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저녁. 엄지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미씽’ 잘 봐주어 고맙다며 그때 인사하고 싶었는데 개봉 중이라 아부 같기도 해서 지금 연락한다고 했다. 당연한 일에 고맙다고 하는 사람은, 반갑다. 많은 사람이 동의하듯, 엄지원은 좋은 배우이자 좋은 사람이자 좋은 여성이다. 갈수록 더 그리되고 있다.
‘미씽’은 2016년을 마무리하는 여성영화로 걸맞다. 올해 한국영화의 큰 흐름 중 하나는 여성이었다. 여성과 여성을 둘러싼 것들에 대한 이야기. 여성주의 혹은 여혐. ‘미씽’은 이혼하고 홀로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여성의 이야기다. 한국에서 일하는 중국동포 여성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로 올해 한국 여성영화가 마무리되는 건 반가웠다.
엄지원은 ‘미씽’ 개봉 즈음 인터뷰에서 쉬지 않고 말했다. 다들 재밌다고 하면서도 여자가 주인공이라, 여자 이야기라, 투자가 안 되고 흥행이 안 될 것이라고들 했다고. 그래서 다들 거절했다고. 그래서 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당연하지만 애써 피해온 것들에, 선뜻 손을 내밀어 잡아준 사람은, 반갑다.
올해 한국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꼽자면, ‘아가씨’에서 동 트기 전 김민희와 김태리가 손을 잡고 풀밭 위를 달리던 장면이다. 가장 어두운, 하지만 곧 해가 뜰 바로 그 시간. 앞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해방을 만끽하며 달리는 찰나의 쾌락. 사랑과 자유, 억압에서 해방, 그 당연한 것을 위해 손잡고 달릴 때의 기쁨이 보였다.
병신년 한국 여성영화라 일컫는 영화들 중 어떤 영화는 박수받을 만했다. 어떤 영화는 아쉬웠다. 그렇지만 워낙 적은 탓에, 적었던 탓에, 아쉬운 것에도 의미를 담으려 했고 읽으려 한 순간들이 많았다. 지금은 응원해야 할 때인 탓이다. 반가운 영화와 반가운 사람이, 당연해지기 위해 응원해야 할 때다.
2017년은 많은 것이 바뀌는 해일 것 같다. 바뀌어야만 하는 해이기도 하다. 마침 2017년은 닭의 해다. 동이 튼다고 외치는 닭의 해다. 해가 뜨기 전이 제일 어둡기 마련이다. 부디 2017년은 당연한 일에 고맙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아니 너무 당연한 일이라 더 응원할 필요가 없어지길, 그런 일들이 당연해지길, 그런 한 해이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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