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품달' 김응수 "惡이 흔들리면 절대 안된다"①

최보란 기자  |  2012.02.09 15:02
배우 김응수 ⓒ사진=안은나 인턴기자 coinlocker@


"운이 좋다? 제가 볼 때 재미있는 작품을 고르고, 최선을 다해 연기했을 뿐이죠."

요즘 뜨는 작품 속에는 항상 배우 김응수(51)가 있다. 2010년 '추노'부터 2011년 영화 '위험한 상견례', 2012년 '해를 품은 달'과 '샐러리맨 초한지', '부러진 화살'까지. 그래서인지 근래 주위에서 "운이 좋은 것 같다"라는 말도 많이 듣는 그다.

그러나 이는 30년 연기 인생에서 그가 쌓아온 안목과 연기경력, 인생의 내공이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했음을 모르고 하는 말. 김응수를 만나 그만의 작품 선택 비결과 연기 철학에 대해 들어 봤다.

김응수와 만남에서 우선 '하는 작품마다 인기를 끌고 있는데 소감이 어떤가' 하는 질문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배우로서 최고의 기쁨이다. 출연한 작품이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만큼 배우로서 기쁘고 긍지 있는 일이 없다. 그러나 그 기쁨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인생철학인데 '2할만 쳐라'. 초등학교 때부터 평생을 야구해 온 이승엽도 3할은 못 친다. 그런데 그 2할을 치려면 타석에 계속 서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칠 자격이 없으니까. 그래서 영화 10편해서 2편만 성공하면 잘하는 것이다. 내 경우 요즘 8할 이상을 하고 있는 셈이니 기쁨은 말할 수 없다."

특히 올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인 '해품달'의 나날이 치솟는 시청률을 언급하니, 김응수는 "시청률이 40%(수도권 기준)를 넘을 것이라고 예감했다"라며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대본을 보면 아니까.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그런 재미가 있었다. 이건 뭐 40%는 가겠다 싶었지. 방송이 나가기 전부터도 이건 무조건 넘는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주위에선 '작품 선택을 잘 했다. 연기를 잘했다. 좋은 작품이라 그렇다'고 얘기를 안 하고 '운이 좋다'고 하더라. 배우에겐 맡은 임무에 책임을 다 해야 하고, 좋은 연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희노애락을 줘야 한다는 책임이 있다. 또 맡은바 소임을 다 하면 완성도 있는 작품이 되는 거고. 지금은 시청자들의 수준이 굉장히 높다. 그 분들을 어떻게 속이나."

배우 김응수 ⓒ사진=안은나 인턴기자 coinlocker@

오랜 연기생활에도 그런 작품을 알아보기가 쉽지는 않을 터. 김응수가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의외로 간단하고도 어려웠다.

"재미라는 것은 웃는 재미가 있고 우는 재미가 있다. 코미디냐 비극이냐. 둘 다 있으면 좋은 것이고. 작품을 보고 분노가 치민다 하는 작품도 있다. 사람의 희노애락이라는 감정을 어느 정도라도 자극한다면 나는 그 작품을 한다. 나의 작품선택의 키는 '재미'다."

'해품달'의 경우는 "왕과 무녀의 이루어 질 수 없는 러브 스토리, 신분과 계급 사회적 관습. 그런 신분적인 차이를 넘어서는 스토리가 가슴 찡했다"고.

"거기서 윤대형의 캐릭터가 굉장히 좋았다. 애절한 사랑의 과정을 방해하고 갈등을 유발시키는 인물. 끊임없이 권력을 쫓는, 지나고 보면 허망하기 그지없는 권력욕. 그런 인간의 욕망. 그게 선택의 이유 다였다. 선과 악이라는 개념이 거기에 들어오면 잘 못 된 것이다."

윤대형이라는 인물을 논하면서 '추노'의 좌의정 이경식 얘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 70여 편이 넘는 작품 중에 악역은 7편 정도밖에 안 된다는 김응수가 '명품악역'으로 시청자들에 눈도장을 찍은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추노'에 함께 출연했던 윤문식 선배님이 '지금까지 어떤 좌의정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평하시더라. 조선이라는 관료제 사회에서 엄청난 시험과 정신적 훈련의 과정을 거쳐 오른 사람들이 아닌가. 조선 최고의 인재들이 모이는데 얼마나 치열했겠나. 그러면 말투하나 옷매무새, 걸음걸이하나 함부로 하지 않는다. 아랫사람이라고 쉽게 말을 안 놓을 것이다. 그것을 내가 재현 한 것. 또 존댓말에는 살짝 비꼬는 부분도 들어 있었다. 곽정한 감독과 천성일 작가에게 내 생각을 이야기 하고 대사를 그런 톤으로 조금씩 바꿨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진짜 좌의정 같다'하더라."

좌의정에 이어 이번엔 영의정. 특히 권력욕을 앞세워 왕과 대립하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유사하게 비춰지기도 하는데. 김응수 역시 '추노'와 '해를 품은 달'에서 어떻게 다른 연기를 선보일 것인가를 고민했다.

"저도 제일 고민하고 걱정했던 부분이다. '추노'에서 이미 많이 보여줬던 부분이고. 윤대감은 또 어떻게 형상화 할 것인가. 그런데 이경식이라는 인물의 성격과 윤대형의 성격이 다르다. 낮은 노비 계급들을 이용해서 정치적 야욕을 달성하고자 했던 인물이 이경식이라면, 윤대형은 직접 움직인다. 니체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에서 '남을 정복하고 동화하여 스스로 강해지려는 의지가 권력의지다. 이것이 존재의 가장 심오한 본질이며 삶의 근본 충동이다'라고 했다. 거기에서 윤대형의 캐릭터를 형상화 했다. 인간 행위의 원초적인 본질에는 선과 악이 반드시 공존한다. 남들은 악으로 볼 수 있지만, 윤대형에게는 삶의 본질을 따르기 위한 선인 셈이다."

