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원작 10번 읽어도 못푸는 미스터리 '넻'

김관명 기자  |  2011.11.03 11:21
'뿌리깊은 나무' 등장인물.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정기준 이방지 강채윤 옥떨이

SBS 수목드라마 '뿌리깊은 나무'가 지난 2일로 9회까지 방송됐다. 호기심 많은 시청자거나 원래 팩션에 관심 많은 독자들이라면 작가 이정명씨의 동명 원작소설을 읽어봤을 터. 세종의 한글창제를 둘러싼 미스터리 사극이라는 점에서 드라마와 소설은 한 뿌리지만, 그 세세한 얼개와 등장인물에서는 하늘과 땅 차이다.


9회 방송분에서 정체가 드러난 4글자 '군나미욕'(君那彌欲)만 해도 그렇다. 윤필이 강채윤(장혁)에게 쫓기다 불에 태우려 하다 남은 문서의 이 글자는 원작소설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드러났듯, 그리고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명확히 쓰여 있듯 한글 창제과정에서 자음의 초성을 나타내는 길잡이 글자들이다.

해서 모아봤다. 지금까지 시청자들을 간지럽힌 드라마 미스터리, 그 중에서도 원작만 봐서는 절대 모를 4가지만 모아봤다. 드라마 시작 화면에 등장하는 방송회수 글자체를 흉내 내면 '뿌리깊은 나무의 미스터리 넻'!

"정기준 너는 누구냐? 밀본의 정체는?"

9회가 끝나고 나서 예고편에 등장한 반촌 행수의 말은 최고의 기대감을 갖게 했다. "정기준이 누구냐면?.." 사실 지금까지 등장인물이나 시청자들 입장에서 가장 궁금한 것이 이 '정기준'의 정체다. 연쇄살인의 배후로 지목된 비밀결사 '밀본'(密本)의 3대 본원이기 때문이다.

드라마상으로는 정도전의 동생 정도광의 아들이며, 어린 세종 이도(송중기)에게 "넌 아무 것도 못해"라고 비아냥거린 인물이다. 재상정치, 사대부정치의 화신이며 임금은 '꽃', 사대부와 재상은 '뿌리'라고 '감히' 말한 혁명가다. 그리고는 20년 전 홀연히 사라진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최고 미스터리 인물이다.

해서 연쇄살인으로 집현전 학사들을 잃은 세종(한석규)은 말할 것도 없고, 이를 캐는 겸사복 강채윤과 호위감 무휼(조진웅), 그리고 최만리 등 집현전 수뇌부 모두의 촉각이 이 정기준과 밀본에 쏠려 있음은 당연지사다. 시청자들도 혹시 심종수(한상진)일까, 가리온(윤제문)일까, 아니면 반촌에 있는 '여진족'일까 계속 헛다리 아닌 헛다리를 짚고 있다.

하지만 원작소설에는 이 정기준이라는 인물 자체가 없다. 드라마의 핵심인 밀본도 없다. 스포일러 때문에 밝힐 수는 없지만 소설 막판에 드러나는 연쇄살인의 범인이 이 사대부 비밀결사와 연관됐다는 어떤 근거나 암시도 없다. 다만 이 밀본과 정기준이 한글창제를 핵심으로 한 세종의 개혁정치를 반대하는 사대부 핵심집단의 추상적 개념인 것만은 분명하다.

'비바사론'? '고군통서'가 아니고?

원작소설을 관통하는 최고의 비밀 서책은 '고군통서'다. 장성수를 비롯해 허담 윤필 등이 이 책 때문에 죽었다. 소설에서는 정인지가 이 책의 내용을 비상한 기억력으로 읊는 대목이 나온다. "예로부터 이 나라는 고유의 말과 풍속을 지녔으니 중국의 속국이 아니고...그러니 왕이여 명심하소서. 어설픈 흉내로 작은 중국이 되려 하지말고 격물로 치지하시와 이 나라가 온전한 나라로 곧추서게 하소서."

한마디로 중국 성리학과 사대사상에 빠져있는 당시 사대부 입장에서는 경을 칠 만한 금서 중의 금서인 셈.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최소 9회까지만) 이 '고군통서'가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범어)로 기록된 불교경전 '비바사론'이 거의 같은 비중으로 등장한다. 장성수(류승수)의 책보따리에서 발견된 음란서에 쓰여진 글자도 이 산스크리트어다.

