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들의 목소리 연기

스크린 뒤에는 뭐가 있을까(2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18.02.07 10:30
사진='스타워즈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 스틸컷


영화를 보기는 했는데 배우의 얼굴은 보지 못하고 그 목소리만 들은 경우가 많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경우가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 제임스 얼 존스의 목소리일 것이다. 매력적인 저음이 가면 뒤에서 힘 있게 흘러나온다. 악당 캐릭터인 다스 베이더가 멋져 보이는 데는 존스의 목소리가 큰 역할을 했다. 존스는 ‘라이언 킹’(Lion King, 1994)에서 심바의 아빠사자 무파사 목소리도 냈다. 악당 흑사자 스카의 목소리는 제러미 아이언스다.

'토이 스토리'(Toy Story, 1995)는 우디의 톰 행크스 목소리, '슈렉2'(Shrek 2, 2004)는 고양이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목소리와 당나귀 에디 머피의 목소리를 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피오나 공주는 캐머런 디애즈, 왕후는 줄리 앤드루스다.
할리우드 역사의 대부분 시기에 목소리 연기자는 전문 목소리 연기자였다. 그러나 '알라딘'(Aladdin, 1992)에서 로빈 윌리암스가 목소리 연기로 성공을 거두자 영화 스타들이 애니메이션 영화 목소리 연기자로 대거 등장하는 추세가 생겨서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대개의 경우 전문 목소리 연기자의 목소리를 일부 먼저 녹음한 후에 스타가 그를 기준으로 다시 목소리를 녹음한다. 캐릭터가 노래를 하는 경우에는 가수의 목소리로 대체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라이언 킹'의 제러미 아이언스 같이 노래 실력이 출중한 배우는 직접 노래를 녹음한다.

사진=영화 '인사이드 잡' 포스터


다큐멘터리의 나레이터도 목소리만으로 등장한다. '인사이드 잡'(Inside Job, 2010)에서는 맷 데이먼이 2시간 동안 말만 한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한다. 차분하고 단정한 데이먼의 목소리 때문에 다큐의 내용이 그냥 신뢰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영화의 주제 제시가 작가의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데이먼의 주장처럼 느껴져 호감이 간다.

사실 아무런 영상이 없는데도 목소리만으로 캐릭터를 느낄 수 있는 것이 라디오 방송의 드라마다. 영국에서는 BBC방송의 오래된 전통에 힘입어 라디오 드라마의 성우들도 드라마 연기자로 대우받는다. 애니메이션과 유사하기는 하지만 또 다른 독자영역은 TV나 다른 매체에서 송출되는 상업광고에 들어가는 목소리다. 물론 드라마 성우들이 많이 동원된다.

외국영화를 더빙할 때도 목소리 연기자들이 필요하다. 더빙된 목소리 때문에 원래 배우와는 전혀 다른 별도의 캐릭터가 창조되기도 한다. 할리우드 영화의 예고편들에는 전형적인 저음의 남성 목소리가 과장된 톤과 억양으로 영화의 내용을 소개하는데 미국에서는 이 흉내를 잘 내는 사람이 'Preview Guy'라는 별명으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스칼렛 요한슨 /AFPBBNews=뉴스1

목소리가 영화의 품격 전체를 좌우할 정도까지 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이 대목에서 꼽을 수 있는 목소리가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SF영화 '그녀'(Her, 2013)의 스칼렛 조핸슨의 목소리다. 사만타라는 이름의 인공지능 목소리로만 나왔지만 단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감이다. 롤링스톤도 조핸슨의 목소리가 달콤하고 섹시하고 다정하고 현혹적이며 무섭다고 평가하면서 상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칭찬했다.

특히 어려웠던 점은,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그림으로라도 캐릭터가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데 그 캐릭터를 위한 성격을 만들어 내는 일이었다고 한다. 영화의 주연은 호아킨 피닉스였지만 조핸슨의 목소리 때문에 사만타도 대등한 무게를 가지고 영화 전체를 압도한다.

제레미 아이언스 /AFPBBNews=뉴스1

목소리 연기가 아니라 실제 연기인데 인상적인 목소리 때문에 점수를 후하게 받는 배우들이 있다. 대개 남자배우들이다. 존스나 아이언스는 물론 여기에 든다. 아이언스는 영국식 억양에 셰익스피어 배우로서의 트레이닝이 더해져 매우 품위있는 목소리다.

'테이큰'(Taken, 2008)의 리암 니슨은 목소리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낮게 까는 톤의 대사가 드라마틱해서 회자된다("I will find you, and I will kill you"). 알 파치노는 성량이 다소 부족하지만 소리 지르는 대사에서 개성이 강한 목소리를 낸다. 아놀드 스워츠네거는 저음에 독일어 액센트가 개성이다("I‘ll be back").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약간 쉬고 차분한 목소리의 주인공이며 숀 코너리는("Bond, James Bond") 나이를 먹을수록 더 중후해지는 목소리를 가졌다. 크리스토퍼 워킨은 별 특징 없는 뉴욕 퀸즈 액센트로 말하지만 인기가 높다. 그러나 랭킹에서 가장 많이 1위의 목소리로 꼽히는 배우는 모건 프리먼이다. 특히 영화의 나레이션 부분과 다큐멘터리에서 그 목소리와 차분한 톤을 따라갈 배우가 없다.

사진=영화 '아티스트' 포스터

초기의 영화들은 무성영화였다. 영화산업을 지배하다시피 했던 에디슨은 소리가 나면 배우들이 연기보다 대사에 정신을 뺏기게 된다면서 싫어했다. 청력을 잃은 후에는 더 그랬다고 한다. 1900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으로 발성영화가 선을 보였으나 발성영화는 1920년대에 와서야 본격적으로 제작되었고 1930년대에 대세로 자리 잡았다.

워너브라더즈가 제작한 '재즈 싱어'(The Jazz Singer, 1927)의 성공이 대표적인 사건이다. 영화산업 종사자들은 발성영화로의 전환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발성영화 제작에 필요한 기술이 발달했고 목소리가 좋지 않거나 대사를 잘 하지 못하는 유명 배우들은 유탄을 맞고 사라져 갔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프랑스 영화 '아티스트'(The Artist, 2011)가 그 상황을 잘 보여준다. 세월이 흘러 이제 스타들이 목소리만으로도 연기를 하니 세상은 항상 이렇게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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