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월드'라는 이름을 미국 프로야구가 차용한 것에는 사연이 있다. 세계 최초의 프로 스포츠 리그인 미국의 NL은 1876년 창설됐다. 그런데 1901년 NL에 대항해 AL이 출범했다.
두 리그는 관중 증대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티켓 가격 인하 등의 출혈 경쟁이 그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곧 두 리그는 지나친 경쟁이 궁극적으로 각각의 리그 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다는 판단 하에 '상생 모델'을 찾았고, 그 결과물이 월드 시리즈였다.
1903년 시작된 이 대결의 공식 명칭은 '월즈 챔피언십 시리즈(World's Championship Series)'였지만 이후 명칭이 간소화되면서 월드 시리즈가 됐다.
이 경기에 '월드'라는 단어가 붙은 이유는 당시 이 시리즈를 후원한 '뉴욕 월드' 신문사의 마케팅 전략과 관련이 있었다.
뉴욕 월드는 각종 스캔들과 살인 사건 등을 통한 소위 황색 저널리즘으로 미국 신문 시장을 장악했다. '퓰리처상'을 만든 조셉 퓰리처(1847~1911)가 운영했던 뉴욕 월드가 주요 스포츠 경기를 많이 후원하며 이를 독점적으로 보도했던 것도 스포츠가 신문 판매 부수 확대 전략에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두 프로야구 리그와 '뉴욕 월드'는 최초로 열리는 이 경기에 '월드'라는 이름을 붙여 더 많은 관중들이 경기장으로 모여들도록 했다. 한 마디로 월드 시리즈가 미국인들에게 세계 최고 야구팀들이 펼치는 경기로 인식되기를 바랐던 셈이다.
이후 '월드 시리즈'에는 그 명칭에 걸맞게 유럽계 미국 이민자 후손들이 대거 출전했다. 독일계 베이브 루스(1895~1948), 루 게릭(1903~1941)과 이탈리아계 조 디마지오(1914~1999) 등 뉴욕 양키스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스타들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는 26일(한국시간) 시작하는 뉴욕 양키스(NYY)와 LA 다저스(LAD)의 2024 월드 시리즈는 121년 만에 열리는 진정한 월드 시리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월드 시리즈는 유럽계 미국 이민자 후손들이나 중남미 출신 선수들이 주축이었지만 이번에는 그 어느 해보다 아시아 선수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다저스에는 아시아 혈통의 선수가 3명이나 된다. 우선 메이저리그(MLB) 최고 스타로 손꼽히는 일본의 오타니 쇼헤이(30)와 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26)가 있다. 여기에 NL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MVP(최우수선수)가 된 토미 에드먼(29)은 어머니가 한국인이다. 그래서 그의 미들 네임에는 한국 이름 '현수'가 들어간다. 심지어 다저스의 감독 데이브 로버츠(52)는 일본의 대표적 미군 주둔지인 오키나와가 고향이다. 그는 일본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상대 팀인 양키스에도 아시아계 선수가 있다. 지난 해 신인으로 AL 유격수 부문 골드 글러브상을 수상한 안소니 볼피(23)가 주인공이다. 그는 비뇨기과 의사였던 이탈리아계 미국인 아버지와 마취과 의사였던 필리핀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이 한국인인 선수도 있다. 올 시즌 AL 홈런왕을 차지한 에런 저지(32)의 형 존슨 저지는 한국인이다. 존슨은 에런과 마찬가지로 미국인 가정에 입양돼 둘은 형제가 됐다.
물론 양키스와 다저스에는 중남미 출신 선수들도 꽤 있다. 양키스에는 도미니카공화국 아마추어 팀에서 포수로 활약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야구를 시작한 후안 소토(26)와 베네수엘라 출신의 2루수 글레이버 토레스(28) 등이 있다. 다저스 불펜 투수 앤서니 반다(31)는 멕시코계 선수이며 2루수 엔리케 에르난데스(33)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이다.
MLB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이민자의 스포츠라는 별칭을 갖고 있었다. 이민 세대 청소년들이 진짜 미국인이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영어도 배워야 했지만 야구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적 배경 속에서 야구는 미국의 국기로 발돋움했다.
21세기 들어 MLB는 중남미와 아시아 선수뿐 아니라 유럽과 아프리카 국적의 선수들도 활약하는 무대가 됐다. 1903년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이름 붙여진 월드 시리즈는 이제 단순히 세계 최고 야구팀간의 경기가 아니라 각 대륙에서 온 다양한 혈통의 선수들이 어우러지는 명실상부한 '세계인의 축제'로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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