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박성희 "소리로 관객에게 들어가고 싶어요" [★FULL인터뷰]

전형화 기자  |  2019.08.12 10:47
소프라노 박성희/사진=이동훈 기자

소프라노 박성희. 피아노를 좋아해서 음악의 길로 뛰어들었다가 어느덧 한국을 대표하는 콜로라투라로 인정받고 있는 대가. 국창 임방울의 외손녀. 박성희를 설명하는 말은 화려하다.

동양인에겐 넘을 수 없을 것 같던 벽을 넘어 이탈리아 아드리아 국립음악원을 졸업하고 수많은 유럽의 국제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신인성악가상과 대한민국 오페라 대상, 한국문화예술 총연합회 음악가 대상 등 트로피가 즐비하다. 서울대와 이화여대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화려한 경력이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가시밭길을 꽃길로 바꾼 건, 오롯이 박성희의 공이다.

고등학교 시절 외할아버지가 임방울 선생이란 걸 알았다. 국창 임방울의 후예. 그 말의 무게를 그때는 잘 몰랐다. 이화여대에서 성악을 공부하면서 점점 정체성에 혼란이 생겼다. "왜 나는 서양 음악을 공부하고 있지?" 음악과 나에 대한 고민. 박성희의 음악 인생에 갈림길이었다.

그 고민은 이탈리아로 박성희를 이끌었다. 엄청난 프리마돈나가 되겠다는 욕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길이 내 길이라면 그 길을 처음부터, 홀로, 다시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이탈리아 음악 수행은 바닥의 바닥부터였다. 이탈리아 선생님은 오디션 같은 건 꿈도 꾸지 말고 호흡부터 다시 하라고 했다. 노래는 하지 말고 숨 쉬고 뱉는 것부터 공부하라고 했다. 동양인에 대한 편견도 상당했다. 여름에 창문도 못 열고 연습하는 게 다반사였다.

어쩌면 당연했다. 무슨 뜻인지, 어떤 감정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외워서 목소리로만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배웠다. 버티고 버텼다. 그러기를 3년. 선생님에게서 이제 콩쿠르를 나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처음 나간 콩쿠르에서 밤의 여왕으로 1위를 차지했다.

오페라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박성희에게 운명이었다. 밤의 여왕을 맡을 수 있는 소프라노가 드문 데다 감정을 담아 관객을 적시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본고장 유럽도 마찬가지다. 박성희는 밤의 여왕으로 까다로운 유럽 관객의 귀를,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이탈리아와 스위스,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각지에서 박성희는 오페라의 여왕으로 관객과 만났다.

그랬던 박성희가 다시 한국에 오게 된 것도 운명이었다. 임신을 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어쩌면 경력이 단절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음악가 인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적잖았다. 박성희는 "어렵게 얻은 소리를 잃어버릴까 두려움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경력보다는 소리가 중요했다.

역시 운명이었다. 예술의 전당에서 '마술피리' 오디션이 열린다는 걸 알게 됐다. 박성희는 임신 초창기에 오디션을 봤고 합격했다. 만삭까지 무대에 섰다. 그 뒤로 한국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라보엠' '피가로의 결혼' '햄릿' '친친라' 등의 주역과 헨델의 메시아, 모차르트 레퀴엠, b단조 미사, 천지창조, 카르미나 부라나 등 오라토리오 독창자로 활동하고 있다.
소프라노 박성희/사진=이기범 기자

박성희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관객이다. 클래식을 조금 더 대중에게 쉽게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 음악이란 결국 듣는 사람을 위해서라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정체성을 찾아 시작해 자신의 소리를 찾아가면서 얻은 절대적인 기준이다.

그래서 박성희는 밸런타인데이 콘서트, 화이트데이 콘서트를 연다. 사비를 털어서 연다. 그녀는 "유럽에서 벌어서 한국에서 쓴다"며 웃었다. 평생 사랑한다는 소리를 못해본 70대 부부가 콘서트에서 사랑한다며 고백하는 모습을 봤다. 프러포즈를 하는 청년 커플도 봤다. 음악이란 그렇게 사람과 사람의 하모니다. 박성희는 하모니를 위해 자신의 몸을 악기 삼아 관객에게 전달한다. 박성희가 도달하려는 경지고, 어쩌면 외할아버지 임방울 선생이 이뤘던 지경이다.

박성희는 이제 뿌리를 찾는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9월 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소프라노 박성희, 국창 임방울을 그리다' 공연을 앞두고 있다. 유럽에서 함께 한 연주가들과 한국의 명창들이 힘을 보탠다. 그동안은 오히려 임방울의 후예라는 타이틀을 애써 피했다. 임방울의 위대함을 등에 업기도 부족하고, 그 소리를 채 알지도 못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면서 이질감을 느끼지 않게 하려 노력을 했어요. 이탈리아 관객들에게 이탈리아말로 노래를 불러야 하니깐요. 그러다 어느 순간 내 정체성은 한국사람이란 걸 깊게 생각하게 됐어요. 우리 문화, 우리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더 커졌구요. 문화와 언어의 차이를 음악으로 넘게 하는 것, 그렇게 하모니를 이루는 게 내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운명은 다시 박성희를 이끌었다. 명창을 넘어 국창이라 불린 임방울의 노래를 지금에 잇는 작업을 시작했다. 작곡가 이영조가 임방울의 대표곡인 '쑥대머리'를 박성희를 위해 재탄생시키는 작업에 동참했다.

박성희는 "멋진 소리보다는 감동을 주는 소리를 하고 싶다"고 했다. "20년이 넘어가면서 이제야 소리를 내는 법을 알아가는 것 같다"고 했다. 아마도 임방울의 소리도 그렇게 다듬어지고 만들어지며 완성돼 갔을 터다. 박성희는 이번 공연을 시작으로 임방울의 소리를 유럽에 알리려고 한다. 갈 길이 멀지만 관객을 위해, 관객 앞에서, 관객에게서 만들어지는 소리라는 건 임방울의 길과 다르지 않다.

"공연에 누가 오는지가 가장 궁금하고 가장 중요해요. 둘이 왔든, 셋이 왔든, 그 사람을 위한 레퍼토리를 생각해요. 졸고 있는 사람을 보면 내가 부족했다고 고민하게 돼요. 100명이 앉아있으면 100명 안에 다 들어가고 싶어요."

박성희를 운명처럼 이끈 음악의 길은 그렇게 임방울과 닮았다. 관객에게 들어가고 싶은 소리.
'소프라노 박성희, 국창 임방울을 그리다' 포스터

박성희가 올 가을 머니투데이 음악회에 참여하는 까닭도 결국 관객이다. 피아니스트 유영욱이 참여한다는 소식에 좋은 음악을, 좋은 관객과 같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성희는 마침 이달초 이탈리아 알바 시에서 수여하는 국제문화교류 최고 예술가상을 받았다. 한국의 소리는 그렇게 바다 먼 곳의 관객을 감동 시키고 있다. 박성희는 이제 올가을 한국의 관객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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