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음 "'돈의 화신', 처음으로 연기가 재밌었다"(인터뷰)

최보란 기자  |  2013.04.23 09:11
배우 황정음 구혜정 기자 photonine@


"드라마 끝나고 이런 기분은 처음이에요."

SBS '돈의 화신'의 복재인의 자신감을 조금 빌려 온 덕일까. 드라마 종영 하루 뒤 만난 배우 황정음(29)은 오랜 촬영을 막 마쳤는데도 씩씩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이렇게 즐겁게 드라마 촬영을 하고 연기가 즐거웠던 적이 없었다"는 그녀의 첫 마디가 이유를 알려줬다.

"가슴이 벅차고 뭉클하고, 처음 느끼는 감정이에요. 지금까지 드라마를 즐겁게 촬영한 적이 없었어요. 늘 분석하고 생각하고 고민해야 했죠. 이번에도 시작하는 한 달은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특히나 '골든타임'이 끝나고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죠. 전작을 하면서 한계에 부딪힌 기분이었는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연기의 재미를 느꼈어요. 그런 점에서 정체돼 있지 않고 발전이 있었다는 게 좋았죠."

황정음이 느끼는 만족과 행복은 스스로의 연기에 대한 도취는 아니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느낀 것은 그녀가 누구보다 자신의 연기력에 엄격하고 부족함을 채우려고 애쓰는 연기자라는 점이다. '골든타임'에서 그런 고뇌가 극에 달했었고, 덕분에 '돈의 화신'을 만났을 때 그녀의 연기를 대하는 자세는 많이 변해 있었다.

"제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같은 황정음이지만 느끼는 게 달랐고 연기를 바라보는 시각 같은 것도 변했죠. '골든타임'을 하면서 제가 내공이 부족해서 한계를 느끼고 좌절감도 컸어요. 두 작품을 비교하자는 건 아니고, 스타일이 달랐을 뿐인 것 같아요. 각 작품의 경험이 쌓이면서 연기에 대한 생각이나 자세가 변하게 됐죠."

배우 황정음 구혜정 기자 photonine@

'돈의 화신'에 즐겁게 임했다지만 복재인 연기가 결코 쉽지는 않았다. 복수극이라는 장르적 특성상 무거운 분위기가 깔려있는데다 코믹한 대목을 소화하는 것은 특히 어려웠던 부분이다. 당차고 강한 인상으로 남은 복재인 역할이지만, 따져보면 멜로비중이 큰 것도 아니고, 역할이 확실한 캐릭터가 아니어서 황정음을 고민에 빠지게도 했다.

"장경철 정경순 작가님 작품이 남성 중심적인 이야기다보니, 여주인공 분량이 적어서 분석이 더 힘들기도 했어요. 한 신이 넘어가면 술술 풀리는데 잘 하려고 하고 생각이 많아지니까 처음엔 힘들었어요. 촬영 전 대본을 보는데 한 달 동안 한 신을 못 넘어가서 머리를 쥐어뜯었죠. 인상은 강한데 잘 보면 딱 표현하기 어려운 캐릭터예요. 그러다 재인이 지닌 '근자감'에서 실마리를 조금씩 풀어갔어요. 코믹과 진지함을 넘어드는 게 과제인데, 진지한 것을 잘 못해서 힘들기도 했고요. 황정음이 안 드러나게 하고 캐릭터와 한 호흡하면서 가려고 노력했죠."

그렇게 스스로를 지우고 재인을 알아가려는 노력을 하는 동안 처음으로 연기가 괴롭고 힘든 게 아닌 재미있는 것임을 알게 됐다. 그녀는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리는 특수분장과 계란 세례에 고통을 참아야 하는 순간까지도 즐기면서 촬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자신이 연기한 복재인에 대한 설명에서 애정이 묻어났다.

"재인이는 아픔이 있지만 모자람 없이 자랐죠. 모난 애는 아닌데 공주병도 좀 있고. 현실에서 진짜 있을까 하는 의아함이 있었어요. 근데 작가님이 '아는 사람 중에 캐릭터를 따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실제 있다는 생각으로 더 믿고 연기하게 되더라고요. 이름이 왜 복재인이가도 궁금했는데, 복제인간에서 복재인, 새롭게 태어난다는 의미래요. 마지막 해피엔딩도 마음에 들었어요. 요요가 온 것도 기발했고요. 생각해보면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도 있고 복잡 미묘한 캐릭터인데 잘 그려주신 것 같아요. 작가님의 힘이 아닐까요."

