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찜질방. 시계가 오후 8시 25분을 가리키자 사람들이 일제히 TV 앞으로 몰린다. "안나가 정신 되찾나?", "새와는 왜 또 저래!" 군데군데 웅성웅성 말들이 이어진다. 찜질방만이 아니다. 식당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몰린다.
KBS 1TV 일일극 '웃어라 동해야'(극본 문은아 연출 김명욱 모완일)의 인기가 대단하다. 주중 미니시리즈들이 10% 조금 넘는 시청률을 보이며 '박빙 승부'를 벌이고 있는 사이 '웃어라 동해야'는 40%중반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독주'하고 있다. 그 인기의 정점에 '안나 레이커' 도지원(43)이 있다.
'웃어라 동해야'는 요즘 '웃어라 안나야'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안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돌아가고 있다. 동해(지창욱 분)의 어머니인 안나는 어릴 적 태풍에 휩쓸려 머리를 다치면서 정신연령이 9살에 머물렀다.
미국에 입양된 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아이까지 낳지만 버림받고 홀로 키우다 아들의 아버지 '제임스'를 찾기 위해 한국에 왔다. 제임스(=김준, 강석우 분)도 찾았고, 굴지 호텔의 딸이었다는 사실도 밝혀지며 흥미를 모으고 있다.
지난 12일 서울 장충동의 한 카페에서 도지원을 만나 '안나 레이커'를 물었다.
-안나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대단하다.
▶작년 10월부터니 벌써 6개월째 안나로 살고 있다. 도지원이 안나인지 안나가 도지원인지 헷갈릴 정도다(웃음). 초등학생들도 보면 '안나다!'하고 반가워한다. 드라마의 인기를 실감한다.
-안나는 말투부터 기존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정신지체' 캐릭터와는 여러모로 다르다.
▶시놉시스를 처음 받았을 때 안나는 기존의 정신지체 캐릭터와는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본에도 정신연령 9살짜리인데 지문에는 '다리를 다소곳이 모으고 조용히 앉아 있다', '조용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식으로 쓰여 있었다. 사실 9살짜리 아이가 조용히 있는 경우는 드물지 않나.
오드리 햅번의 청순함을 닮은 조신한 아이랄까, 그런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아무래도 회장님의 딸이니 그 분들의 자식으로서 핏줄의 느낌을 비슷하게 살리려했다.
작가(문은아) 선생님이 '그전에 나왔던 캐릭터처럼 할 건 아니죠?'라고 묻더라. 나 스스로도 도지원만의 캐릭터를 창조하고 싶었다. 남들과 다르게.
-롤 모델이 있나.
▶아니. 시놉시스를 받았을 때부터 안나에 대해 상상했다. 사실 '여인천하'의 경빈이나 '수상한 삼형제'의 엄청난이나 롤 모델이 있다기보다 스스로 캐릭터를 상상하고 내 식대로 풀어냈다.
드라마를 볼 때도 뭘 연구하거나 분석하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다. 그냥 푹 빠져서 본다. 캐릭터가 주는 감성이나 거기서 받는 느낌을 간직하려고 노력한다. 책을 볼 때도 캐릭터를 늘 상상 속에서 그려본다. '아, 얘는 이럴 거야' 식으로.
-안나는 인사 할 때도 아이처럼 늘 90도로 허리 숙여 배꼽인사를 한다.
▶그것도 상상의 산물이다(웃음). 실제 어린 아이의 행동을 눈여겨보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 나름대로 한 건데 스태프들이 '특이하게 허리를 펴고 한다'고 하더라.
-도지원하면 도시적인 이미지, 차가운 이미지가 강한데.
▶사실 이런 캐릭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때를 기다렸다고나 할까. '여인천하' 경빈의 캐릭터가 강해서인지 도지원도 그런 성격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캐릭터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극과 극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이 배우는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일종의 배우로서 책임감도 있었다.
