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카센타' 이야기의 황금률을 알고 있는 블랙코미디

전형화 기자  |  2019.11.18 18:00


허름한 국도변 카센터. 오가는 사람은 없고, 지나가는 차들은 먼지만 날린다. 대형 리조트 공사장으로 향하는 트럭들은 쇳조각과 먼지를 아낌없이 흩뿌린다.

서울 살다 아내 순영(조은지)의 고향으로 내려온 재구(박용우). 오늘도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수중에 담배 사고 맥주 한 캔 살 돈도 없다. 뭔가를 해보고 싶어도 읍내에는 얼씬도 못한다. 순영을 짝사랑했던 동네 건달이자 이제는 마을청년 회장인 문사장(현봉식)이 죄다 방해 놓는다. 경찰도 문사장과 한통속이다. 처가는 재구를 없는 사람 취급한 지 오래다.

그러던 어느 날. 재구는 트럭들이 흘린 쇳조각으로 국도를 오가던 관광객 차들 타이어가 자주 펑크가 난다는 걸 깨닫는다. 재구는 어차피 나쁜 놈들이 하던 짓을, 어차피 놀러 온 돈 많은 사람들 상대로 할 바엔, 제대로 하고자 한다. 직접 날카로운 쇳조각을 만들어 도로에 뿌린다.

그런 재구를 말리던 순영은, 돈이 들어오는 맛에 결국 같이 쇳조각을 뿌린다. 하나에 5원인 인형 눈 붙이기에 이골났고, 홈쇼핑에 주문했다가 돈 없어 취소하는 것도 신물이 났던 터다.

둘은 아예 도로에 뾰족한 못을 박기로 하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한 사업은, 이상한 소동이 동시에 벌어지면서 희한하게 흘러간다. 늘 그렇듯, 운명은 욕심대로 흘러가는 듯하면서도 욕심 속에 길을 잃게 만든다.

'카센타'는 하윤재 감독이 경험에서 모티프를 얻어 상상력을 더해 만든 영화다. 도로에 날카로운 쇳조각을 뿌려 펑크난 차들을 고쳐서 먹고 살았던 카센터 사람들. 하윤재 감독은 이 설정에 이야기를 촘촘히 덧댔다. 작은 이야기들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지나가는 인물도 허투루 지나가지 않고 서사에 녹아든다. 이렇게 쌓이고 쌓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허름한 카센터에서 폭발시킨다.

'카센타'는 거짓을 품은 블랙코미디다. 거짓은 진위보다는 그 거짓이 나온 상황이 더 중요하다. '카센타'는 거짓을 놓고, 그 거짓이 나온 상황을 촘촘하게 쌓았다. 그리하여 그 거짓이 웃기고 슬프다는 걸 목격하게 만든다. 한밤중에 드릴로 도로를 파는 아내의 뒷모습이 웃기고 더없이 슬프다. '카센타'는 남의 웃음에 기대지 않고, 남의 슬픔에 기대지 않는다. 스르륵 재구와 순영 부부 곁에 앉아 지켜보게 만든다. 동화시키진 않는다. 묵묵히 지켜보게 만든다. 이 거리두기가 좋다. 하윤재 감독은 주인공들을 위한 이야기를 쌓으면서도, 주인공들에 한 발자욱 거리를 두게 만들 줄 아는 작가다.

숨긴 것은 나타나고 비밀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카센타'는 이 이야기의 황금률을 알고 있다. 거짓이 드러나는 것에 위기를 심고, 비밀이 폭로될 때 구태여 설명하지 않는다. 주인공들의 감정을 쫓다 보면 어느덧 그 현장에 같이 있게 만든다.

재구 역을 맡은 박용우는 좋다. 선량하고 느긋하며 찌질하고 억울하고 분한, 그 모든 감정이 한 얼굴에 동시에 담겼다. 심지어 잘생긴 얼굴까지 나온다. 박용우의 이 얼굴이, 순영의 비밀을 설명 없이 알아차릴 수 있도록 만든다. 이 얼굴이기에, 문사장과 싸우는 모습이 웃프고, 순영에게 처절하게 맞는 걸 납득시킨다.

순영을 연기한 조은지는 이 배우의 넓고 깊은 쓰임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조은지는 좁은 장소에선 좁게, 넓은 장소에선 넓게, 깊게 쓰여야 할 때는 깊게, 터뜨려야 할 때는 터뜨릴 줄 아는, 좋은 배우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그림자가 될 줄 안다. 박용우와 조은지의 호흡이 매우 좋은 건, 박용우가 빛날 때 조은지가 그늘로 들어설 줄 아는 덕이다.

'카센타'는 멀리서 보면 코미디인데,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이야기다. 그 원경이 잘 조율된 영화다. 엔딩 바로 직전인 길가에 주저앉은 박용우나 화장하는 조은지의 클로즈업으로 끝났다면 또 다른 여운이 남을 뻔했다.

11월 27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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