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서울시 강남구 EMK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뮤지컬 '마타하리'의 배우 에녹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마타하리'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이중 스파이 혐의로 프랑스 당국에 체포돼 총살당한 아름다운 무희 '마타하리'(본명 마가레타 거투르드 젤르)의 실화를 바탕으로 탄생했다. 에녹은 마타하리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남자로 화려한 삶에 감춰진 마타하리의 이면을 감싸고 사랑해 주는 아르망 역을 맡았다.
에녹은 '마타하리'에 출연하게 된 이유에 대해 "제가 1년 동안 우리 회사(EMK) 소속이 아니었다. '불타는 트롯맨'을 하면서 7명이 한 소속사에서 묶여있었다. 그게 끝나면서 '그래도 EMK로 복귀하는데 EMK 작품을 해야 하지 않나?'라는 당연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작품이든 EMK 작품을 하고 싶었고, 그게 '마타하리'여서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게 '마타하리'여서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제가 안 했던 작품이기도 하고 아르망 역할을 제안받았을 때는 걱정이 많았다. 왜냐면 기존 아르망의 이미지를 봤을 때나 음색을 생각했을 때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오히려 제안받았을 때 도전 욕구가 들더라. 그런 의미에서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마타하리'를 하게 됐다. 또 아르망을 할 수 있는 나이의 마지노선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가지를 생각했을 때 '마타하리'에 다음에 한 번 더 불러주신다면 그때도 라두도 욕심이 난다"고 말했다.
지난 삼연에서 아르망 역을 맡았고, 사연에서도 함께 하는 김성식, 윤소호와 차별화를 생각하진 않았다면서도 "아르망의 순수함을 '하얀 백짓장'이라고 생각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는 "제가 표현할 수 있는 건 아르망도 어린 시절 힘든 일을 겪고 나서 여러 경험과 자기 가치관이 세워진인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찌 보면 하얀색이 아니라 검은색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깨끗한 순수함과는 다른 순수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르망을 하면서 느꼈던 건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유니콘 같은 인물이다. 그런 인물을 극으로 데려왔을 때 너무 유니콘 같은 존재로 비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인간적인 냄새가 좀 더 많이 났으면 했다. 아르망이 가진 기존 캐릭터에 내가 연기할 때는 좀 더 인간적일 수 있게 고민하며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말투나 걸음걸이에서 '나 멋진 남자야'라는 생각을 최대한 버리고, 마가레타를 대하는 말투의 어미나 웃음소리도 좀 더 실생활에서 편하게 내는 걸로 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에녹은 '마타하리'에서 새로운 음색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며 "사실 그 부분이 가장 어려웠다. 노래할 때 제가 쓰지 않았던 음색이나 느낌을 찾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캐릭터에 부여된 노래들이 테너 영역에서 가볍게 부르면 좋을 법한 넘버인데 저는 하이 바리톤에 가까워서 아주 멀진 않지만 어렵더라. 애를 많이 썼다"고 전했다.
18년 차 뮤지컬 배우인 에녹은 지난 2022년 방송된 MBN '불타는 트롯맨'을 통해 기존 뮤지컬 배우라는 경계를 넘어 트로트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했다. 에녹은 '불타는 트롯맨' 톱7에 오르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거머쥐었고, '뮤트롯킹'이라는 수식어를 얻게 됐다.
이어 "부모님이 굉장히 좋아하신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경연에 나간 게 가장 큰 효도였다고 하실 정도로 좋아하신다"고 덧붙였다.
에녹은 소속사 EMK엔터테인먼트에도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는 "사실 '불타는 트롯맨' 출연을 반대하실 줄 알았는데 흔쾌히 해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것도 경험인데 해보라고 하시더라. 그때 많이 들었던 말이 '네가 거기서 못한다고 기존에 네가 했던 활동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 경험이 좋은 영향을 준다면 해보는 게 어때서?'였다. 회사에서도 그런 의미로 허락해 주신 게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지난 10일 개최된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에서 성인가요부문 최우수상을 받기도 한 에녹은 "뮤지컬을 18년 했고, 트로트 2년 했는데 상받는 건 처음"이라고 웃으며 "그 와중에 신선함이 보였던 건 제 뮤지컬 경험을 바탕으로 음악을 풀어냈기 때문인 것 같다. 소감을 얘기하라고 해서 상이 무겁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 상의 무게를 알고 앞으로도 열심히 활동하겠다. 기술적인 부분도 있지만, 언행과 관련해서도 조심하려고 한다. 제가 해야 할 몫을 잘하고, 좀 더 깨어있으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CCM 가수, 공연 조감독으로 일하다 뮤지컬, 트로트까지 시작한 에녹은 "저는 이 흐름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제가 뭔가 억지로 시도한 부분이 아니라서 그런지 이게 내 운명이고, 내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걸어가고 있는 것 같다. 트로트 경연을 나가면서도 제가 여기까지 올 거라고 생각 못했다"고 전했다.
뮤지컬, 트로트까지 그 어느 것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에녹이다. 그는 "뮤지컬의 매력은 종합 예술이라는 것"이라며 "뮤지컬을 하면서는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크다. 감정을 쌓아갈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극을 하면서는 텍스트를 분석하고, 시대를 상상하는 즐거움이 컸다면 트로트는 직접 팬들과 만나서 뭘 좋아하는지 느끼며 음악을 선택한다. 뮤지컬은 한 발짝 멀리 떨어져서 본다면, 트로트는 소통하는 과정이 직접적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트로트 가수로 영역 확장이 뮤지컬에도 큰 도움이 됐다며 "연기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 직접 부딪친 경험이 저에겐 너무 크더라. 무대도 그렇지만, 노래도 3분 안에 희로애락을 담아야 하지 않나. 시골 장터 등에서 노래를 부른 경험이 저에게는 크게 다가왔고, 연기를 하며 좀 더 자유가 생겼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뮤지컬, 트로트 발성은 완전히 다르긴 하다. 트로트를 하다가 뮤지컬을 하면 헷갈릴 때는 있다. 뮤지컬 노래를 부르는 데 순간적으로 '여기서 꺾어야 하나' 혼동이 있을 때가 있다. 습관이 배어져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더라.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이도 저도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만, 둘 다 놓치고 싶지 않다"며 "어떻게 하나로 합쳐질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흐르는 대로 가고 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것저것 하다 보면 '이게 에녹이 가는 길이구나', '이게 에녹의 음악이구나'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싶다. 또 연극과 영화에도 도전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에녹은 팬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며 "저도 무명 시절이 있었고, 그때 제 가치를 알아봐 준 사람들의 응원의 한 마디와 글 하나가 큰 힘이 됐다. 지금도 소중히 갖고 있는 편지가 있고, 힘들 때마다 다시 보게 된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그때의 저는 많이 부족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에녹 배우는 가치가 있으니까 소신 있게 갔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해준 분들이 있다. 저를 버티게 해준 힘"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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