과연 도지원이 이게 가능할까라고 의문이 들 수도 있는데 좋은 역할을 준 감독님과 작가님께 감사할 뿐이다.
-이번 역할을 통해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는 평이 많다.
▶가장 원했던 부분이다. 연기를 시작하면서 어떤 연기자가 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주위를 보면 한 캐릭터가 잡히면 그걸로 쭉 밀고 나가거나, 좋은 이미지의 캐릭터만 하거나 그런 식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내성적이고 오픈되지 않은 성격이었다. 하지만 연기 자체는 한계를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다양한 연기를 소화하는 배우가 되자'였다.
그래서 일부러 작품을 할 때 전작과 반대되는 캐릭터를 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하면 다시 도지원으로 돌아오는 게 쉬울 것 같았다. 그런데 감독님들이 내게 갖고 있는 캐릭터 선입견이 있는 것 같았다. 데뷔 초기 늘 비슷한 캐릭터만 했다. 늘 연기 변화를 갈망했다.
-'여인천하'의 경빈이나 '수상한 삼형제'의 엄청난도 눈에 띄는 캐릭터였는데.
▶드라마를 할 때 늘 캐릭터를 생각했다. 작은 캐릭터라도 연기적인 면으로 살릴 수 있는 캐릭터를 찾은 거다. '여인천하'의 경빈은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보니까 나를 깨부숴야겠더라. 어느 순간 막 지르고 에너지를 쏟아야하는 역할이 됐다.
그런 가운데 '뫼야?'가 나왔다. 어떤 선배들은 '배우가 예쁘게 나와야지, 너무 망가지는 것 아니냐'고 걱정들을 하셨다. 한데 나중에는 '네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겠다'고 하시더라. 연기는 모든 것을 내 던져야한다는 걸 실감했다.
'수상한 삼형제'때는 하면서 엄청난의 아이디어가 나왔다. 연습할 때는 감춰놓고 있다가 녹화할 때 생각해봤던 것들을 꺼내니 다들 깜짝 놀랐더라. 사실 나 자신도 깜짝 놀랐다(웃음).
-'웃어라 동해야'의 안나는 어땠나.
▶경빈이나 엄청난을 하고 나서 '아, 이제 정말 착한 캐릭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100% 올인할 수 있는 착한 역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쉽지 않지만 지금의 안나 역할을 연기하는 게 너무 행복하다.
-그래도 기존 캐릭터들과 많이 달라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초기에는 고생이 좀 많았다. 안나에 빠져들기 위해 정말이지 부단히 노력했다. 감성으로 다가가는 연기를 하고 싶었다. 예전에는 순간에 몰입해서 했다면 이번 드라마는 상대 배역과 서로 호흡을 맞추려고 했다. 원래는 함께 연기하는 상대방에서 잘 오픈하지 않는 스타일인데 이번에는 동해에게 많이 오픈했다.
지창욱씨와 서로의 연기에 대해 많이 얘기를 나눴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둘이 연기할 때가 제일 편하다(웃음).
-6개월 동안 안나를 연기하고 있는데 캐릭터가 실제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있나.
▶예전에는 드라마가 끝나면 빨리 캐릭터에서 빠져나와 도지원으로 살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드라마가 끝나도 안나처럼 계속 살고 싶다. 안나는 모든 걸 평화롭게 살고 또 긍정적으로 산다. 내 좌우명이 '순수함을 잃지 말자'인데 결국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안나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평상시에도 안나의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극중 안나는 어떻게 될까. 일부에서는 머리를 고치고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안나의 머리가 안 고쳐졌으면 한다(웃음). 안나는 세상을 앓고 싶지 않은 캐릭터다. 안나는 세상을 모르고 사는 게 더 행복할 수 있다. 그냥 그 상태 그대로가 안나에게는 제일 좋을 것 같다.
-다음 작품은 어떤 걸 준비 중인가.
▶안나와는 또 다른 캐릭터가 될 거다. 센 캐릭터는 좀 망설여진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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