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에 이어서.
2010년 '추노'부터 2011년 영화 '위험한 상견례', 2012년 '해를 품은 달'과 '샐러리맨 초한지', '부러진 화살'까지. '2할만 쳐라'가 연기철학이지만 요즘 8할을 치고 있는 배우 김응수(51)가 "작품이 사랑받는 것만큼 배우에게 기쁨은 없다"라며 미소 지었다.
모르는 이들은 그에게 '운이 좋다'라고 하지만, 이는 30년 연기 인생에서 그가 쌓아온 안목과 연기경력, 인생의 내공이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했음을 모르고 하는 말. 김응수를 만나 그만의 작품 선택 비결과 연기 철학에 대해 들어 봤다.
-영화 70편 드라마 17편을 했다고.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나 역할은?
▶영화 '그때 그 사람들'. 앞에 몇 분 뒤에 몇 분. 박정희 전 대통령 아들 박지만씨가 낸 상영 금지 가처분 신청으로 영화 일부 장면이 삭제된 채로 상영을 했다. 그런 아픔이 있는 작품이라 기억에 남는다. 법의 시효가 시작되는 시점에 이미 상영을 시작해 필름을 자를 시간이 없었다. 영상위원회에서 손으로 가려서 막았다. 나중에 편집해서 자르니까 배우와 감독으로서는 팔다리가 잘리는 아픔이지.
당시 민대령 이라는 인물을 연기 했는데, 실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오른팔 역할을 했던 박흥주 대령에사 따온 일물. 권력의 핵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여동생 형들은 아파트 경비원 청빈한 삶을 살다간 사람이다. 그 연기를 위해 유가족에게 연락을 취하기도 하고, 박흥주 대령의 후원회장을 만나 이야기도 나눴다. 그런데 그 후원회장이 소설가 황순원 선생의 막내아들 황남규씨였다.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떻게 거기까지 아느냐' 그래서 '내가 다 조사했다'고 했더니, 그제야 마음을 열고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해줬다. 일본 영화 '우나기'의 감독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치바에 1년을 살면서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나 역시 그렇게 조사를 하지 않으면 자신이 없다. 예를 들어 윤대형을 하려면 그와 관련된 자료를 보지 않으면 어떤 인물이 떠오르지 않으니까. 철저하게 조사하고 캐릭터를 구상한다.
-지금까지 해온 작품 가운데 실제 본인과 가장 비슷한 캐릭터는?
▶드라마 '나쁜 남자'의 곽반장 같은 캐릭터가 실제 성격이랑 제일 비슷한 것 같다. 그런 사람은 진급이 안 된다. 출세를 못하지. 곽 반장 할 때 대본을 보고 '이건 연기가 필요 없고 내 모습 그대로 가면 되겠다' 했다. 가능하면 연기를 가미하지 않으려고 했다. 일본 위성에서 '나쁜 남자'가 방송을 하는데, 한 시청자가 "'나쁜 남자' 1회를 봤다. 극이 시작돼서 7분 정도 됐는데 곽반장이 나온다. 7분 만에 '나쁜남자'라는 드라마 속으로 빠져 들게 됐다"라고 이메일로 감상평을 보냈더라. 많은 배우들이 연기를 못 할 수록 자꾸 꾸미려고 한다. 최불암 선생님을 보면 어디 꾸민 연기를 하시던가. 고수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 분이 얼마나 노력하는지는 모르고 연기를 잘 한다고만 생각한다.
-연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원래 연기를 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당시 대한민국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명문고를 졸업했다. 부모님의 기대가 컸다. 그런데 당시에 공부에 완전히 질려서, 2학년 후반에 포기하고 매일 소설을 읽었다. 문예창작학과를 가겠다고 했다. 소설을 쓰려고 한 거지. 소설가는 모든 것을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데, 별로 재미가 없더라. 그래서 북 치고 장구치고 할 수 있는데 뭐가 있느냐. 그것이 연극이었다.
아버지를 속이고 1년간 서울에서 재수를 했다. 새벽2시에 기차를 타고 연극영화과 원서를 사고 고향에 내려가니까 부모님이 안 주무시고 앉아 계시더라. 대학원서를 보더니 아버지가 연을 끊자고 하시더라. 결국 합격하고 나니 못 이기고 수업료를 주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한 편도 내가 출연한 작품을 보신 적이 없다. 끝까지 인정을 하시지 않은 것. 그래도 어머니는 요즘 드라마에 나오니까 좋아하신다. '이게 효도구나' 싶었다. 솔직히 그래서 드라마를 계속 하는 것도 있다.
-30대 중반에 영화 데뷔. 그 전에는 어떤 일을 했는지.
-일본으로 건너가 영화연출을 배웠는데?
