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잠'(감독 유재선)의 정유미와 만나 인터뷰를 나눴다. '잠'은 행복한 신혼부부 현수와 수진을 악몽처럼 덮친 남편 현수의 수면 중 이상행동,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정유미는 사랑하는 남편이 잠들면 다른 사람처럼 변해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자 잠들기 두려운 공포에 휩싸이지만, 남편을 되찾고 가족을 지키려는 적극적 의지로 섬세하게 변해가는 '수진'을 입체적인 연기로 그려냈다.
이날 정유미는 "대본을 처음 봤을 때 캐릭터보다는 대본에 눈이 갔다. 영화는 드라마보다 대사가 많지 않은데 그걸 고려해도 간결하고 깔끔했다. 그런 시나리오를 처음 받아보기도 했고, 글을 쓴 감독님이 궁금했다"며 "시나리오는 재밌었지만, 저한테는 연출을 하시는 분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대본 속의 공간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듣고 싶었고, 감독님을 만나뵙고 믿음이 생겼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재선 감독의 현장과 실제의 모습이 '일맥상통'했다고 밝히며 "시나리오도 그랬지만, 감독님 자체도 군더더기가 없었다. 미팅할 때도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시지 않더라"라며 "어떻게 보면 저예산 영화인데 간결하게 작업해야 하다 보니까 감독님도 간결하게 설명해 주셨고, 그래서 귀에 잘 들어왔다. 확실하고, 정확하게 포인트를 얘기해 주셔서 제가 연기할 때 더 명확했다"고 전했다.
정유미는 '맑은 눈의 광인'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연기할 때는 그런 부분을 염두에 두지 않았고,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대로, 또 감독님이 요구하신 대로만 했다. 근데 그런 표현을 듣고 더 광기 있게 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다"며 "이번 영화에서의 광기는 좀 부족했던 것 같다"고 웃었다.
'82년생 김지영' 이후 '잠'으로 스크린에 복귀하게 된 정유미는 "그사이에 다른 작품이 있긴 했지만, 집 안에서 일어나는 얘기고, 한 아이의 엄마라는 점에서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감독님에게도 얘기를 드렸는데 '82년생 김지영'은 힘듦을 안으로 삭히는 캐릭터라면, 수진은 진취적이고 스스로 해결하려는 모습이 좀 다를 거라는 말을 해줬을 때 믿음이 갔다"고 밝혔다.
'잠'에서 정유미의 연기 포인트는 '수동적'이었다. 그는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감독님이 하라는 대로만 했다. 시나리오를 직접 쓰신 분이 감독님이고, 전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감정 표현도, 행동도 감독님이 하라는 대로 했을 때 제일 좋다"며 "예전에는 좀 달랐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감독님이 기술적으로 명확하게 얘기해 주시면 제가 그 안에서 노는 게 훨씬 편하다. (연기에) 제 생각이 들어가 버리면 이런 간결한 작업에서는 부담을 드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무조건 감독님께 물어보는 편"이라고 밝혔다.
이어 "개인적으로는 기술을 들키지 않고 연기하는 걸 지향한다. 감독님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게 재밌다. 어렸을 때는 감정을 쏟아서 연기했던 적이 있는데 끝나고 나니까 너무 힘들더라. 이런저런 경험을 하다 보니까 어떤 작품을 할지, 어떤 분들이랑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거기에 맞춰서 움직이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특히 정유미는 영화 속 자신이 부족했던 부분을 이선균이 채워줬다고 밝혔다. 그는 정유미는 '잠'을 통해 이선균과 네 번째 호흡을 맞추게 됐다. 그는 "제가 먼저 캐스팅 얘기가 됐고, 오빠가 나중에 출연할 거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드디어'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에서 제가 부족한 부분을 이선균 배우가 채워줬다. 저보다 평면적인 캐릭터인데 너무 잘 표현해 주셨다"고 밝혔다.
이어 "현장에서 감독님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더라. 그래서 영화 안에서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살아나는 느낌이었고, 영화가 매끄럽게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또한 정유미는 "홍상수 감독님 작품에서는 회차가 많지 않다. 근데 대사가 많고, 촬영할 때 밀도가 어마어마하다. 거기서 훈련이 된 게 있다. 10년 만에 만났지만, 어색하지 않고 첫 촬영은 늘 떨리는데 오빠와는 그런 게 없었다"면서 "홍 감독님 영화에서 비슷한 호흡을 맞췄던 게 제 안에서 편안한 느낌으로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호흡이) 잘 붙지 않았나 싶다. 앞선 작업이 없었으면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는 어색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정유미는 '윰블리'라는 애칭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그는 "나도 모르게 갑자기 불리게 된 별명이다. 진짜 친한 분들은 '윰블리'라고 불러주기도 하신다. 근데 '윰블리'라고 안 불릴 때가 오면 일을 그만두겠다. 거기서 끝내겠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또한 정유미는 '윤식당' 시리즈부터 '여름방학', '서진이네'까지 예능에 출연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기도. 그는 "저를 어렸을 때부터 봤던 분들이면 많이 당황하셨을 거다. 식당에서 일만 하지만, 어쨌든 일상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며 "사실 그 팀과 몇 년에 한 번씩 함께 하는 게 스태프들과 정도 쌓였고, 타이밍도 잘 맞았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멕시코에 갔을 때 (이) 서진 오빠, 서준이와 벌써 6년 됐다고 말하고 깜짝 놀랐다. 드라마로 치면 시리즈물인데 저는 그런 작품을 찍어본 적이 없다. 어떻게 보면 예능도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재밌게 하고 있으니까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감사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예능 출연이 연기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정유미는 "누군가는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그런 시간이 주는 힐링이 있다. 자유를 누리다 보면 저란 사람에 대한 폭이 좀 넓어지는 것 같다"면서 "저는 제가 예능에 출연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연기하면서 '이것도 했는데 내가 원래 했던 연기를 왜 못하겠어'라는 자신감도 생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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