배우 김응수 ⓒ사진=안은나 인턴기자 coinlocker@

'해품달', '추노', '부러진 화살' 등이 애절함과 분노 등을 자극했다면 '샐러리맨 초한지'는 그가 추구하는 작품 속 재미 가운데 웃는 재미를 보고 선택한 작품. 그는 '김응수가 얼마나 코미디를 잘 하는지 보여 주겠다'는 각오로 이번 작품에 임했다.

"'샐러리맨 초한지'는 희한한 인연이다. 일본의 국민 작가 시바 료타로가 쓴 항우와 유방이라는 책을 유학시절부터 좋아해서 몇 번을 다시 읽었다. 그 책을 다시 읽어보려 펼쳐놓았는데, 때 마침 '샐러리맨 초한지' 대본이 왔더라. 보니 코미디로서 너무 재미있었다. 초한지 속 인물들을 비벼 놓은 비빔밥 같았다. 실제 '초한지' 속 한신은 그렇지 않은데 드라마에선 조금 다르게 바꿔 놨더라. 이건 대단한 코미디다. 김응수가 코미디를 얼마나 잘 하는지 보여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오지락 회장이 애교가 있지. 항우한테 속고 회사가 망하고, 굉장히 센 거 같으면서도 여린 구석이 있다. 그런데 배우들은 오지락과 윤대형을 두고 봤을 때 10이면 10 다 윤대형을 하고 싶어 한다. 긴장감을 줘야 하고 극을 이끌어가야 하기 때문에. 악의 축이 흔들리면 큰일 난다. 드라마는 갈등이다. 인물과 인물의 욕망과 욕망이 부딪혀야 하는 것이고. 갈등이 클 수록 시청자들의 재미는 커진다."

살펴보니, 최근 작품 속에서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이 대체로 주인공과 대립하는 악역이다. 김응수의 어린 두 딸 은서와 은아는 작품 속 아빠가 나쁜(?)사람으로 나오는 것을 아쉬워하지는 않을까.

"지금도 애들이 '해품달'을 보고 있고, 내가 무슨 역을 하든지 익숙해 졌다. 윤대형 처럼 악역을 하더라도 '좋다', '나쁘다' 얘기를 안 한다. 그냥 '재밌다', '재미없다'만 있을 뿐. 근래에 했던 착한 캐릭터로는 '나쁜남자'에서 형사반장이 있다. 끊임없이 수사를 하는 척 하면서 주인공인 김남길과 한가인을 도와준다. 따뜻한 형사인데 은서와 은아는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더라. 통속적이라고.(웃음) '싸인'에서 부장검사는 어떤 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수사를 도와주는데, 그것도 아이들은 시큰둥. 오히려 윤대형 같은 역할을 좋아하더라."

초등학생인 두 딸이 이미 착하고 나쁘고의 기준을 떠나 캐릭터의 개성과 극의 흐름상에서의 비중을 알아본다는 것. 김응수는 "요즘 애들, 무섭다. '해품달'에서도 아역배우들이 연기 훨씬 잘하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아이들이 선천적으로 그런 능력을 갖고 있다. 원작도 안 읽어 본 아이들이 대본만 보고 인물을 파악했다. 게다가 얼마나 절제되고 우아하게 연기하던지. 하물며 보는 것은 연기하는 것 보다 더 편한데 평가하는 수준은 더 높지. 저는 대본이 안 외워져 A4로 복사해서 항상 가지고 다닌다. 그런데 아이들은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두 어 번 보고 바로 외워버리는 것. 현장에서 하는 것을 봐도 애들이라고 볼 수가 없다. 일본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끝에 꼬마가 숨바꼭질을 하는 장면이 있다. 메이킹 필름에 그 초등학교 4학년 아이의 연기가 끝난 뒤, 감독이 박수를 치고 아주 정중하게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자네가 최고의 연기를 했다'고 극찬하는 장면이 있다. 그가 이렇게 얘기하더라. '아이들의 능력은 상상 이상으로 대단하다. 단, 어른 대접을 해 줬을 때'."

'명품 악역'. 김응수가 연기하는 악역은 어딘가 기품이 있고 세련됐다. 캐릭터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부터 파악하는 그의 연기는 시청자들을 어느새 자기편으로 끌어 들인다. 특히 요즘 흥행에 연달아 성공한 작품에서 고위직 악역으로 빛을 발했다.

그러나 실제 눈앞의 그는 드라마 속의 갈등을 이끌어 내는 악의 축의 모습은 없이, "폼 잡 는 게 힘들다"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추노' 좌의정부터 '해품달' 영의정, '샐러리맨 초한지' 그룹회장, '부러진 화살' 부장판사. 참 희한하게 최근에 계속 고위직 캐릭터를 맡게 됐다. 다음에는 '전원일기' 속 최불암 선배님처럼 청렴결백하게 살아가는 민중의 모습을 해보고 싶다. 소박하고 담백한, 남자배우라면 꿈 꿀 대한민국 아버지상 같은, 부귀영화에 따르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역할을 한 번 해 보고 싶다. 폼 잡는 게 참 힘들다. 하하."

-인터뷰②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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