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에서 명장까지' 염갈량의 天下統一(천하통일), 9년 전 흘린 눈물은 성공 신화 씨앗이 됐다

잠실=김우종 기자  |  2023.11.13 21:31
염경엽 LG 감독. /사진=뉴스1
"서울 경(京). 제 이름에 서울이 있네요."

올 시즌 출발을 앞두고 염경엽 LG 트윈스 감독이 훈련 현장에서 지나가듯이 던진 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이름처럼 서울 팀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숙원을 풀었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은 천하통일에 끝내 실패했지만, 염갈량은 마침내 마지막 꿈을 이뤄냈다. 염경엽 감독이 첫 우승 명장으로 탄생한 순간이었다.

LG 트윈스는 1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펼쳐진 KT 위즈와 2023 신한은행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KS·7전 4선승제) 5차전에서 6-2로 승리했다. 이로써 LG는 한국시리즈 전적을 4승 1패로 마무리하며 한국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LG는 이번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클로저 고우석의 9회 난조로 경기를 내줬으나, 이후 내리 4경기를 가져가며 마침내 우승 위업을 달성했다. LG는 지난 1990년과 1994년 통합우승을 차지한 뒤 29년 만에 구단 역사상 세 번째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시간을 잠시 되돌려 9년 전인 2014년 11월 11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넥센(현 키움)과 삼성의 한국시리즈 6차전. 그 시절 언더독이었던 넥센 히어로즈를 이끌던 사령탑은 염경엽 감독, 그리고 상대 팀은 이미 왕조를 구축하고 있던 류중일 감독의 삼성 라이온즈였다. 앞서 3차전과 5차전에서 쓰라린 역전패를 당했던 염 감독은 2승 3패로 밀리며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었다. 결국 6차전에서 이렇다 할 힘을 쓰지 못한 채 1-11로 대패하며 고개를 숙였다. 당시 염 감독은 패장 인터뷰 도중 기자회견장을 잠시 떠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처음 마주한 한국시리즈에서 실패라는 쓴잔을 들이킨 그였다. 염 감독은 "굉장히 아쉽고, 저한테는 잊지 못할 시리즈였다"면서 잠시 나갔다가 들어온 뒤 "정말 우승을 하고 싶었다. 팬들께 그 부분을 채워드리지 못해 죄송하다. 응원해주신 팬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 비록 졌지만 아픈 만큼 얻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다음을 기약했다.

이보다 10년 전인 2004년 11월 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현대 유니콘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 9차전. 당시 염 감독은 현대 유니콘스 프런트의 운영팀 과장으로 있었다. 그리고 현대가 8-7로 승리하며 한국시리즈 우승이 확정되자 염 감독은 축승회를 준비하기 위해 우승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경기장 밖으로 뛰어나갔다. 최근 염 감독은 당시를 떠올리며 "새 신발을 신고왔는데, 택시가 잡히지 않아 행사 준비를 위해 호텔까지 뛰어갔다. 우승 축하 현수막부터 테이블 음식 세팅까지 다 맡아서 했다. 우승 하이라이트 영상도 급하게 받아 겨우 틀었다. 우승 파티 분위기를 만들어줘야만 했기에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겨우 행사가 시작한 뒤 잠시 밖에 나왔는데 눈물이 흐르더라. 이게 과연 내가 뭐하는 거지, 잘하는 길인가. 우승을 했지만 난 주인공이 아니었기에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경험을 한 게 큰 도움이 됐다. 그런 경험을 했기에 프런트를 거치면서 단장까지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2004년 이후 19년이 다시 흘러 29년 만에 LG는 우승을 차지했다. 그 중심에는 염경엽 감독이 있었다. 염 감독은 우승 청부사의 임무를 안고 지난해 11월 LG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현역 시절에는 큰 빛을 보지 못했다. 지난 1991년 2차 지명 1순위로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한 뒤 프로 생활을 시작했고, 2000년 현대 유니콘스에서 현역 유니폼을 벗을 때까지 10년 동안 현역으로 그라운드를 누볐다. 태평양 돌핀스 시절, 그의 이름 석 자를 기억하는 팬들은 많았지만, 화려한 스타 플레이어는 아니었다. 10시즌 통산 타율은 0.195. 늘 염 감독은 자신을 '실패한 1할 타자'라고 공개석상에서 밝히면서, 후배들은 자신과 같은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면서 그는 더욱 마음을 독하게 먹으며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염경엽(오른쪽) LG 감독. /사진=뉴스1
현대 유니콘스 프런트를 시작으로 코치를 거쳐 2008년에는 LG 트윈스로 팀을 옮겼다. 스카우트와 운영팀장 및 코치를 지내며 프런트와 현장을 넘나들었다. 이어 2012년 넥센(현 키움) 히어로즈 사령탑으로 전격 부임한 뒤 2016년까지 4년 연속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많은 감독들이 공부하는 지도자로 변신하며, KBO 리그에 하나의 트렌드를 불러일으켰다. 이어 2017년에는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전신)의 단장으로 부임해 프런트 최고위층으로 경험을 쌓았다. 2018시즌에는 트레이 힐만 감독과 함께 프런트로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했다. 다시 시련의 시간도 있었다. 2019년부터 2년 동안 SK 와이번스 감독을 지내다가 건강 문제로 잠시 팀을 이탈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해 지난해에는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회 위원장과 야구해설위원으로 팬들과 함께 호흡했다.

그리고 프런트와 코치를 거쳐 감독과 단장, 해설위원, 그리고 KBO 기술위원장까지 경험했던 염 감독은 오로지 우승이라는 자신의 마지막 꿈을 이루기 위해 LG 트윈스에 왔다. LG 역시 염 감독이 부임하기 전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강팀의 반열에 올랐으나, 화룡점정을 찍어줄 적임자가 필요했고, 염 감독에게 손을 내밀었다. LG는 시즌 초반 주요 선수들이 부진과 부상 등으로 이탈했다. 때로는 지나치게 '뛰는 야구'를 펼친다며 손에 들고 있는 '스톱워치'가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염 감독은 뚜벅뚜벅 자신의 길만 걸었다. 팀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만들었다. 결국 LG는 6월 27일 1위 자리에 오른 뒤 단 한 번도 선두를 놓치지 않은 채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시리즈에서도 염 감독은 흔들리지 않았다. 1차전을 내준 위기 상황에서도 선수단을 믿으며 독려했고, 이후 내리 4연승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다. 부임 후 "저의 목표는 한 가지로, 구단과 LG 팬들의 목표와 같다. 감독으로 우승하는 게 저의 마지막 꿈"이라고 해던 염 감독이 숙원을 푼 순간이었다. 프런트 과장으로 일했던 2004년과, 언더독의 사령탑으로 있었던 2014년에는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가 끝난 뒤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하지만 2023년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에는 더 이상 비가 내리지 않았다.

염경엽 LG 감독.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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