴 때는 아이들에게 아빠가 부드럽고 착한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요즘도 텔레비전에 '방가? 방가!' 예고편이 나오면 '아빠 따라한다'고 난리거든요."
촬영을 2주 앞두고 급 캐스팅된 덕에 처음에는 어려움도 있었다. '부탄에서 온 방가인니다'라고 적힌 대본만 들고 어떻게 표현할지도 고민이 됐고 연기가 서툰 외국인 비전문 배우들과 호흡을 맞출 일이 걱정도 됐다고. 다행히 대본 리딩 때부터 직접 외국인 연기자를 무대 위에 올려 연기를 시키시는 감독님의 열정에 비교적 일찍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김인권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예의 '욕 강의' 장면을 꼽았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욕들을 가르치는 신으로 전체 극중에서도 가장 큰 웃음이 터지는 장면 중의 하나. 하지만 김인권은 촬영당시의 소감을 "짠했다"고 전했다.
"편집 되어서 없어진 대사 중에 '한국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을 때 욕인 줄 아셔야 해요'라는 대사가 있어요. 그게 알아듣지도 못하는 욕을 듣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을 반영하는 거잖아요. 웃긴 장면이지만 눈물이 나는 장면인 거죠. 현장에서 촬영할 때도 전혀 웃기지 않았어요. 그 사람(외국인노동자)들에게 진짜 가르친다고 생각하니까 짠하더라구요."
그는 최근 들어 영화 '해운대', 드라마 '미남이시네요' 등을 거치며 본성은 착하지만 본인이 처한 상황에 의해 남을 속이게 되는 밉지 않은 역할들을 맡아왔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찍새나 '숙명'의 도완처럼 비호감이거나 무거운 캐릭터를 맡을 때보다 훨씬 큰 사랑을 받게 된 것 또한 사실.
이번 '방가? 방가!'의 방태식 또한 그런 캐릭터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 같은 캐릭터들로 구축한 자신의 이미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제가 가진 생김새나 정서에서 그런 캐릭터들과 맞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관객이나 시청자분들이 유독 그런 모습을 많이 좋아해 주시더라구요. 감사하죠. 저 스스로도 관객 분들이 친근하게 느껴주시고 웃음을 전해드릴 수 있다는 게 좋구요. 막 터져 나오는 폭소보다는 흐뭇한 미소를 전해드리고 싶어요."
1000만 영화 '해운대'의 흥행 이후 영화 '퀵', '마이웨이'에 연이어 캐스팅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는 김인권의 최종 목표는 영화 감독이다. 현장을 많이 체험하면서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쌓고 싶은 욕심에 연기를 해나가고 있다는 그는 "어떤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은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방가? 방가!'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영리한 답변을 내놨다.
"배우의 길이 감독이 되는 길이랑 다른 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직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연출을 해야겠다' 시기를 정한 것은 아니지만 '방가? 방가!' 같은 캐릭터 코미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이야기랑 캐릭터가 같은 흐름으로 호흡하는, 그러면서 사회적인 역할까지 할 수 있는 영화라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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