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요 이쁜 그대 몇 명이서 놀러왔나요
사양 말고 한잔해요 모든 것이 그대 거에요
(중략)
애프터는 기대마요 이 바닥이 그런 거에요
사랑을 꿈꾸지 말아요 나같은 킹카는 너무 바쁘니
셔츠가 다 젖을 때까지 압구정
돈이 없어도 오늘만은 날라리'(처진달팽이 '압구정 날라리')
'요즘 심심할 땐 뭐해 따분할 땐 뭐해
어디서 시간 때우나
강남 너무 사람 많아
홍대 사람 많아
신촌은 뭔가 부족해
(중략)
이태원 프리덤 저 찬란한 불빛 오 오 오
이태원 프리덤 젊음이 가득한 세상'(UV '이태원 프리덤')
공교롭게도 서울의 특정 지명을 노래한 두 곡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하나는 최근 MBC '무한도전-서해안고속도로 가요제'에서 유재석과 이적의 처진 달팽이가 선보인 '압구정 날라리'이고, 다른 하나는 유세윤과 뮤지의 UV가 부른 '이태원 프리덤'이다. '압구정 날라리'는 5일 현재 각종 실시간 음원차트 상위권에 랭크돼 있고, '이태원 프리덤'은 UV에게 용산구 홍보대사라는 직함을 안겼다.
015B는 신곡 '1월부터 6월까지'에서 연인과 헤어진 후의 감정을 복기하면서 이렇게 읊조린다. '지금도 그녀가 가끔 보고 싶어질 때가 있죠, 이촌동 그 길 아직도 지날 땐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해요, 밤에 공원도 그 햄버거 집도 지하상가 그 덮밥집도'.
양진석도 헤어진 연인을 추억하는 공간으로 강변북로를 택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달려서, 저 끝 파주까지 다녀왔지, 오늘도 강변북로엔, 너와 나 흔적이 깔려있네..나는 그대를 잊었다 하지만, 말론 그대와 끝났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여길 못지나'
이처럼 얼핏 듣기에는, 그리고 서정적이고 아련한 다른 노래들과 비교해서는 그냥 술 먹고 떠들며 놀자는 코믹 복고 댄스곡이지만, 사실 가사를 곱씹어 보면 뭔가 가슴 아린 게 있다, 이 두 노래에는.
유재석이 작사에도 참여한 '압구정 날라리'는 강남 클럽을 어슬렁거리는 킹카의 이야기. '사랑을 꿈꾸지'도 않고 오로지 원나잇을 꿈꾸는 망상 킹카의 어찌 보면 한심한 권주가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가사 뒷부분 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돈이 없어도 오늘만은 날라리/ 내가 살던 곳은 수유리'
요즘 말로 괜히 쿨하고 센 척 했던 킹카도, '이 바닥이 그런 거에요'라며 강남의 모든 것을 아는 척 다 했던 킹카도, 알고보니 비(非) 강남에서 자랐다는 것. 그래서 그의 '돈이 없어도 오늘만은 날라리'는 강북/강남 격차라는 대한민국 현실에 대한 조롱, 그러면서도 강남 압구정에서 어슬렁거릴 수밖에는 처지에 대한 푸념으로 읽힌다.
코믹적인 요소가 더 강한 '이태원 프리덤'도 이상한 비애가 느껴진다. '이태원 프리덤 저 찬란한 불빛, 이태원 프리덤 젊은 가득한 세상'이라고 못을 박고, 이태원에는 '음악이 있어 또 사랑도 있어 세계가 있'다고 주장해도, 그리고 이태원에서 '춤을 춰요 모두 앞에서, 꿈을 꿔요 여기서 모두'라고 권해도 이들 '청년'의 마음 한 켠에는 어디 오고갈 데 없는 외로움이 배인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각운을 맞춰 이렇게 비꼰다. '청소년은 대공원, 노인들은 양로원, 아이들은 유치원, 우리들은 이태원..' 그리고 사실 이들이 선택한 이태원이란 곳도 따지고 보면 '사람 많은 강남과 홍대, 뭔가 부족한 신촌을 피해 고른 동네 아닐런지.
그리고 처진달팽이와 UV가 두 곡을 '복고' 컨셉트로 소화한 점도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 '압구정 날라리'는 1980, 90년대 무도장의 촌스러운 DJ 의상과 댄스, 조명으로서 '날라리'에 방점을 찍으려 했다. '이태원 프리덤'은 유세윤과 박진영의 흑인 헤어스타일도 그렇지만, 아예 대놓고 80년대 디스코 리듬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들이 압구정과 이태원이라는 앞서가는 동네를 이같은 '복고'로 커버하려 한 것은 그만큼 두 동네의 도시적 이미지를 전복시키려는 의도가 강해서였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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