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꽃미남 팝가수' 중 한 명인 토미 페이지(Tommy Page)가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그의 삶 역시 재조명받고 있다. 특히 토미 페이지는 여러모로 한국과 인연이 많았기에, 국내 팬들에 그의 죽음은 더욱 큰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1970년생 미국 출신인 토미 페이지는 10대 때이던 지난 1988년 셀프 타이틀 앨범 '토미 페이지'(Tommy Page)로 현지 대중음악계에 정식 데뷔했다. 이후 토미 페이지는 싱글 '아일 비 유어 에브리싱'(I'll Be Your Everything)으로 1990년 4월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인 핫 100에서 1위를 차지하며 톱 아이돌스타로 떠올랐다.
토미 페이지는 90년대 중반부터는 가수 활동보다는 음악 산업 쪽에 관심을 가졌고, 2010년대 중반에는 빌보드의 발행인도 역임했다.
세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토미 페이지는 2015년에는 1990년 발매했던 '페인팅스 인 마이 마인드'(Paintings In My Mind) 앨범 수록곡 '아이 브레이크 다운'(I Break Down)을 새롭게 리메이크한 싱글 '아이 브레이크 다운, 2015'를 선보이며 음악에 대한 여전한 열정을 보여줬다.
토미 페이지는 '아일 비 유어 에브리싱'은 물론 '어 쇼울더 투 크라이 온'(A Shoulder To Cry On)으로도 국내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여기에는 당시 그의 조각 같은 외모 역시 한몫을 톡톡히 했다.
토미 페이지는 90년 한국에서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국내 모 초콜릿 브랜드의 CF를 찍기도 했다. 싱어송라이터인 토미 페이지는 1992년 하수빈의 데뷔 앨범 수록곡인 '아임 폴링 인 러브'(I'm falling in love)를 만들기도 했다.
토미 페이지는 증조할머니가 한국계로 알려졌고, 이에 한국에 대한 사랑 역시 남달라 내한 공연도 여는 등 여러 차례 방한하기도 했다.
한편 빌보드 등 외신에 따르면 토미 페이지는 지난 3일(미국 현지시간) 숨진 채 발견됐다. 빌보드는 "아직까지 토미 페이지의 정확한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몇몇 친구들에 의하면 자살로 추정된다"라고 전했다.
<저작권자 © ‘리얼타임 연예스포츠 속보,스타의 모든 것’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