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가 하면 따뜻했고, 주도면밀한가 싶으면서도 '허당'. 악역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그 남자. SBS '샐러리맨 초한지' 속 최항우는 모든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들의 매력을 총집합 시킨 것 같은 캐릭터였다. 배우 정겨운(29)이 아니었다면 최항우가 이토록 멋진 인물로 표현될 수 있었을까.
"최항우로 좋은 평가를 받아서 감사해요. 의도했던 바였죠. 하하.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만들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일에 있어서는 철두철미하고,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는 허술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표현하려고 했죠.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역할이라 만족스러워요."
최항우라는 캐릭터는 기성복이 아니라 맞춤 정장이었다. 우연히 정겨운이 딱 들어 맞았던 것이 아니라, 그가 치수를 재고 재단사와 상의하며 완벽한 옷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
"처음엔 유방(이범수 분)한테 당하면서 코믹스러운 부분이 나올 줄 알았어요. 연기하면서 보니 오히려 우희(홍수현 분)한테 꼼짝을 못하는 모습이 바로 항우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더군요. 그래서 우희랑 찍는 장면에선 대사 톤도 바꾸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표현했어요. '이게 진짜 항우다'라는 식으로. 그러면서 코믹은 더 코믹으로 가게 되고 경쟁구도에선 더 나쁜 남자로 차이가 극명하게 됐죠. 재미있었어요."
항우의 매력은 또한 악역인지 아닌지 미묘한 경계선에서도 찾을 수 있다. "처음부터 악역이라고 생각을 안 했어요. 나쁜 점은 부하들을 막 부리는 것. 철저하게 밑에 사람을 없애서라도 뭔가 이뤄내는 모습은 멋있죠. 비열해 보이기도 하지만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움직인다든지. 악역이라고 볼 수만은 없는 명분이 있었죠. 또 우희와 함께 있으면서 그런 나쁜 이미지가 많이 희석됐고요. 우희의 도움이 컸죠."
우희와의 로맨스는 거친 남자 항우가 남성 시청자와 더불어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사로잡는 데 일조했다. 한 살 연상인 홍수현과의 극중 달콤한 장면들이 뭇 여성들을 설레게 했고, 실제로도 한 살 연상의 여자친구도 질투하게 만들었다고.
"여자친구가 드라마 너무 재밌게 봤다고 하면서 응원도 해주고 늘 격려해 줘서 고마웠어요. 우희와의 로맨스가 펼쳐질 땐 질투를 하기도 했죠.(웃음) 힘들게 촬영하면 문자나 전화로 격려를 해줬는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됐어요."
로맨스 얘기가 나오니 자연스럽게 결혼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많은 배우들이 '지금은 연기생활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과 달리 정겨운은 "결혼은 가능하면 일찍 하는 게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일찍 결혼해 아이를 낳는 것이 안정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드라마 속에선 우희를 향한 진솔한 프러포즈가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정겨운은 "현실에서 청혼을 하게 된다면 상대에게 편지를 써서 낭독을 해 주고 싶어요. 특히 장소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유럽 여행을 가서 에펠탑을 배경으로 불꽃이 터질 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라며 로맨틱 가이의 면모를 드러냈다.
인터뷰 중 정겨운은 선배 및 동료 연기자들의 이름을 많이 언급했다. 그 만큼 다른 연기자들의 도움이 특히 컸고, 촬영장에서 호흡도 좋았다.
"이기영 선배님이 멘토 같으셨어요. 30년 연기 경력에서 오는 내공이 있었죠. 연기적으로도 인생관으로든 본받고 싶어요. 대사를 하고 캐릭터에 몰두하는 법에 대해서도 코치를 많이 해주셨어요. 계속 선배님 따라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범증처럼 대사를 하고 있기도. 선배님을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예요."
"김서형 누나는 평상시랑 연기할 때랑 너무 달라요. 극중에 모가비와 포옹신이 많아서 모가비한테 빠져 들 것 같더라고요. 하하. 마지막 장면에서 모가비가 실성한 듯 웃는 장면에서 서형 누나 연기에 소름끼쳤죠. 그렇게 연기를 마치고는 저랑 눈이 마주치자 평상시처럼 장난도 치시고 하더군요.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데뷔 8년차인 정겨운은 다양한 필모그래피가 재미있는 배우다. '닥터챔프'에서 우직한 유도선수로, '싸인'에서 열혈형사로, '미워도 다시 한 번'에선 바람둥이 여자 킬러로, '천만번 사랑해'에선 세상 다시없을 따도남으로. 그러나 그간 사극과 영화에서만은 그를 만나보기 힘들었다.
"이번에 사극에 대한 욕심 좀 나더라고요. '샐러리맨 초한지'를 하면서 남성적인 매력에 빠졌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려면 사극이구나 싶었어요. '뿌리깊은 나무'를 좋아했으니까. '해를 품은 달'도 완성도가 높더군요. 아역 때부터 시청률이 20% 대가 나오는 건 대단하죠. 제가 사극을 하게 된다면 착하지 만은 않은 인물. 전형성을 탈피하는 개성 있는 인물로 강렬한 연기를 하고 싶어요."
드라마 속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오간 정겨운은 실제 모습은 '닥터 챔프'의 박지헌과 제일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런 드라마를 언제 해볼까 싶었어요. 운동선수를, 그것도 유도 선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가 흔치 않아서. 운동도 워낙 좋아하는 거라, 드라마를 찍었다는 느낌보다 좋아하는 일을 했다는 기분이 들었죠."
서른이 넘으면서 남성적인 매력이 더해진 것 같다는 말에 정겨운은 "점점 좋은 쪽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나이를 먹을 수록 더욱 나다워 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악역을 맡아도 좋아요. 악역이라도 충분히 호감있게 캐릭터를 승화를 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어릴 땐 캐릭터를 맡기 전에 고민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그런 고민이 많이 줄었죠. 악역이어도 괜찮고, 다양한 직업과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다음 작품에서도 또 다른 정겨운을 보여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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