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홍보 문구대로라면, '수상한 고객들'은 휴먼 코미디물이다. 고객들의 자살을 막으려 동분서주하는 보험판매원의 고군분투와 고객들의 동상이몽에서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도 사실. 하지만 김수미, 박철민 등 생각만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출연배우들의 면면과는 달리 영화는 웃음보다 묵직한 울림을 전하는데 주력한다.
영화의 원톱 주연을 맡은 류승범은 "영화 촬영을 마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질문들이 남아있다"고 했다. 2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관객들을 울리고 웃기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니겠느냐는 반문. "생각해보면 약간 미친 짓인 것 같다"면서도 그런 점에 끌려 출연을 결심했다는 그다.
"자살이라는 화두에 대해 소통하고자 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출연을 결정했어요. 자살은 우리 주변에서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제일 먼저 '왜?'라는 의문을 일으키잖아요. 현실에 닿아있는 이야기기도 하고 그런 의문에 대해 풀이해주려고 하는 영화라 생각했죠."
극중 병우는 고객들의 아득한 현실과 마주하며 인간적인 변화를 보여지만 류승범 본인은 감정이 섞이지 않은 관찰자의 역할이 좀 더 컸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는 후문이다. 출연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류승범의 원맨쇼'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고.
"관객들이 병우라는 인물을 통해서 극중 인물들의 사연을 접하게 되기 때문에 좀 더 냉소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각각의 인물들의 사연을 비췄다면 좀 더 감동이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던 거죠. 하지만 상업 영화의 주인공이니만큼 제가 가진 생각 외에도 해야 할 다른 몫이 있었고 그러다보니 약간 희화화된 부분도 있었어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누가 혼자 다 했네'라는 소리는 없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관객들마다 받아들이시는 게 다르겠지만 그런 이야기는 이 영화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 같거든요."
류승범은 가장 기억에 남는 신으로 장대비를 맞으며 뛰어다닌 영화 후반부 장면을 꼽았다. 고객들의 자살을 막기 위한 병우의 동분서주를 담은 장면으로 격한 감정이 묻어나는 신. 살수차로 뿌려대는 비를 맞으며 '무식하게' 추위와 싸우자니 병우의 오지랖에 슬며시 짜증이 일기도 했다고.
류승범은 '수상한 고객들'에서도 예의 생기 넘치는 연기를 보여준다. 툭툭 던지는 대사와 혼잣말이 전하는 예상치 못한 웃음과 활기 또한 여전하다. '품행제로'의 중필처럼 길들여지지 않은 모습으로 에너지를 발산하던 그는 닮은 듯 다른 모습으로 미묘한 변화를 이어온 끝에 주연으로서의 역할과 의무에 대해 고민하고 타협할 줄도 아는 30대 배우가 됐다.
"가까운 친구가 한 번은 그런 얘길 해주더라구요. 늑대가 집에 들어가서 주는 대로 밥 먹고 잘라주는 대로 털 자르고 하면 그게 늑대냐고.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그렇겠지만 늘 제 자아와 현실이 부딪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한동안은 좀 더 유연해지는 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 여겼던 시간도 있었구요. 요즘은 또 그러다 제 자신을 잃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어요. 뚜렷한 의식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외부의 요인들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보니 늘 갈등이 있죠."
고등학교 중퇴와 배우 데뷔. '29년'의 표류와 '부당거래'의 성공. 어느덧 11년째 연기자라는 이름으로 관객들과 만나는 류승범은 그의 말처럼 "잔파도가 많은 인생"을 살아왔다. 우여곡절 많았던 그의 여정은 어찌 보면 '죽지 못해 살지만 결코 사랑은 놓지 않는' 영화 속 불량고객들의 꿋꿋한 전진과도 닮았다.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다 자신만의 굴곡이 있기 마련이겠지만 저는 특히 굴곡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아요. 보편적이지 않은 삶을 살아왔고 어린 나이에 데뷔해 큰돈을 벌어보기도 했구요. 그래도 참 인생이 공평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렸을 때는 가져야 하는 것들을 많이 못 갖고 나만 피해의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그런 끈들이 없어서 자유로워진 부분도 있었던 것 같고, 남들과는 다른 시간을 겪으며 얻어지는 것들도 분명 있었을 테니까요."
다양한 작품에서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해 온 배우 류승범. 그는 스크린 속 재기발랄한 모습과는 달리 무겁고 진지한 고민 속에 차근차근 배우로서의 성장을 거듭해왔다. "이제는 세간의 평가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져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고 싶다"는 그가 앞으로는 또 어떤 변화를 보여줄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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