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 감독 "현빈이 최선이었냐고? 운명이다"(인터뷰)

전형화 기자  |  2011.02.17 09:55
임성균 기자

한 남자와 여자가 차를 타고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같은 차에 탔지만 정작 둘은 다른 곳을 바라본다. 헤어지자는 이야기도 담담하게 나눈다.

이윤기 감독은 '사랑한다,사랑하지 않는다' 첫 장면을 무려 12분 동안 이런 내용을 한 테이크로 찍었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딴 남자가 생겼다며 헤어지자는 여자와 그런 여자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남자의 3시간을 관조하듯 들여다보는 영화.

'여자, 정혜' '멋진 하루' 등을 연출한 이윤기 감독은 같은 곳에 있지만 다른 곳을 보는 남녀의 쓸쓸한 하루를 점묘화처럼 묘사했다. 가까이에선 빛 덩어리지만 멀리 보면 완성되는.

'사랑한다,사랑하지 않는다'는 지난 10일 개막한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이윤기 감독은 2005년 '여자, 정혜'로 베를린영화제 포럼 부문에 초청돼 넷팩상을 받았다. 2006년과 2008년에도 각각 '아주 특별한 손님'과 '멋진 하루'를 포럼 부문에 진출시킨 바 있다.

마침 '시크릿 가든'으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현빈이 출연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래도 이윤기 감독은 "현빈? 운명이 닿았으니깐 출연했지"라며 심드렁했다. 베를린 수상 가능성에 대해선 "안탔으면 좋겠다"고 했다.

-저예산에 2주만에 촬영했는데. 이유가 있다면.

▶3~4년 전에 단편소설을 읽다가 설정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헤어지는 커플이 비가 와서 본의 아니게 갇혀있다는 설정. 분명히 상업적인 기획은 아니지만 영화적인 기획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투자 안될 것이라고 생각해 미뤘는데 다른 기획들이 늦어졌다. 그런데 미쳤다고 이 이야기에 동조하는 사람이 나왔다. 미쳤다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배우들도 노개런티, 스태프도 거의 돈을 받지 않고 찍었다.

-첫 장면을 무려 12분 동안 한 테이크로 갔는데.

▶'취화선'의 한 테이크 최장 기록 경신에는 실패했다. 장면을 나눠서 편집하면 영화가 그 상황을 객관적이지 않게 던져주는 것 같았다. 다른 남자가 있다며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아주 천연덕스럽게 던져주려 했다. 구상할 때부터 떠올렸다.

-두 번째 장면도 임수정이 집에 있을 때 롱테이크로 줄곧 뒤를 쫓는데. 집 공간공간을 쭉 스케치하는 것도 인상적이고.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카메라를 나누면 공간을 인식하기 힘들다. 같은 집에 살고 있지만 덩그러니 홀로 놓여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사랑한다,사랑하지 않는다'는 헤어지는 순간을 그린 영화인데. 사랑이란 감정이 변하는 것을 그린 멜로영화는 많지만 헤어지는 순간만을 그린 영화는 드물고 낯선데.

▶이별하는 순간을 그린 것은 가장 효과적으로 영화 내용을 전하기 위해 선택한 과정이었다. 또 그것에만 포커스를 맞춘 영화도 잘 기억나지 않는 게 사실이다. 어느 한 모먼트만 갖고 해보자고 생각했다. 어떤 영화가 나올지 나도 궁금했다.

-이별을 담담하게 그렸다. 이은하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란 노래가 떠오르던데.

▶담담한 정경을 그리는 게 격정적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심플하다고 생각했다.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은 내 노래방 18번이기도 하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제목이 주는 가이드가 있다. 두 남녀가 다시 사랑을 깨닫지 않을까란 생각을 끝까지 갖게 한다. 영어제목인 'Come Rain, Come Shine'도 마찬가지인데.

▶두 제목 모두 내가 지은 것은 아니다. 가제로 '타인들'이라고 만들었었다. 지금 제목은 영화사봄 오정완 대표가 지은 것이다. 두 사람이 교류한다기보다 자기 내면과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떠나고, 보내는 게 옳은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는 이야기가 제목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고양이가 갑작스럽게 등장하고 옆집 부부가 찾아오는데. 보통 이런 장치는 국면 전환으로 사용하기 마련인데 두 사람 감정은 변하지 않는데.

▶원작에서도 고양이와 옆집 부부가 유일하게 개입하는 장치다. 두 사람이 생각하는 판타지처럼 그리려 했다. 이런 걸 계기로 다른 결말을 상상하게 되는. 그래도 결말이 바뀌는 장치로 사용하고 싶진 않았다.

-같이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나 추억이 깃든 물건을 함께 정리하는 것도 여느 멜로영화라면 사랑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로 사용되는데.

▶추억들이 둘을 묶어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해체시킨다고 생각했다.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돌아가도 똑같을 것이라는 걸 알게 하는 장치라 생각했다.
임성균 기자

-현빈과 임수정이 최선의 선택이었나. 전작에 출연한 하정우와 김지수, 김중기, 김혜옥 등도 카메오로 출연했는데.

▶다른 배우들을 찾을 수도 있지만 그게 이 영화의 운명인 것 같다. 두 사람은 내가 당시 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었다. 의심할 여유도 없었고.

카메오는 돈도 못주는데 친분이 있어야지 부탁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시간이 되면 전도연이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배우들에게 불친절한 감독으로 알려져 있는데.

▶처음에는 불쾌해하다가 나중에는 재미있어한다. 아무 지시를 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여백을 스스로 채워야 하니깐. 처음에는 스케치부터 촬영하고 그러다가 좀 더 어려운 장면을 찍기 시작해 마지막엔 가장 딥한 장면을 찍는다.

-이번 영화 중 가장 마지막에 찍은 장면은 뭔가.

▶첫 장면이다.

-베를린영화제를 겨냥한 작품인지, 영화제를 겨냥한 작품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상을 노리고 만든 작품이라곤 생각되지 않는데.

▶영화제를 갈 수도 있겠다곤 생각했지만 영화제를 겨냥하고 만들지는 않았다. 어차피 와이드 릴리즈할 영화가 아니라면 그런 것에 휘둘리지 않고 스타일대로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영화제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긴 하다. 영화제를 가면 해외 판매에 도움이 되니깐 도와준 사람들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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