따라서 이런 추론은 가능하다. 한글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글자가 산스크리트어이니까 '비바사론'이 혹 한글창제를 위해 학자들이 집중적으로 참고한 서책이 아닐까 하는. 소설에서도 비슷한 맥락을 찾을 수 있다. 채윤이 몽골의 음란서에서 그리고 그 책에 사용된 팔사파문자에서 '비밀의 열쇠'를 찾는 대목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 이 문자가 죽음의 단서일지 모릅니다."

이방지 vs 옥떨이..핵폭풍급 조연?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정기준에 버금가는 미스터리 인물 또 한 명을 찾으라면 단연 '조선제일검' 이방지(우현)다. 원작소설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무휼을 거의 초주검 상태로 몰아붙인 검의 달인이다. 또한 채윤에게 땅을 박차고 허공을 돌아다니게 하는 비기 '출상술'을 가르쳐 준 스승이 바로 이방지다. 채윤과 2번이나 맞붙은 밀본의 자객 윤평(이수혁)도 이 출상술을 자유자재로 쓰는 것을 보면 이방지 역시 밀본 세력일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반촌 행수가 수하에게 이런 말까지 했다. "함길도에 있는 이방지를 찾아보라우."

돼지 울음소리, 향피리 소리, 개 짖는 소리 등을 그대로 따라하는 구희전문가 옥떨이(정종철)가 앞으로 드라마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도 궁금한 대목. 지금까지는 단역에 불과하지만, 한글 창제 기본원리가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글자'(표음문자)임을 감안하면 이 옥떨이가 단순 조연이 아닐 가능성은 농후하다. 오죽했으면 세종이 직접 옥떨이를 불러 개 짖는 소리를 시연해보라고 했을까. 어쨌든 소설에는 나오지 않는 이 두 인물이 향후 드라마 전개에서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강채윤의 복수, 그 끝은? 그리고 소이와는?

이제 강채윤 차례다. 소설의 강채윤과 드라마의 강채윤은 '호기심 많고 한 번 물은 것은 절대 놓지 않는' 점을 빼면 전혀 다른 인물로 봐도 무방하다. 물론 집현전 학사들의 연쇄살인 배후를 캐는 겸사복인 것은 똑같지만, 출상술은 말할 것도 없고 기본 검술이나 무술 수준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보다 결정적인 차이는 드라마에서 강채윤은 오로지 세종을 향해 복수의 칼을 갈고 있다는 것. 어린 똘복이 시절 목도한, 아비를 죽게 한 원수가 바로 세종 이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세종을 향한 채윤의 사적 복수심이 끝까지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강채윤의 정체를 알게 된 세종이 오히려 "네 갈 길을 가라"라고 말함으로써 채윤의 목표선이 이미 흔들린 것. 게다가 향후 밀본과 정기준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또 언제 세종의 인간적 매력이나 한글 창제에 얽힌 숨은 뜻을 알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글 창제와 반포 과정에서 강채윤이 세종의 최대 조력자로 변신할 가능성도 있다.

소이(신세경)도 변수다. 소설에서는 소이와 강채윤이 성인이 돼 궁궐에서 처음 만난 것으로 설정돼 있지만, 드라마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도란도란 단짝 친구였다(그래서 난리통에 서로 죽었을 것이라고 믿는 상대방을 잊지 못한다). 또한 소설에서 소이와 세종은 한글창제를 둘러싼 '비밀스러운 공적 관계' 이상은 아니었지만, 드라마에서는 이미 소이를 향한 세종의 눈물겨운 연심이 드러났다. 이미 세종은 소이에게 말했다. "네가 흔들리면 나도 흔들린다"라고.

때문에 앞으로 소이와 강채윤이 서로의 정체를 알게 되는 순간은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를 송두리째 흔드는 폭풍이 될 전망. 소이, 세종, 강채윤 이 세 등장인물의 얽히고설킨 선택 여하에 따라 채윤의 복수 향방까지 확 틀어질 게 거의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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