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음원차트에서는 미묘하지만 명확한 변화가 감지된다. 4월 버스커버스커 1집의 메가톤급 돌풍, 6월 형돈이와대준이, 용감한녀석들 등 소위 '개가수' 열풍, 8월 싸이의 '강남스타일' 초대박 사건.. 2~3년 아이돌 일색이었던 음원차트에선 좀체 벌어지지 않았던 일이다.
9월 들어서선 브라운아이드소울의 나얼이 또 한 번 일을 낼 조짐이다. 지난 20일 공개한 첫 정규앨범 'Principle Of My Soul'이 21일 오전 10시 현재 멜론, 엠넷 등 주요 음악사이트 상위권을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있다. 타이틀곡 '바람기억'이 멜론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을 비롯해, 'Missing You'(2위), '기억리듬'(3위), '이별시작'(4위), '여전히 난'(7위) 등이 줄을 이었다.
이는 우선 엇비슷한 아이돌 음악에 물린 가요팬들의 '대탈주' 현상으로 보인다. 다 아시다시피 2007년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의 성공 이후 등장한 최소 200여팀의 걸그룹·보이그룹의 댄스음악(혹은 댄서블 힙합음악)은 지난 수년간 음원차트에서 감히 넘볼 수 없는 최강자였다.
2008년 연간음원차트 1위(이하 멜론 기준)는 원더걸스의 'So Hot', 2위는 빅뱅의 '하루하루', 2009년 1위는 소녀시대의 'Gee', 2위는 2NE1의 'I Don't Care', 2010년 1위는 미쓰에이의 'Bad Girl Good Girl'. 지난해에도 티아라의 'Roly-Poly'가 1위, 2NE1의 '내가 제일 잘 나가'가 3위, 비스트의 '비가 오는 날엔'이 4위, 씨스타의 'So Cool'이 6위였다.
하지만 아이돌 음악은 지난해를 정점으로 과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올해 들어서도 이미 60여팀의 신생 아이돌이 등장했지만, B.A.P, EXO-K, 스피카 정도만이 두각을 냈을 뿐이다. 최대로 많이 잡아야 20여팀의 프로 작곡가 집단이 만들어낸 아이돌 음악 특유의 '공통분모'에 가요팬들의 피로감이 극에 달했다는 얘기다.
또 하나. 한 시절을 풍미했던 소몰이창법이나 3단고음, 미친가창력, '나는 가수다'나 '불후의 명곡' 같은 과한 보컬 경연에 가요팬들은 물릴 대로 물렸다. '죄와 벌' '겁쟁이' '사랑했나봐'부터 '여러분'의 임재범에서 방점을 찍은 '나가수' 스타일 음악까지. 노래가 '기교'와 '성대', '가창력' 그리고 '편곡' 승부로 변질되면서 대중은 점점 '이게 아닌데..' 싶었던 것이다.
버스커버스커, 싸이, 개가수, 나얼의 초특급 인기는 이에 대한 분명한 반증이다. 지난해 '슈스케3'를 통해 혜성같이 등장한 3인조 밴드 버스커버스커는 '벚꽃엔딩' 혹은 '여수 밤바다' 같은 그들만이 전할 수 있는 멜로디와 노랫말, 서정성으로 대중의 메마른 가슴을 촉촉히 적셔줬다. 대중은 이들의 보컬이 아니라 이들이 만든 노래에 열광했다.
싸이 역시 지난 7월 발표한 정규 6집에서 자신이 작사하고 유건형과 함께 작곡한 '강남스타일'로 단번에 월드스타로까지 치고 올라갔다. 예전 '새'(2001) '챔피언'(2002), '연예인'(2006) 등 초창기 시절 싸이만이 할 수 있었던 말춤이 담긴 뮤직비디오가 결정타였음은 물론이다.
나얼 역시 데뷔 13년만의 첫 정규 솔로앨범을 통해 싱어송라이터로서 '나얼 스타일'의 음악을 목마른 대중에 안겼다. 나얼이라는 독립된 아티스트 한 명만이 전할 수 있는 자전적 이야기로서 '앨범'의 그 소중한 의미. 예를 들어 타이틀곡 '바람기억'은 사람에 관한 메시지를 담은 노래로 소울풀한 나얼 특유의 보컬까지 한껏 살렸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바로 빅뱅의 롱런이다. 2006년 데뷔한 빅뱅은 지드래곤(과 테디)이라는 천재적 프로듀서 겸 작곡가의 존재로 인해 자신들을 다른 많은 아이돌그룹과 차별화하는데 성공했다. 올해 나온 미니앨범 'ALIVE'나 스페셜 앨범 'STILL ALIVE' 같은 빅뱅 음반은 물론 2009년 지드래곤 솔로음반 'Heartbreaker', 지난해 GD&TOP 음반, 올해 지드래곤 미니음반 'One of a Kind'에 대중이 끊임없이 응답하는 것은 비단 '팬덤' 때문이 아니다.
맞다. 거창하게 말하면 K팝 역사는 결국 자신들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을 펼친 선구자들의 도도한 역사였다. 그리고 이런 가수들이 선사한 '자신들만'의 음악에 대중은 언제나 열렬히 '응답'했다. 번안곡이 득세했던 70년대 초 김민기 작사작곡의 '아침이슬', 한대수 작사작곡의 '물 좀 주소'가 그랬고, 외국 록밴드 카피가 판을 치던 시절에 나온 신중현과 엽전들의 74년작 '미인'이 그랬다.
트로트고고가 유행하던 77년 느닷없이 '아니 벌써'를 들고 나온 3인조 록밴드 산울림이 그랬고, 외국 팝송만 줄창 듣던 시대흐름을 통째로 바꿔버린 85년의 들국화 1집이 그랬다. 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은 문화쇼크였고, H.O.T와 S.E.S 아이돌 1세대들이 맹활약한 97년엔 이미 크라잉넛, 노브레인, 델리 스파이스가 인디신에서 용틀임을 하고 있었다.
올해 버스커버스커, 싸이, 빅뱅, 나얼의 음악에서 새 희망을 본 가요팬들, 진짜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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