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동명의 인기 웹툰을 영화화했다. 웹이라는 망망한 바다 위에 부유하던 네 노년 남녀의 로맨스는 연극 무대를 지나 이내 스크린에 둥지를 틀었다.
연륜과 경험을 겸비한 배우들의 활약은 단연 돋보이는 것이었다. 스크롤을 통해 미묘하게 고조됐던 인물들의 감정과 심리는 이순재, 윤소정, 송재호, 김수미 등 배우들의 호연으로 아름답고도 따뜻하게 그려졌다.
극중 김만석과 송이뿐으로 분해 인생의 늘그막에 찾아온 아련한 사랑을 풀어낸 것은 이순재, 윤소정 커플이다. 같은 TBC 공채 출신으로 각별한 인연을 쌓은 두 사람은 오랜만의 재회에도 불구하고 "굳이 호흡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서로 너무 잘 맞았다"고 입을 모았다.
"당시는 방송사에서 월급을 받아가며 전속계약을 맺던 시절이었어요. 지금처럼 소속사라는 개념이 없었죠. 생방송으로 방송이 진행되다보니 리딩부터 드라이 리허설까지 카메라 앞에서 연습을 몇 번씩 거듭해야 했었고, 배우들 모두 같이 살다시피 했었어요."(이순재)
"이순재 선생님은 처녀 때 처음 만나 부인 분을 언니라 부를 정도로 친한 선배에요. 예전엔 서로 집에서 며칠씩 머물면서 주무시고 할 정도로 스스럼없는 사이죠. 한 식구나 다름없어요."(윤소정)
이순재는 노년의 사랑을 잔잔히 풀어낸 시나리오에 끌려 영화 출연을 결심했다. 극중 만석은 '까도남'의 면모를 과시하며 웃음을 자아내는 한편, 깊은 속내를 이따금씩 내비친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 순재'와 '엄마가 뿔났다'의 나충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아직도 만화는 못 봤어요. 시나리오를 먼저 보고 나중에 연극을 봤죠. 시나리오를 보니까 옛날이야기인 것 같고 고전영화 같은 패턴과 느낌이더라고요. 이런 테마라면 나처럼 나이 먹은 사람도 충분히 정서를 표현할 수 있겠다 싶었죠. 요즘 온통 피 튀고 때리고 부수는 거친 영화가 많잖아요? 잔잔하면서도 정겨운 사람 얘기를 전하는 영화라 좋았던 거죠. 충분히 관객을 울리고 웃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사실 우리나이쯤 되면 주인공을 하기가 힘든데 큰 보람이었고 그간의 연기를 집약해서 표현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주로 강한 역할을 맡아왔던 윤소정에게 지고지순하고 순수한 매력의 송이뿐은 그간 접하지 못해본 역할이었다. "송이뿐 같은 요소가 많이 있는데도 외양 때문에 세고 강한 역할만을 해왔다"는 그녀는 완벽하게 송이뿐으로 변신하고 싶었노라고 했다.
"추창민 감독님이 캐스팅 '에이미'라는 연극을 보러 왔었어요. 3막까지 봤을 때는 '이건 아니다' 싶으셨대요. 그러다가 4막 중반쯤에 60대로 변한 마지막 배우의 모습이 나오는데 거기에서 송이뿐의 모습을 보셨대요. 그렇게 제의를 받게 됐고 만화와 시나리오를 동시에 보면서 여태껏 전혀 해보지 못한 역할이란 데 많이 끌렸죠. 윤소정의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철저한 송이뿐이 되고 싶었는데 완성된 영화를 보니 걸음걸이라던가 몸가짐, 자세 같은데서 드문드문 윤소정의 모습이 보이더라구요. 완전한 변신이란 게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극중 인물들과 비슷한 연배의 나이 때문일까. 두 사람은 황혼을 맞이한 만석과 이뿐의 사랑에 적지 않게 공감하는 모습이었다. 그네들이 살아온 세월을 되짚어 보면 서로의 마지막을 보지 않기로 한 그들의 선택이 십분 이해된다고.
"개인적으로는 사랑은 같이 있는 게 원칙이라고 생각해요.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고 사랑도 멀어지니까. 하지만 송이뿐은 생애 처음으로 받은 사랑이기 때문에 간직하고 싶었던 거고 평생 혼자였던 사람이기 때문에 같이 있는 게 오히려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래도 저라면 안 떠났겠지만.(웃음)"(윤소정)
"반면에 만석은 처가 있었죠. 생전에 우유 한 잔도 제대로 못 사준…. 만석은 그런 회한과 후회, 속죄의 마음으로 우유배달을 하는 인물이거든요. 부족한 부분을 새로운 대상한테 이뤄보려는 욕구가 있는 거죠. 사랑이란 게 그래요. 한 덩어리가 되면 단점도 다 보이거든요. 만석은 송이뿐이 죽어가는 모습을 볼 수 없는 거죠. 그 모습 그대로 기억하고 싶은, 한 차원 높은 사랑이랄까."(이순재)
이순재와 윤소정은 오랜 배우생활에도 여전한 연기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연기에는 답이 없으며 그렇기에 만족이란 있을 수 없다고. 특히 이순재는 후배 배우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배우로 김명민을 꼽으며 연기자 후배들의 과장된 연기에 대해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나이를 먹어도 배우는 배우의 욕구가 있기 마련이에요. 어떤 배우나 예술가들도 자기 것에 만족할 수가 없죠. 완성이나 종착점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게 연기에요.
요즘 애드리브를 하는 배우들이 많이 나오고 다들 오버액션을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절제가 필요한 것 같아요. 이번 영화에 출연한 김수미 씨 같은 경우 더 과장할 수 있는 배우지만 이번 영화에선 딱 중심을 지켰어요. 그러니까 오히려 양념역할을 한 오달수나 이문식이 더 돋보일 수 있었던 거고. 요즘 배우들 중엔 김명민 씨가 자기중심을 잡고 잘 하더라구요. 자기 연기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요. '조선명탐정'도 봤는데 김명민의 연기는 나무랄 데가 없었습니다."(이순재)
"그 동안 많은 연극과 작품에 출연했지만 아직도 첫 날 첫 공연은 그렇게 긴장이 돼요. 자신이 있으면 떨리겠어요? 늘 불안하고 미비한 것 같고 그러면서 사투를 벌이는 거죠. 그렇게 애정을 갖고 죽기 살기로 하다 보니까 상도 타고 할 수 있었던 거고."(윤소정)
배우라는 이름으로 반세기의 세월을 지나온 두 사람은 여전히 도전을 통해 계속해서 새로움을 쫓는 모습이었다. 스크린에서 다시 만난 두 배우의 호흡은 과연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오는 17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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