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A에서 재기를 노리고 있는 좌타자 최희섭(36)은 2007년 메이저리그 탬파베이에서 방출된 뒤 당시 미 로스앤젤레스에서 기아 구단 정재공 단장과 입단 계약을 맺고 한국프로야구에 데뷔했다.
그러나 2008시즌까지는 기대에 못 미치다가 2009시즌 조범현 감독 시절 상대 선발이 왼손 투수이거나 오른손이거나 가리지 않고 전천후로 최희섭을 기용해 자신감을 키워주면서 진가를 보여줬다. 최희섭이 결국 실패하고 만 메이저리그 생활과의 차이점이 바로 이 점이었다.
시카고 컵스를 거쳐 플로리다(현 마이애미) 말린스로 이적했던 좌타자(left-handed hitter) 최희섭은 LA 다저스에 이르기까지 상대 선발 투수가 좌완으로 예고되면 선발 1루수 자리를 오른쪽 타자에게 내주고 맥없이 벤치만 지키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보여줘 팬들을 안타깝게 했었다.
메이저리그 특파원 시절 특히 최희섭이 있기에 항상 플로리다 말린스의 경기를 관심 있게 지켜봤던 필자는 그가 단지 상대 투수가 좌완이라는 이유로 제외되거나 교체될 때마다 '만약 최희섭이 스위치히터(switch-hitter)라면 상대 선발 투수가 좌완이든 우완이든 상관없이 매일 경기에 출장할 수 있을텐데'하는 진한 아쉬움을 가졌다. 최희섭은 시카고 컵스에서 2002년 9월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이후 그런 차별(?)을 당할 때면 분명히 스위치히터를 꿈꿔보기도 했을 것이며 뛰어난 스위치히터를 보면 부러움도 들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글쓴이는 최희섭이 미국에서 성장했다면 꿈의 메이저리그로 올라오기까지의 과정에서 여러 차례 스위치히터로의 변신을 권유 받았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과연 그가 우리나라에서 광주일고-고려대를 거치는 동안, 아니면 더 어렸을 적에 스위치 히팅(switch-hitting)에 관한 조언을 진지하게 해준 야구 지도자가 있었을까 궁금하다.
플로리다 말린스에서 당시 74세의 잭 매키언 감독이 상대 선발 투수에 상관없이 꾸준히 기용만 해주었다면 196cm, 115kg의 거구에 괴력을 보유한 최희섭이 분명 한 시즌 30홈런 이상을 칠 수 있었다. 1루수로서 30홈런 이상을 치면 메이저리그에서 특급은 아니더라도 A급에는 속한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잭 매키언 감독은 좌우타자를 보유한 뒤 왼쪽 투수일 때 오른쪽 타자를, 오른쪽 투수일 때는 왼쪽 타자를 기용하는 이른바 플래툰 시스템(platoon system)의 추종자였다.
타자를 구분할 때 좌타자(L), 우타자(R) 외의 하나가 스위치(S) 히터이다. 좌우타석 모두에서 친다고 해서 'S' 대신 둘 다(Both)를 줄여 'B'로 타자의 타입을 표기하기도 한다.
스위치히터가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플래툰 시스템과 상대 타자가 우타자이면 우완 투수를, 좌타자이면 좌투수를 기용하는 상황에 따른 투수 운용법(situational relief-pitching)이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선수 본인은 물론 팀 차원에서도 스위치 히팅을 심각하게 고려하게 됐다.
이에 따라 1960년 한 시즌에 300타석 이상 출장하는 스위치히터가 겨우 4명밖에 없었던 것이 1970년 19명, 1980년 31명, 1990년 40명으로 늘어났다. 현재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40명 로스터에는 100명 이상의 스위치히터가 등록돼 있다.
현재 뉴욕 양키스의 스위치히터 카를로스 벨트란은 마이너리그 싱글A 시절인 1996년 스위치히터로 변신했다. 그는 "나는 항상 메이저리그에서 매일 경기에 출장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적어도 교대로 출장하는 상호 보조격인 외야 요원(backup outfielder)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스위치히터가 되면 더 많은 경기에 출장할 수 있고 칠 기회, 잘 할 기회가 더 많아진다"고 스위치 히팅의 장점을 설명하고 있다.
2012 시즌 후 은퇴해 애틀랜타가 그의 배번 10번을 영구 결별한 치퍼 존스도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스위치 히터였으며 일본 프로야구 세이부 출신 일본인 타자 마쓰이 가즈오도 스위치히터였다. 마쓰이가 휴스턴으로 이적하며 메이저리그에서 버티고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도 스위치히터라는 장점이 작용했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스위치히터로 변신한 이유도 가지가지다. 과거 양키스의 거구 1루수 토니 클락의 경우에는 샌디에이고 교외의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야구를 하다가 친구들이 너무 크고 힘이 세다고 자신을 게임에 끼워주지 않자 "그럼 나는 왼손으로 치겠다"며 어울린 것이 오늘날 스위치히터가 된 계기였다.
그러나 야구를 잘 아는 아버지, 혹은 지도자들이 스위치 히팅의 장점을 설명하며 변신을 권유한 것이 대부분 결정적이었다. 선천적 우타자인 치퍼 존스는 아버지 래리 존스가 33인치 길이의 플라스틱 파이프를 들고 오른손 왼손 교대로 테니스공을 치도록 훈련시켜 스위치히터로 만들었다.
선천적으로 오른쪽 타자인 전 양키스의 버니 윌리엄스의 경우는 전 텍사스 레인저스 감독인 벅 쇼월터가 양키스 마이너리그 감독 시절 스위치히터로 바꾸었다. 처음에 버니 윌리엄스는 완강하게 거부했는데 벅 쇼월터가 양키스타디움의 "오른쪽 펜스가 얼마나 가까운가를 생각하라"며 설득을 했다고 한다.
스위치히터로의 변신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좌우타석에서 보는 스트라이크존의 시각적 차이를 극복해야 하는 것을 비롯해 타고난 것을 완전히 거부하고 전혀 생소한 쪽에 적응해야 하는 고통 등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실제로 J.T. 스노우, 호세 발렌틴 같은 경우는 하다가 포기해 버렸고 최근에는 "타고난 대로 하는 것이 더 하기 쉬운 것 아닌가. 왜 어려운 것을 찾아서 고생하는가"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스위치 히팅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분명 더 많은 경기 출장, 더 많은 타격 기회를 갖게 해준다.
기술적으로는 변화구(breaking ball)가 타자 쪽으로 가까워지도록 날아와 스위치히터는 치기가 유리하다는 확실한 장점이 있다. 오른쪽 투수가 던지는 슬라이더의 경우 오른쪽 타자에게는 공이 타석까지 날아와서 치려고 하면 자신에게서 먼 쪽인 아웃코스로 흘러나가 치기 어렵다. 그런데 같은 상황에서 타자가 왼쪽 타석에 있다면 자신으로부터 도망가는 공이 아니라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공을 칠 수 있다.
스위치 히팅은 언제 시작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간절하게 생각하고 집중해서 노력하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결정 난다는 이론도 있다. 그리고 스위치 히팅은 주로 오른쪽 타자가 왼쪽 타석에 들어서 왼손 투수보다 훨씬 많은 오른손 투수를 상대하기 위해, 좌타석에서는 1루 베이스가 우타석 보다 2걸음 가까워지는 장점 등을 누리려고 좌타자 훈련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좌타자가 우타자 훈련을 해서 스위치히터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제대로 된 스위치히터를 볼 수 없다는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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