▶ 그 당시에는 영화나 TV를 왜 하느냐 하는 시대였다. 검열 때문에 형편없는 그런 시기였고, 영화하고 드라마 보면 욕먹는 시기였다. 그런데 계속 연극을 하다 보니 재미가 없어지더라. 연극 문법의 한계가 보였다. 그런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은 영화였다. 연극적 언어도 대단하지만 계속 하다 보니 연극 언어를 구체화 시키고 싶었던 것. 판소리를 보다 보면 춘향이와 이몽룡 나오는 것을 실제로 만들어 보고 싶지 않나, 그래서 창극이 나오는 것이고. 그러나 국내 제작환경이 암담했기 때문에 일본으로 가서 공부를 하게 됐다. 일본 영화가 당시 베니스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고 자국 제작 영화편수가 할리우드를 앞서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귀국 후 다시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된 이유?
▶ 선배들이나 후배들이 물어보면 주저 없이 나는 한국에 가면 '흥부와 놀부'부터 하겠다고 했다. 형제끼리 싸움. 통일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그런데 통일 얘기를 해 봐야 고리타분하다고 관심을 가져주지 않더라. 그래서 포기했다.
95년 영화학교 3학년 때인데 '깡패수업'이라는 영화가 일본 로케로 찍으러 왔는데, 배우와 감독만 한국인이지 스태프가 다 일본사람이었다. 당시 제작사 대표가 친구였다. 친구가 영화사를 만들어서 작품을 하는데, 내가 연출공부 하는 것을 아니까 연출부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래서 촬영을 하는데 박상민이 가게에서 행패를 부리는 신이 있는데 거기에 웨이터가 필요했다. 근데 한국인이 운영하는 술집이라 일본 스태프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웨이터를 하게 됐는데 옷 사이즈도 딱 맞더라. 촬영을 하다보니까 틈이 생겨 뭔가 애드립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명계남 형이 저한테 애드리브로 대사를 쳤고, 거기에 가만히 있었으면 되는데 대꾸를 한 것. 거기서 배우들이 폭소가 터졌다. 감독도 내가 연극배우였던 걸 몰랐으니 헤드폰을 빼고 나와서 이렇게 잘 할 줄 몰랐다고. 거기서 박상민이 내 얘기를 했다. 그렇게 되면서 97년에 귀국을 하니까 감독이 '투캅스 3'를 제작하고 있었는데 조감독이었던 장규성 감독을 시켜서 캐스팅을 했다. 그 다음에 인연이 돼서 계속 작품을 같이 하게 됐다. 나는 빨리 영화 연출을 해야 되는데, 나중에는 배우를 계속 하다 보니까 내가 재밌어 지더라.
-영화 연출자의 꿈은 아직도 유효한가?
▶ 그래도 영화 현장에 계속 있다 보니까 인맥도 생기고 동지들을 만들어 놓고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허송세월을 한 것은 아니다. 심적으로 감독을 해야겠다는 내면의 움직임이 있다.
예술이라는 것은 음악이든 미술이든 건축이든 연기든 공통분모가 있다. 인간을 그린다는 점. 그 인간을 그리는 방법이 하나는 감독이고 하나는 배우일 뿐. 내가 감독을 한다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다. 인간에 대한 관심을 갖고 그 인물을 그리는 것이고. 감독은 배우들을 모아서 각 인물들의 성격을 그려서 전체적인 조화를 시켜 관객들에게 내 놓는 것. 배우와 달리 감독은 작품 전체를 통해서 전달하니까 메시지의 전달 방법이 다른 것뿐이다. 그런데 배우는 내 입을 통해 메시지를 줄 수는 있어도 작품 전체로 메시지를 주지는 못한다. 감독은 내가 갖고 전하고자 하는 것을 작품으로 만들어서 전달할 수 있다. 메시지의 전달 방법이 더 크다. 언젠가 내 영화를 만들어 선보이겠다.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요즘 젊은 친구들이 장래에 직업과 꿈에 대해서 설문조사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연예인라고 답을 한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 봤다. 처음엔 젊은 친구들이 너무 화려하고 편하고 이런 것을 좋아하는구나 생각을 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친구들이 경영학과를 나와서 회사에 들어가 큰 기업으로 키워내겠다는 꿈을 가져도, 입사를 했을 때부터 그 꿈을 못 이루는 구조다. 내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이 회사의 사장은 사장 아들이 되는구나 싶은 것. 그렇다면 내가 노력한 만큼 이룰 수 있는 곳이 연예계라고 판단한 게 아닐까.
그런데 연예인은 곧 일확천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자기 인생의 꿈 진심을 표출할 때가 없는 것. 모든 사람들이 인류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가치를 지닌 친구들이 분명 있을 텐데, 그것을 다 버리게 되는 것이다. 연예계 역시 피눈물나게 노력하는 사람들이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단시 일확천금의 생각만으로 연예인을 꿈꾼다면 그런 생각을 버리고 인생의 가치를 제대로 세워라. 그러면 부는 따라오게 돼 있다. 젊은이들에게 그런 얘기를 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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