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6회 방송분을 도도한 강물처럼 관통하는 것은 초창기 조선을 둘러싼 팽팽한 국가론 싸움. 태종(백윤식)이 내세운 왕권정치와, 정도전이 만들고 세종(송중기, 한석규)이 이어받은 신권정치 사이의 한 치 양보 없는 세계관 싸움이야말로 이 사극의 최대 재미다.
20일 방송분에서 드러난 '밀본'(密本)은 재상 정치를 이상향으로 삼은 정도전의 정치관이 집약된 개념. '왕이 꽃이라면 재상은 뿌리이며, 꽃은 시들면 꺾으면 되지만 뿌리가 썩으면 나무가 죽는다'는, 태종 입장에서는 까무러칠 만한 반역 대죄의 사상. 그리고 조선의 사대부들이 이 건강한 나무를 만들기 위해 "뿌리로 모여들라"는 혁명적 구호이자 비밀결사가 바로 '밀본'인 것이다.
태종과 어린 세종 사이에서 오고간 기싸움 역시 이 정치론 논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태어난 지 불과 26년밖에 안된 조선에서 한가할 수는 없다"는, 그래서 왕권 강화를 위해서는 개국공신이자 정적인 정도전을 비롯해 친인척마저 수없이 도륙할 수 있었던 태종. 여기에 "왕을 참칭하지 말라"며 상왕인 아버지 태종에게 "나의 조선은 당신의 조선과 다를 것이다"고 선전포고를 한 세종. 이들은 이미 서로 건널 수 없는 정치적 강을 건넜다.
그리고 살해된 집현전 학사 윤필의 사자전언(죽기 직전 망자가 남기는 전언)에서 '밀본'이라는 해답을 찾는 과정은 이 드라마가 언제든 필요에 따라 다른 장르의 영화를 차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 영민한 대목. 윤필이 죽기 전 사자전언을 위해 삼킨 활자는 '뚫을 곤(ㅣ), 입 구(口), 망할 망(亡), 몸 기(己)'. 그리고 집현전 학자들이 이 네 글자에 숨긴 비밀을 찾기 위해 여러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순간, 눈썰미 있는 시청자들은 알아챘다. "아, 이건 '다빈치코드'다!"
대나무 위에서 놀고 기왓장 위를 날아다닌 '와호장룡'식 유려한 액션 역시 이 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 겸사복 강채윤(장혁)의 미끄러지듯 허공을 걷는 활공술, 조선제일검이라는 무휼(조진웅)의 강철같이 묵직한 검술은 지난해 민중사극 '추노'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세련된 액션의 진수에 다름 아니었다.
'추노'에서 길거리 근접전 최강의 전투력을 보였던 장혁은 '뿌리깊은 나무'에서 마침내 업그레이드된 전사로 거듭났다. 특히 1회 첫 장면에서 보여준 그의 '상상속 세종 살해기도 액션신'은 장이모우 감독의 화려한 액션연출이 돋보였던 '영웅'의 조선시대 버전. 또한 역시 '추노'에서 충직했으되 허망하게 유명을 달리한 조선 무관 조진웅 역시 (배우의 살 빠진 외모와 함께) 검기 서슬 퍼런 검사로 거듭났다. 그렇다. '업그레이드'는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이밖에 순간순간 어스름 달빛을 잡고, 벼루의 반짝이는 물기를 잡고, 날아가는 '최종병기' 활의 시위 떠난 울음소리를 잡아낸 빛나는 미장센은 이 드라마 제작진의 내공을 여실히 드러낸 부분. 현란한 플래시백(과거회상)으로 사건과 인물의 정체성을 조금씩 양파처럼 보여주는 솜씨 역시 무릎을 칠 만하다. 여기에 "내 주위 사람들을 내가 다 죽이게 했다"며 자책하는 세종에게 "전하의 잘못이 아닙니다"라는 필답을 수도 없이 올리는 말못하는 소이(신세경)의 애틋한 마음까지.
맞다. '뿌리깊은 나무'는 1주일에 두 번이나 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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