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장동건의 할리우드 진출작 '워리어스 웨이'가 그 베일을 벗었다. 웨스턴의 배경 속에 동양의 무협활극을 녹여낸 액션 활극. '매트릭스'와 '반지의 제왕'의 제작자로 이름 높은 제작자 배리 오스본과 뉴욕대 출신의 국내 감독 이승무가 의기투합한 글로벌 프로젝트로 화제를 모았다.
'캐리비안의 해적'의 제프리 러쉬, '슈퍼맨 리턴즈' 슈퍼맨의 연인 케이트 보스워스, '타이탄', '로빈후드'의 대니 휴스턴 등 합을 맞춘 할리우드 인사들의 면면 또한 화려하다. 한미 합작 블록버스터 영화를 통한 할리우드 진출. 장동건이라는 이름 석 자에 부족함 없는 행보다.
그러나 정작 장동건은 '할리우드 진출작'이라는 표현에 손사래를 쳤다. 분명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는 것은 배우로서 좋은 일이지만 그보다 의미 있는 것은 장동건을 모르는 관객들에게 장동건을 소개하는 일이라고.
"'할리우드 진출'이라는 표현을 많이들 써 주시는데 조금 닭살스럽기도 하고 '다른 말은 없나' 혼자 생각해보기도 해요. 물론 배우로서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겠죠. 자본이라던가 여러 가지 면에서 할리우드가 한국보다 상상한 것을 구현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이 사실이니까요. 그렇지만 할리우드에서만 영화를 찍을 것도 아니고 '진출'이라는 단어 자체가 썩 와 닿지는 않아요. 제가 하는 영화들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의미가 있다면 새로운 관객들에게 저를 소개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겠죠."
그렇다고 처음으로 미국관객과 만나는 영화의 흥행 결과에 대해서 완전히 초연할 수는 없을 터. 장동건은 '워리어스 웨이'에 대해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한 영화"라고 말했다. 지난 인터뷰에서 '해안선'은 과정이, '태풍'은 결과가 중요했다던 그다.
"결과가 좋아야죠.(웃음) 물론 과정도 중요하구요. 저는 거의 경험 신봉주의자라 할 만큼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일이든 경험을 해보고 맞이하는 것과 처음 겪는 것에는 힘든 것이나 고민의 크기가 다른 것 같아요. 감독님이 한국 분이시긴 했지만 현장에서 한국인이 저만 있던 상황이 '무극'에 이어 두 번째인데, 돌아보면 심정적인 면에서 '무극'이 더 힘들었던 것 같거든요. 두 번째이다 보니 심리적인 부담도 적었고 적응하는 것이나 현지 스태프와의 작업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이날 장동건은 "화려한 볼거리에 비해 줄거리 면에서 취약하다"는 평단의 평가에 대한 생각도 털어놨다. 기획의도를 고려하면 스토리의 전형성은 당연한 결과라고.
"웨스턴이라 불리는 옛날 서부영화의 플롯과 흡사하죠. 이방인이 평화로운 작은 마을에 와서 악당들을 무찌르는 내용이니까요. 하지만 애초에 이 영화의 기획 의도는 뻔한 이야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자는 것이었어요. 웨스턴이 미국 사람들에겐 일종의 판타지한 공간으로 받아들여지더라구요. '닌자'라는 단어도 그냥 동양 무사를 지칭하는 단어로 인식하구요. 이 두 가지가 합쳐졌을 때의 비주얼과 상황을 만들려는 것이 애초의 목표였던 거죠."
서양관객들과 만나는 첫 작품이니만큼 장동건의 영어 연기에도 관심이 쏠렸다. 과묵한 절정의 고수인지라 많은 대사가 있지는 않지만 역할을 위한 준비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친구'에서의 사투리 연기보다는 비교적 수월했다는 설명이다.
"분량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5~6개월 정도의 준비기간 동안에도 영어를 배우기보단 다이렉트 코치로부터 캐릭터에 맞는 발음, 억양, 액센트 등을 연습했어요. 동양에서 온 무사라는 설정에 맞는 사운드를 익히는데 중점을 둔거죠. 영화에서 보면 '아이 돈 노우'도 '아이 두 낫트 노우'라고 발음하는데 그게 지금 미국 사람들이 쓰는 영어는 아니죠. 미국 사람들에게는 사극의 톤과 비슷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억양이나 음정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에서 사투리 연기와도 비슷한 점도 있는 것 같아요. 뭐 이번에 한 번 해본 것을 가지고 '영어가 더 쉽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사투리 연기 때가 좀 더 어려웠던 것 같네요."
'워리어스 웨이'는 제작기간만 6년에 달하는 블록버스터. 차기작인 강제규 감독의 '마이 웨이' 또한 160회 촬영 분이 남아있다. 오랜 준비기간이 걸리는 대작 위주의 작품에 출연하다보니 관객과 만날 기회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된 것 또한 사실이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하면서 '좀 더 다작을 해야겠다' 생각했었는데 제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뭐 꼭 대작이어서 선택을 하거나 또 대작이라고 해서 선택을 꺼리거나 할 문제가 아니라 공교롭게도 마음에 드는 작품들이 오랜 시간이 걸렸던 작품이 많았어요. 지금은 좀 더 많은 작품을 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어렸을 때 일부러 굳이 피했던 역할이나 작품이 지나고 나니까 아쉬움으로 남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나중에 연기경력에 비해 작품 수가 적다면 아쉬울 것 같아요."
대중으로부터 가장 사랑 받는 배우 중 한 명인 그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장동건은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고 자부심과 자신감을 많이 생겼었다"면서도 "상이라는 것은 본인의 자신감에 대한 부분이지 그것이 목표나 성취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배우로서의 목표는 항상 달라져서 뭐라 딱 말씀드리기가 힘드네요. 장동건이라는 개인이 계속 변하잖아요. 20대 때의 저와 지금 저는 다른 사람이고 그때의 생각과 지금 생각은 너무나 달라요. 그때 그때 할 수 있는 것, 보여드릴 수 있는 것이 달라지기 때문에 항상 새로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선배님들이 말씀하신 것 중에 박중훈 선배께서 '노배우로 숨을 거두는 것이 목표'라고 하셨는데 그 이야기가 공감이 되고 멋있더라구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남 배우 장동건. 할리우드로 보폭을 넓힌 그는 새로운 관객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 흥행 결과에 대한 욕심을 전하면서도 조심스러운 태도로 도전의 걸음걸음을 설명하는 그의 진심은 '인간 장동건'의 겸손과 '배우 장동건'의 욕심 사이 어디쯤엔가 숨어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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