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송중기·'건축학'수지, 이 독한 첫사랑의 판타지

[김관명칼럼]

김관명 기자  |  2012.11.08 08:13
'늑대소년'의 송중기와 '건축학개론'의 수지 ⓒ영화 스틸

조성호 감독의 '늑대소년'의 기세가 매섭다. 개봉 8일만에 200만 가까운 관객을 불러 모았다. 평일이었던 지난 7일 무려 29만명이 봤다. 역시 주인공 송중기의 힘이다.

'늑대소년'은 폐병 걸린 소녀(박보영)가 세상에서 고립된 야생 늑대소년(송중기)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 얼개로만 보면 유아들이나 빠져들 동화에 가깝다. 무거운 철골이 떨어져 어깨에 맞아도 늑대소년은 끄덕도 없으니 이런 뻔한 SF가 없고, 소녀가 애완교본을 탐독하며 늑대소년 길들이기에 나서니 이런 식상한 판타지가 없다.

하지만 '늑대소년'은 여성관객 특히나 나이든 여성 관객의 로망을 제대로 건드렸다. 이제는 60대 할머니(이영란)가 된 그 소녀, 결혼하고 애까지 낳고 늙어버려 본인 표현대로 "완전 괴물"이 된 그녀는 나이든 여성 관객 자신이다. 늑대소년을 처음 만난 47년 전으로 훌쩍 떠난 회상여행, 그 한 복판에서 만난 첫사랑이 바로 '꽃미남' 송-중-기였다.

그래, 잊고 산 내 '첫사랑' 송중기는 꽃미남만이 아니었다. 내가 죽을 위기에 빠졌을 때 나를 지켜준 비현실적인 '힘'이 그에겐 있었고, 내가 "앉아, 기다려, 먹어" 명령하면 애완견처럼 따라준 '순종'이 그에겐 있었다. 남자가 여자보다 더 여자 같고, 남자가 폭군보다 더 폭군 같은 요즘 시대에 내 첫사랑은 이 정도 급이었던 게다. 게다가 나 역시 가진 건 없었지만 잡티 하나 없는 얼굴처럼 세상 때 하나 안 묻었던 시절이었으니.

결국 나이든 여성 관객은 젊은 시절 송중기와 박보영을 보며 과거 첫사랑의 로망과 청순했던 자신을 애써 동일시했다. 어리거나 젊은 여성 관객은 아직 안 왔거나 진행 중인 첫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부풀렸고, 남성 관객은 자신은 도저히 할 수 없었던 혹은 할 자신이 도저히 없는 늑대소년의 그 '거룩하고 순정인' 사랑방식에 찬사와 박수를 보냈다. 이게 '늑대소년'의 힘이다.

'늑대소년'의 이 같은 감동 전달 구도는 묘하게도 지난 3월22일 개봉해 전국관객 410만명을 동원한 이용주 감독의 '건축학개론'과 딱 맞아 떨어진다. '늑대소년'의 할머니 이영란은 '건축학개론'의 엄태웅이었고, '늑대소년'의 박보영은 '건축학개론'의 이제훈이었다. 그리고 엄태웅이, 이제훈이 그렇게나 사랑했고 못 잊었던 첫사랑이 바로 배-수-지였다.

두 작품은 과거 회상을 통해 첫사랑을 다시 만나는 설정까지 엇비슷했다. 왜? 때로 추억은 현재보다 강렬한 거니까. 내 자신 모든 게 서툴렀던 90년대, 대학 강의실에서 처음 만난 '그녀' 수지. 그녀는 도저히 내가 가까이 할 수 없을 존재처럼 다가왔지만, 결국 그날 저녁 버스정류장에서 내 떨리는 첫 키스를 모른 채 받아줬다. 그리고 그녀가 꽂아준 헤드폰에서 들린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하지만 '건축학개론' 관객이나 '늑대소년' 관객이나 다 안다. 현실의 엄태웅이나 이영란이 회상한 그 첫사랑의 배수지와 송중기는 더 이상 내 곁에 없다는 것을. '늑대소년'이 애써 "아니다"를 외쳤지만, 이는 판타지 중에서도 완전-슈퍼-울트라-골수 판타지라는 것을. '건축학개론'이 나이든 수지(한가인)를 엄태웅 곁에 보내줬지만 이는 여성관객마저 비웃은 무리한 설정이라는 것을. 또한 (처참한 고백이긴 하겠으나) 나의 실제 첫사랑이라는 게 송중기 혹은 배수지 급은 절대 아니었다는 것을.

그럼에도 '건축학개론'이 끝난 뒤 나이든 남성관객은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에 잠 못 들어 했고, '늑대소년'이 끝난 뒤 나이든 여성관객은 첫사랑의 놀라운 판타지에 펑펑 울음을 터뜨렸다. 젊은 관객은 이 아름답고 처연하며, 안타깝고 속상한, 그러면서 숭고하기까지 한 이 첫사랑의 다양한 얼굴에 가슴이 저려왔다.

맞다. 첫사랑이란, 특히나 지금 떠올려보는 첫사랑이란 언제나 강렬하고 언제나 로망이며 언제나 판타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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