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 냄새까지 맡는' 완벽주의자 투헬... 英 '민족주의' 버린 이유 있었다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2024.10.18 12:21
토마스 투헬의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선임을 알리는 공식 포스터. /사진=잉글랜드축구협회(FA) 공식 SNS
지난 2001년 독일축구협회는 세계 축구 트렌드에서 뒤처지고 있던 자국 축구에 대한 개혁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독일 프로축구 1, 2부 리그 클럽들의 유소년 아카데미에 대한 투자 활성화였다.

물론 독일 프로축구 클럽들은 협회의 개혁안에 반기를 들었다. 유소년 아카데미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하는 건 클럽 재정에 부담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협회는 젊고 뛰어난 선수를 더 많이 육성하면 궁극적으로 클럽의 선수 연봉 지출이 줄어들게 돼 이익이 될 것이라는 점을 내세워 개혁안을 밀어붙였다.

이후 독일 프로축구 1부리그 선수들의 평균 연령이 낮아지면서 클럽의 연봉 절감 효과가 나타났다. 여기에 독일의 젊은 선수들이 분데스리가에서 더 많은 실전 경험을 갖게 되면서 독일 국가대표팀에도 '젊은 피' 수혈이 원활해졌다. 이 과정을 통해 독일은 2014년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같은 유소년 축구 혁명이 거세게 일어났던 시기에 독일에서는 뛰어난 유소년 축구 지도자들이 많이 출현했다. 그 중 대표격인 지도자가 지난 16일(현지시간)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공식 선임된 토마스 투헬(51)이다.

토마스 투헬 감독. /AFPBBNews=뉴스1
선수 시절 발이 느렸지만 영리한 중앙 수비수였던 투헬은 25세 때 무릎 부상으로 축구화를 벗어야 했다. 그는 축구를 그만두고 낮에는 대학에서 경영학 공부를 하고 밤에는 바텐더로 일했다.

하지만 2000년 그는 슈투트가르트 15세 이하 유소년 팀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축구계로 복귀했다. 이후 2005년 슈투트가르트 19세 이하 팀을 독일 정상으로 끌어 올리며 감독으로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그가 지도했던 슈투트가르트 19세 이하 팀에는 훗날 독일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와 미드필더로 성장한 마리오 고메스(39), 사미 케디라(37)와 헝가리 국가대표팀의 골잡이로 활약한 아담 설러이(37)가 있었다.

까다로운 성격 때문에 선수 시절 친구가 별로 없었던 투헬은 슈투트가르트에서 친근한 지도자로 탈바꿈했다. 그는 어린 선수들과 허물없는 대화로 친구처럼 지내며 팀을 단결시켰다.

바이에른 뮌헨 시절의 투헬 감독. /AFPBBNews=뉴스1
하지만 투헬의 승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단점으로 작용했다. 투헬은 툭하면 심판에게 판정 문제로 대들어 협회로부터 제재를 받기 일쑤였고 클럽 스태프들과 팀 운영의 사소한 문제로 자주 싸웠다. 한 마디로 그는 골칫거리였다. 슈투트가르트가 우승을 거둔 투헬과 재계약 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럼에도 투헬의 완벽주의는 그가 감독으로 성공가도를 달리게 한 원동력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완벽주의에 관한 에피소드는 지난 2021년 5월 27일 영국 신문 '가디언'에 의해 소개됐다.

그 중 하나는 독일 클럽 마인츠 감독 시절 투헬이 다양한 축구 전술을 이해하기 위해 축구 블로거들까지 팀 회의에 모셔와 그들의 의견을 경청했다는 부분이다. 투헬 감독은 그들에게 마인츠 상대 팀에 대한 리포트를 틈틈이 써달라고 요청했다. 투헬 감독은 이 리포트를 바탕으로 상대 팀의 축구 전술과 특징을 더욱 자세히 파악할 수 있었고 실제 경기에서도 요긴하게 사용했다.

투헬의 완벽주의가 여실히 드러나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는 축구장 잔디에 대한 그의 지대한 관심이었다. 그는 마인츠 감독으로 오스트리아에서 훈련할 때 축구장 잔디 길이를 직접 재고 심지어 냄새까지 맡았다. 그래서 비록 실제 계약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 축구장 그라운드를 관리하는 직원을 아예 마인츠 클럽으로 데려오려고 시도했던 적도 있을 정도였다. 경기 중 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모든 상황을 자신의 전략대로 제어하고 싶었던 투헬은 홈구장 잔디마저도 그가 원하는 스타일로 관리되기를 원했던 셈이다.

토마스 투헬의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을 보도한 영국 신문들. /사진=풋볼365 캡처
하지만 투헬이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이 확실시될 때부터 영국 언론은 우려를 표명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15일 "(투헬 감독 선임은) 잉글랜드 지도자들에 대한 모욕"이라며 잉글랜드 축구협회(FA)에 대한 강한 불만감을 드러냈다.

물론 투헬이 잉글랜드의 전통적 라이벌 국가인 독일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같은 불만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투헬을 차기 감독으로 선택한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1966년 월드컵 우승 이래 메이저 대회 트로피가 없는 잉글랜드는 최근 두 차례 유로 대회(2020, 2024)에서 우승 가뭄을 해갈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이했지만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이때마다 전임 감독이었던 가레스 사우스게이트(54)의 전략에 대해 비난이 쏟아졌다. 화려한 이름값의 선수들을 데리고도 전략 부재로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는 게 그에 대한 비난의 주요 원인이었다. 특히 영국 언론들은 유로 2020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사우스게이트가 다소 경험이 부족한 젊은 선수들을 대거 키커로 기용한 점에 대해 맹비난을 했다.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전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AFPBBNews=뉴스1
메이저 대회 트로피에 목이 말랐던 FA가 결국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부족한 1%를 채우기 위해 독일 출신이지만 상대 팀 분석에 탁월한 완벽주의자 투헬 감독을 선택한 이유다.

공교롭게도 잉글랜드가 마지막으로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1966년 월드컵 결승 상대는 서독이었다. 이 우승 이후 영국 사회에서는 "우리는 세 차례나 독일을 꺾었다"는 말이 회자됐다. 그 3번의 승리는 제1, 2차 세계대전과 월드컵 우승을 의미했다.

대표팀 감독 선임에 있어 '민족주의'를 버리고 '실용주의'를 택한 FA의 결정에 대한 평가는 2026년 북중미 월드컵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승리를 위해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한다'는 투헬 감독이 상대 팀 분석은 물론 세계적 스타가 즐비한 잉글랜드 대표팀을 진정한 '원 팀'으로 단합시킬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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