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버린 우리들, '나가수'에는 빠른 실망?

[기자수첩]

길혜성 기자  |  2011.03.23 09:52

요즘 어딜 가나 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나는 가수다') 이야기다. 물론 핵심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많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매회 한 명의 탈락자의 발생, 국내 최고 가수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힐 수 있는 프로그램의 특성이 한몫했다. 말초신경 자극의 최고조이자 가장 독한 예능 프로그램이란 말까지 회자되고 있다. 실제로, 침체된 가요계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자 했던 기획 취지를 무색케 만들 정도로 '나는 가수다'는 독하다.

또 첫 본심에서 마지막 등수인 7위를 차지한 김건모에 재도전을 선택할 기회를 부여한 제작진의 행동도 '나는 가수다'에 실망감을 느끼게 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가수다'에 대한 많은 시청자들의 복합적인 실망감의 중심에는 25년 경력의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가 있다는 것도 빼 놓을 수 없다.

살아있는 양심들에게 양심냉장고를 줬던 '이경규가 간다', 착하면서도 시청률 또한 높았던 '칭찬합시다', 생각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자극적 매체 TV가 올드매체인 책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든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를 만들었던 이가 바로 김영희 PD다. 너무도 독한 '나는 가수다'를 과연 공익적 예능 프로그램 연출의 대명사인 김영희 PD가 만들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이에 '나는 가수다'에 대한 비난은 곧 김영희 PD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는 게 요즘의 상황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번 만 곱씹어 보자. 과연 김영희 PD만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김영희 PD가 이젠 따뜻한 예능보다 자극적 예능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아니다'다. 이는 김영희 PD의 행보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2000년대 중반 MBC 내부의 파격 인사와 함께 예능국의 최고 자리인 국장까지 올랐지만, 그 때도 김영희 PD의 꿈은 삶이 다할 때까지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의 연출 취지는 따뜻함을 살리는 것과 전 세대가 볼 만한 예능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지금도 변치 않았다.

국장 자리를 떠나 PD연합회 회장을 지낸 뒤 지난 2009년 말 현업에 복귀한 김영희 PD가 처음으로 내놓은 예능은 바로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단비'였다.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오지에 가서 식수난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지하수를 마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줬다. 또한 국내 여러 곳도 찾아 다양한 감동의 사연도 전해줬다. 이 때 사람들은 역시 "김영희PD"라 했다.

하지만 시청률은 경쟁 프로그램이자 '1박2일'이란 막강 코너가 버티고 있는 KBS 2TV '해피선데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한 자리 대 시청률을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SBS '일요일이 좋다'에도 뒤졌다.

이후 김영희 PD가 택한 게 바로 '나는 가수다'다. 현 상황은 '단비' 때와는 전혀 딴 판이다. 프로그램 자체는 자극적이라 욕먹지만, 시청률은 단 숨에 두 자리 대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MBC의 간판 예능인 '일밤'을 살리기 위해 혼자 욕먹을 각오까지 했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다.

이는 어찌 보면 김영희 PD가 요즘의 독한 예능 트렌드에 가장 잘 부합했기에 얻어낸 결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김영희 PD의 취지는 여전하다. '노래 잘 하는 가수가 인정받는 정당하고 따뜻한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하는 게 김영희 PD의 '나는 가수다'를 만든 여전한 본심이다. 온갖 비난을 받는 상황에서도 많은 기자들의 잦은 전화 연결 역시 피하지 않는데서도 이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단비'를 버렸던 사람들은 방송 막 시작한 '나는 가수다'를 비난하는 데는 너무도 적극적이다. 물론 김영희 PD가 가장 많이 비판받는 대상 중 하나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가 이제 단 3회 밖에 방송되지 않았음은 잘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조금 길고 조금 넓게 '나는 가수다'를 바라 본다면, 김영희 PD의 본심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기다려 보자. 따뜻하면서도 재밌던 예능 연출자가 바로 '쌀집 아저씨'가 김영희 PD다. 그 때 얼마나 많은 감동을 받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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