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재판이야? 개판이지!"
정지영 감독의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피고인 안성기가 재판장을 향해 외친 명대사다. 깐깐한 사법부에 대한민국 법조문을 들이대며 정면 대항한 '괘씸'하고도 '꼴통'인 교수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이 있은 직후였다. 사법부의 그 판결이란 게 누가 봐도 치졸하고 비겁했기에 이 안성기의 일갈에 공감한 관객 진짜 많았다.
이 비슷한 분위기가 TV드라마에서 펼쳐졌다. 지난 17일 16부로 막을 내린 SBS 월화드라마 '추적자'(사진). 백홍석(손현주)의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가 살인죄, 도주죄, 공무집행방해죄 등을 적용해 15년형을 선고했을 때, 비록 묵음으로 처리됐지만 법정 참관인들 사이에선 삿대질과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들만이 아니라 백홍석 변호를 맡았던 최정우 변호사(류승수)나 백홍석을 위해 백방으로 뛴 조형사(박효주) 등의 심정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이게 재판이야? 개판이지!"
하지만 '추적자'의 결말이 더 안타까운 건 이 마지막 재판에서 드러난 우리나라 사법이나 경찰행정 시스템이 '부러진 화살'의 그것처럼 '개판'은 아니라는 데 있다. 개판이라면 비웃기라기도 하지, 논리상 정연하고 법리상 오류가 없는 그 시스템에 대해 과연 사회적 약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딸의 죽음에 격분한 점은 정상 참작할 수 있으나 법률은 자력구제를 금지하고 있다"는 재판장의 말은 어쩔 수 없이 옳은 것이니까.
하지만 '추적자'의 사필귀정은 불완전했고 인과응보는 약했다. 말끝마다 자신의 어렸을 적 트라우마를 말함으로써 현재를 합리화하는 킹메이커 서 회장(박근형)은 여전히 무사했으며, 한오그룹 장학생인 박민찬 검사(송영규)는 재판에서 이긴 후 능글맞게 시~익 웃었다. "아빠, 고마워. 아빠는 무죄야"라는 딸 백수정의 위로는 결국 판타지이며, 아들 딸 모두 떠난 서 회장의 쓸쓸한 뒷모습은 결국 절대자 혹은 신의 소심한 복수에 다름 아니었다.
30억원을 받고 친구의 딸을 죽인 의사 윤창민(최준용), 자신들의 정치적 야심을 위해 한 생명 쉽게 없앤 강동윤과 서지수, 이를 방조·묵인·은닉한 신혜라 배기철(오타니 료헤이) PK준(이용우)은 법의 심판과 집행을 받으면 그뿐이다. 그러나 아르바이트를 해서 아빠에게 전기면도기를 사준 그 예쁜 딸과 남편을 끔찍하게 사랑하고 믿었던 그 토끼 같은 아내(김도연)의 허망한 삶과 죽음은 도대체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15년을 감옥에서 썩어야 할 백홍석의 회환과 외로움은 도대체 누가 위로하고 채워줄 것인가.
맞다. '추적자'의 결말은 선택의 여지없이 옳았다. 이 냉랭한 세상에선 영화나 동화 같은 멋진 기적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고, 이 한심한 세상에선 권력과 재력이 여전히 '슈퍼 갑'인 것이며, 이 무심한 세상에선 결국 선량하거나 추악한 인간들이 함께 악다구니처럼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추적자'는 끝났고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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