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36)은 말했다.
"지난 3~4년, 평생 산 것보다 더 좋은 것들을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점점 여유를 갖춰가는 그의 변화가 내심 궁금했던 터다. 작품을 따져봤다. 4년 전 그는 영화 '좋은 친구들'을 선보였고, 3년 전 드라마 '가면'과 영화 '간신'에 출연했으며, 2016년 '아수라', 지난해 말의 '신과함께-죄와 벌'을 거쳐 지금에 왔다. 그리고 올해, 그는 여름 최성수기 영화 2편의 주연을 맡았다. '신과함께-인과 연'에 이은 '공작'을 통해 주지훈의 존재감은 더욱 뚜렷해졌다.
옛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주지훈의 연기 데뷔작은 2006년 드라마 '궁'이다. 그는 이미 잘 나가던 모델이었다. 어머니 지인이 찍어보라던 프로필 사진을 친구에게 자랑했는데 덜컥, 사진 두 장만 달라던 친구가 그걸 잡지사에 보내버린 게 시작이었다. 다시 덜컥 '궁'에 캐스팅됐을 땐 안해본 연기를 해야한다니 2주를 안한다 버티다 출연을 했다.
"제가 낯을 어마어마하게 가렸어요. 모델이란 집단이 생각보다 작거든요. 작은 무리에 속해 있던, 연기를 꿈꾸지도 않았던 사람이 전 국민 앞에 까발려진 느낌인 거예요…. 그 땐 교복 입기도 싫었어요. 왕자님도 오글거리고. 아이고, 지금은 아니죠. '킹덤' 때는 왕자님이네 하고 좋아했어요.(웃음)"
그 데뷔작이 대성공을 거뒀다. 탄탄대로나 다름없는 시작이었다. 작품도 이어졌다. 하지만 주지훈은 "불행했다"고 그 시절을 돌이켰다.
"축복받은 상황이잖아요. 행복해 미쳐 날뛰어야 하는데 저는 불행했어요. 존경하는 배우들처럼 되고 싶어서. 선망하는 사람들이 명확한데 내가 너무 초라했어요. 진짜 열심히 했어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땐 대본을 120번을 봤어요. 활자를 보면 헛구역질이 나올 만큼요. 안소니 홉킨스는 대본을 200번 본단다 하니 무작정 따라했는데 못 채운거죠. '아 나는 실패했어' 그런 생각에 빠져 있곤 했어요. 만족하기까지 허들이 높다고 할까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제 주위에 있어요. 그러다보니까 즐길 수 있는 일도 즐기지 못하고, 스스로를 탓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주지훈은 '공작'에서 북한 보위부 장교 정무택 역을 맡았다. 사업가로 위장한 안기부 스파이 흑금성(황정민 분)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떠 보는 인물이다. 서사를 끌고가는 인물이 아닌 데다 분량은 제한적이다. 그 또한 윤종빈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 정부택 캐릭터를 두고 '그림입니까?'라고 물었을 정도. 하지만 그가 그린 정무택은 평면의 그림이 결코 아니다. 잠깐씩 등장해서도 긴장을 더하고 숨통을 틔워주며 제 몫을 확실히 해낸다. 하지만 액션 하나 없이 팽팽한 긴장감이 쌓여가는 작품을 촬영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감독님 포함 모든 배우가 어렵다고 이야기할 정도였어요. 분명히 툭 치면 줄줄 나오게 연습을 해 왔는데 왜 안나오는 걸까…. 눈 깜박임 하나 호흡 하나만 잘못돼도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뒷골로 쫙 올라오면서 목구멍에서 대사가 안 나갔어요. 너무 어려웠어요. 상상을 못 한거죠. 목구멍으로 대사가 안 나온다는 상상을 어떻게 했겠어요.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나만 이런게 아니구나' 하며 모두들 으쌰으쌰 하며 촬영했지만, 뭐라 표현할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완성한 작품을 두고 반응이 쏟아지니 흐뭇한 기색을 감출 수 없다. 진중한 메시지를 묵직하게 풀어낸 '공작'이지만 관객들이 지치지 않을 수 있게 쉴 곳을 마련해 둔 터. 바로 그 역할을 맡았던 주지훈은 "반응이 있으니까 너무 좋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웃음지었다.
그는 스스로의 역할에 대해 "어른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의 막내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했다. '신과함께', '공작'에 앞선 '아수라'도 염두에 둔 말이리라. 주지훈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작품들을 이끌어준 선배들 이야기로 흘러갔다. '공작'의 황정민, '아수라'의 정우성, '신과함께' 시리즈의 하정우…. 그들과 함께 주지훈의 지난 3~4년이 있었다. 그는 "정말 행운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정민이 형, 우성이 형, 정우 형이 하는 역할이 정말 어려운 역할이지요. 제가 그 형들이라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분량도 제일 많은데 잘 해야 본전인 캐릭터들을 그렇게 해내는 대단한 사람들이에요…. 저도 그런 좋은 선배들처럼 되게 큰 욕망이 있어요. 나도 저런 선배가 되고 싶다. 후배들에게 안도감과 안정감, 평온함을 줄 수 있는, 그러면서도 친근하고…. 저도 그런 선배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주지훈의 뜨거운 시간은 여름이 끝나서도 이어진다. 공기가 서늘해지면 찾아올 다음 영화 '암수살인', 넷플릭스로 공개될 드라마 '킹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어른영화의 막내를 벗어난 또 다른 주지훈을 만날 기회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그 만남이 더욱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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