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드라마 '천일의 약속'(극본 김수현 연출 정을영)의 돌풍이 무섭다. 방송 2회 만에 월화극 1위를 차지했다는 수치적인 측면뿐만이 아니다. 정통 멜로가 먹히기 힘든 안방극장에서, 그것도 알츠하이머라는 제법 해묵은 소재로 시청자들의 뇌리에 각인되고 있다는 면에서 그렇다.
'천일의 약속'의 기본 골자는 수애(이서연 역)과 김래원(박지형 역)의 사랑에 있지만, 사실상 대부분의 조명은 수애가 받고 있다. 표면적으로 박지형만이 수애를 그리워하는 캐릭터 탓도 있지만, 수애가 알츠하이머라는 전 인생을 통튼 비극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방송된 3회에서 수애의 모노드라마는 빛났다. 알츠하이머를 진단받은 수애가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운명에 저항하는 독백이 이어졌다. 가위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해 손가락을 가위질을 보이는 수애에게 동생 박유환(이문권 역)이 노화현상이 왔다고 핀잔을 주자, 수애는 "형광펜! 가위!"를 외치며 절규했다. 또 욕실에서 분노의 양치질을 하며 치약, 칫솔, 물컵 등의 이름을 되새겨 기억력 상실에 몸부림쳤다.
수애의 이러한 활약 뒤에는, 극적이고 비일상적인 대사조차 상황으로 풀어내는 김수현 작가의 힘이 크다. 김수현 작가는 대사만으로 자신의 드라마임을 알아채게 하는 뚜렷한 색채를 가진 작가. 문학적 비유가 섞여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대사에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극 중 전체 인물을 자신의 세계 안에서 쏟아내며 각 캐릭터의 개성과 캐릭터 간 조화를 완벽히 이뤄낸다.
때문에 일각에서 '배우는 안 보이고, 김수현만 보인다'는 질타 아닌 질타도 있다. 하지만 이 점이 시청자에겐 김 작가의 드라마에 빨려들 수밖에 없는, 배우에겐 김 작가의 작품에 캐스팅되는 것을 앞 다퉈 '영광'이라고 표할 수밖에 없는 강력한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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