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혜수가 '달콤 살벌한 연인'을 연출했던 손재곤 감독의 신작 '이층의 악당'으로 관객들과 만난다. 실로 오랜만에 도전하는 코미디 영화. 김혜수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집주인 연주로 분했다.
감독이 그녀를 염두에 두고 쓴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서는 "왜 김혜수여야 했는지 알 수 없었다"던 그녀는 "코미디 영화라고 특별히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없다"는 감독에 말에 용기를 얻어 출연을 결심했다. 뒤늦게 찾아본 손재곤 감독의 전작 '달콤 살벌한 연인'에서 연기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고.
"감독님과 미팅 전에 뒤늦게 '달콤 살벌한 연인'을 찾아봤어요. 최강희 씨도 그렇고 박용우 씨도 그렇고 캐릭터들이 너무 사랑스럽게 그려졌던데, 그게 일부러 사랑스러운 척을 해서가 아니라 다 캐릭터들의 디테일이 살아있기 때문이더라구요. 그때 '이 영화를 하려면 디테일을 살려서 거기에서 웃음을 찾아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코미디 영화에 대한 부담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감독님의 말씀에 용기를 내서 결정할 수 있었죠."
캐릭터의 디테일에 대한 고민은 의상에도 반영됐다. 영화 속 연주의 의상은 청바지를 제외하면 모두 실제 결혼 10년 차 주부인 언니의 옷이다. 연주에게 설정된 의상을 입혀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고.
"연주는 어쨌거나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우울증 환자에요. 의상팀이 준비한 의상이 있었지만 옷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죠. 감독님께 옷 사진을 찍어서 보여드리면서 언니 옷을 입겠노라 말씀드렸더니 '그게 더 좋겠다'고 하시더라구요."
'닥터 봉' 이후 15년 만에 재회한 한석규는 여러모로 든든한 선배였다. 워낙에 좋아하는 선배고 그의 연기를 좋아했지만 가까이서 연기를 지켜보면서 새삼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고. 구체적으로 콕 집어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한석규와의 대화를 통해 감정적인 측면에서 많은 도움을 받은 것 같다는 그녀다.
"'닥터 봉' 당시에는 코미디 영화에 대해 부담을 많이 느꼈던 시기였어요. 심정적으로는 제 의지대로 작품을 고를 수 없었던 제 현실이 속상했고, 석규 오빠 연기를 보면서 제 능력에 부족함을 느끼다 못해 자괴감까지 느끼기도 했구요. 여러모로 불성실했던 시기였다고 생각해요. 영화 속 우울증에 빠진 연주와 비슷한 컨디션이었달까요. 그런데 그 '닥터 봉'으로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으니 너무 속상하고 슬프더라구요. 하필이면 내가 제일 못나게 굴었던 작품으로, 오기도 한 번 발휘 못해본 작품으로 상을 받나. 차라리 석규 오빠를 주지 참 잔인하다. 뭐 그런 생각을 했었죠."
언젠가 한석규에게 "배우를 하면서 없던 그늘이 생긴 것 같다"고 털어놨다는 김혜수는 한석규와 다시 작품으로 만날 날을 기약했던 사연을 전하며 잠시간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김혜수는 인터뷰 동안 지난 15년의 배우인생을 찬찬히 곱씹는 모습이었다. 모든 여성들의 워너비 스타로 화려하게만 살아왔을 것 같은 그녀지만 사실은 배우로서 부족한 면을 지적받으며 괴로워했던 기간이 길었다고.
"항상 제 자리에 있었던 것 같지만 어렵고 마음 아팠던 적도 많았어요. 제가 제 몫을 못하고 있다는 열등감에 오랫동안 괴로워하기도 했고, 대중보다 오히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이 더 크다고 느낄 때는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했었어요. 내가 알고 느낀 걸 진심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했는데 화면에선 왜 그런 것들이 실종돼있나 답답하기도 했구요."
올해로 12년 째 청룡영화상의 진행을 맡은 김혜수는 처음 영화제 진행을 결심하게 된 배경 또한 전했다.
"지금이야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졌지만 당시에는 'TV에 출연하면 탤런트, 영화에 출연하면 영화인'이라는 식의 분위기가 있었어요. 제가 영화제 진행을 맡고 하게 된 것도 사실 그 때문이에요. 저라고 낯선 MC라는 영역에 대한 두려움이 없진 않았죠. 사람들은 파격적인 드레스만 기억하겠지만 그렇게라도 능력 있는 영화인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영화인들을 만날 수 있는 공식적인 명분이 없었거든요."
김혜수는 공개 연인 유해진이 출연한 '부당거래'를 감상한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영화적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고. 특히 류승범의 연기는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단다.
"류승범 씨가 저보다 여섯 살인가 어린데 정말 가슴으로 느끼고 연기를 하더라구요. 제가 그 나이 때 어땠는지 생각해보면 역할에 대해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사실 연기 잘하는 배우는 많은데 그런 역량을 보여줄 기회조차 없는 배우들도 정말 많거든요. 저는 상대적으로 많은 배우들 가운데 정말 복 받은 케이스라고 생각하고, 이런 찬스를 얻은 만큼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하죠."
화려한 모습 뒤에 눈물과 슬픔을 감춘 배우. 자신이 가진 기회에 감사할 줄 알고 기대에 배신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배우. 김혜수는 그런 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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