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 내추럴 본 사기캐릭터의 '한 방'

[록기자의 사심집합소]

김현록 기자  |  2014.06.28 16:30
배우 이광수 /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이광수(29)는 문자 그대로 사기 캐릭터다. 첫인상으로 마음을 놨다간 큰 코 다친다.

싱거운 꺽다리 첫인상은 담시 접어두자. 알고보면 모델 출신의 기럭지 '간지남'이다. '배신기린'이자 '아시아 프린스'라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별명 조합부터 조짐이 보이지 않는가. 만 4년이 다 되어가는 SBS 일요예능 '런닝맨'에서 그는 어색한 표정, 구부정한 자세로 온갖 구박을 받는 초식동물 '기린'이지만, 빈틈만 보이면 돌변해 허를 찌르는 '배신의 아이콘'이다. 그런데 해외 촬영에선 유느님 유재석과 능력자 김종국을 제치고 열성팬을 몰고 다닌다. 하지만 '아시아 프린스' 자체가 피식 웃음이 나는 아이러니한 수식어로 쓰이기 일쑤다. 이 와중에 부지런히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면서 차곡차곡 배우로서의 입지를 쌓아가는 욕심쟁이기도 하다.

사기캐릭터 본성을 알아채기 전, 이광수를 처음 본 것은 2009~2010년 인기 시트콤 MBC '지붕뚫고 하이킥'을 통해서였다. 시트콤이야 인기였지만 단역 가까운 조연이던 이광수까지 인기가 미쳤던 시절은 아니었다. 구부리지 않으면 화면을 뚫고 나갈듯한 훤칠한 키 탓에, 극중 이름도 똑같았던 광수가 꿈만 많은 가수 지망생이었던 탓에, 그는 어딘지 미안한 표정을 하고 구부정한 자세로 화면의 구석을 채우곤 했다. 한 회 등장만 해도 '나왔다'고 안도하면서.

그런 이광수가 내내 눈에 밟힌 것은 대본을 탈탈 털어도 대사 한 줄, 두 줄 뿐인 분량을 어떻게 재밌게 그려 보일까 파트너 유인나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모습 때문이었다. 카메라 밖에서는 진지하고 수줍기 그지없는 반전 탓도 컸다. 화면에 발목까지만 나오고 촬영분이 댕강 잘려나가도 이광수는 궁리하길 거듭했다.

그런 남다른 열성은 티가 나기 마련이다. '지붕킥' 시절 '나만의 광수'를 보내줘야 할 시간은 아쉽지만 기쁘게도 금방 다가왔다. '런닝맨' 초기, 무존재감 자체가 캐릭터였던 이광수가 차차 빛을 본 것도, 영화 '평양성'과 '간기남',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불의 여신 정이'를 거치며 배우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리라.

일단 안쓰러움과 허술함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그는 당장 사기캐릭터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어디 '런닝맨' 뿐이랴. 알고 보면 천재(간기남)가 됐다가, 둘도 없는 친구(착한남자)가 됐다가, 음흉한 악역(불의 여신 정이)도 됐다. 그리고 개봉을 앞둔 영화 '좋은 친구들'(감독 이도윤)에서 제대로 한방 펀치를 날렸다.

'좋은 친구들'의 이광수 / 사진='좋은 친구들' 스틸컷


'좋은 친구들'은 모두의 행복이라며 꾸민 일이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비극이 되고 만, 세 친구의 이야기다. 누군가는 7월 기대작 틈바구니 속의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라 했지만, 뭘 모르는 소리다. '좋은 친구들'은 탄탄한 시나리오, 믿음직한 제작사, 화려한 스태프가 뭉친, 내로라하는 미남 톱스타들이 욕심을 냈을 만큼 미리부터 입소문을 탄 기획이었다.

지성, 주지훈과 함께 마지막 친구 자리를 거머쥔 게 이광수였다. 허름한 가게 겸 살림집에서 홀로 살며 냉수처럼 소주를 마시는 민수는 그래도 청춘 아니냐고 위안하기엔 안쓰러운 30대. 허나 피붙이 같은 두 현태(지성 분) 인철(주지훈 분)과의 우정만큼은 어디에 내눠도 뒤지지 않는 친구다.

민수 역 이광수는 신의 한 수다. 내추럴 본 사기 캐릭터 아니랄까봐, 친근한 광수로 슬쩍 다가와 먼저 관객의 마음을 연 그는 이내 죄책감에 허우적대는 민수가 돼 보는 이의 마음에까지 묵직한 돌덩이를 던져 놓는다. 숨이 턱 막힌다. 여기에 지성 주지훈의 열연, 세 사람의 앙상블이 더해져 그 무게는 갑절, 곱절이 된다.

멍 한 마음을 안고 '좋은 친구들' 시사회장을 빠져나가다 황망하게도 무대 뒤편에서 포토월을 준비하던 이광수를 만났다. 그는 5년 전 일산의 대기실에서처럼 여전히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의 한 방을 제대로 맞은 터라 떠오르는 말이 없어 그저 '잘 봤다'고 인사하곤 총총 걸음을 옮겨야 했다. 이제 정신을 차렸으니 다시 리액션을 할 차례. 당황하지 않고, 배우 이광수에게 박수 '짝짝짝', 끝!

김현록 기자 roky@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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