알고 보니 그녀는 자신에게 엄격하고 가르침에 못 마른 여배우였다. 그게 황정음이 배우로서 지금까지 달려올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제가 생각하는 이상향이 있고 거기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여기고 부족함을 실감해요. 그렇기에 발전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돈의 화신' 유인식 감독님이 말씀하신 게 '주연 맡은 애 치고 이렇게 귀를 열어놓고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는 친구가 드물다'라고 해 주셨는데,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고 늘 목말라하고 채우려고 하면 조금씩이라도 발전이 있을 거라고 믿어요. '돈의 화신'에서 제 연기에 점수를 매기면요? 솔직히 80점정도 주고 싶어요. 아직 부족한 게 많긴 한데, 나중에 제 연기를 보는 사람들이 모두 인정해주는 때가 오면 저도 100점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배우 황정음 구혜정 기자 photonine@

이번 작품이 즐겁고 행복했다고 외치는 황정음이지만 역할에 있어서 분명하지 못했던 캐릭터와 남성 중심의 이야기라는 점은 역시 조금 아쉬웠다고 고백했다. '자이언트'에 이은 두 번째 호흡이었지만, 작가와 연출자가 다시 불러주면 기꺼이 함께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비중적인 면에서 조금 서운했는데 복재인이 독특해서 조금은 부각된 것 같아요. 작가님한테 여주인공 얘기도 좀 더 해주시면 안 되냐고 투덜거렸더니 '내공을 더 쌓으라'고 하시더라고요. 하하. 이차돈의 조력자도 아니고 멜로가 많은 것도 아니고,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는 해바라기로 남고 싶다' 했는데요. 복수극이라서 스토리 라인이 복잡해서 제가 끼어들 데가 없더라고요. 제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자라고 생각했죠. 다시 불러주시면 당연히 해야죠. 감사하죠. 그땐 복재인 보다는 조금 비중이 크고, 이차돈 보다는 조금 적었으면 좋겠어요.(웃음)"

'돈의 화신'에서 연기가 즐겁다는 알게 돼 행복해진 황정음. 그러나 다음 작품에서 또 고뇌와 한계에 맞부딪힐 준비를 하는 그녀다. 어느 단계에서 연기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성장해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작품 만나면 다시 가라앉을 수도 있겠죠. 매 순간 마다 한계에 부딪힐 때도 있을 거고요. 어쩌다 연기를 하게 돼 열심히 여기까지 왔는데, 기본기가 안 돼서 매번 힘들었어요. 다행히 그 동안은 작가님들과 감독님들이 잘 채워주셨는데, 이제 진짜 배우가 되려면 수도 없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할 거예요. 운명인 것 같아요. 저보다 잘나고 예쁘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은데, 부족한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건 정말 큰 복이고, 감사하게 생각돼요."

인터뷰가 있던 22일은 마침 가수 장윤정과 도경완 KBS 아나운서의 결혼 소식이 전해진 날이었다. 인터뷰 도중 황정음과도 자연스럽게 결혼 얘기가 나왔다.

"요즘 결혼 소식이 많이 들려서 부럽고 결혼하고 싶어요. 너무 늦는 것 보다는 2년 후 정도가 좋지 않을까. 뭐든 때가 되면 하는 게 딱 좋다는 생각이거든요. 지금 생각은 그런데 그때 돼 봐야 알겠죠. 하하."

일단 지금은 연기에 집중하고 싶다는 그녀.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녀는 멈춰있지 않고 앞으로 달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황정음은 하고 싶은 연기만 하지 않고 힘든 연기에 도전하며 내공을 쌓겠다는 각오로 '지켜봐 달라'는 말을 대신했다.

"다음에는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대신 그 다음은 제가 못 하는 연기에 도전하고. 또 자신 있는 것 하고, 어려운 것 도전하고. 그래서 반복해서 내공을 쌓아가다 보면 뭐가 나올 것 같아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니까 계속 쌓아가면서 노력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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