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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척척박사] 53. 입추와 말복, 계절의 길목에서

[행정척척박사] 53. 입추와 말복, 계절의 길목에서

발행 : 2023.08.03 10:54

채준 기자
/사진제공=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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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큰 피해를 안겨준 장맛비와 뒤이은 폭염에 많은 국민들이 시름에 잠겨있지만 다음 주 화요일(8월 8일)이 어느덧 입추다.


입추 이틀 뒤(8월 10일)가 말복이니 곧 사람들의 시름도 잦아지겠지만, 삼복더위의 끝물보다 선선한 계절인 가을의 초입이 이틀이나 앞서오는 것은 선조들의 경험과 지혜가 담겨있다.


복(伏)날은 매년 7월에서 8월 사이에 있는 초복(初伏)·중복(中伏)·말복(末伏)의 삼복(三伏)을 말한다. 초복은 하지로부터 세 번째 경일(庚日), 중복은 네 번째 경일, 말복은 입추 지나고 첫 번째 경일이다. 복날은 열흘 간격으로 초복에서 말복까지 20일이 걸리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간이 되기도 하며 이를 월복(越伏)이라고 하는데, 올해가 바로 그 월복에 해당한다. 올해처럼 월복이 드는 해는 더욱 덥게 느껴진다고 한다.


사람보다 계산이 어두운 견공(犬)들 입장에서는 초복, 중복, 말복이 언제쯤 지나가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서 더욱 근심걱정이 클 듯하다. 서양 문화권에서도 일 년 중 가장 더운 때를 'Dog days'라고 칭하는데, 이를 빌미삼아 서양의 개들도 걱정할거라는 '민간어원설'은 사실과 다르다. 동서양의 문화가 다르고, 서양에서는 한여름에 '큰개자리' 즉 시리우스성(Sirius星)이 태양에 근접하기 때문에 이름 붙여진 것이지 '개 팔자'와는 무관한 일이다.


/사진제공=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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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서 '사기(史記)'에 따르면 진나라 덕공(德公) 2년에 비로소 복날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진·한나라 이후 삼복을 기려 조정에서 신하들에게 고기를 나누어 주었으며, 민간에서도 더운 여름에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보충하기 위하여 육류나 영양가 높은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동양의 보편적 사회문화 환경에서 유래한 풍습이 전래되거나 발생하여 전승되는 것이다. 이러한 풍속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삼계탕, 추어탕, 장어탕 등 여름 보양식 소비량이 급증하기도 한다.


한편, 복날에 먹는 '복달임' 음식에는 단순히 음식을 먹는다는 것뿐만 아니라 선조로부터 내려온 '나눔'과 '배려'의 풍습이 배어있다. 궁핍한 삶 속에서도 특정일만이라도 가족이나 이웃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음식을 나눠 먹고 서로 챙겨주며 위무하던 풍속은 매우 인간적이며 아름다운 우리네 전통이다. 복달임뿐만 아니라 천렵이나 정월 대보름과 한가위의 음식 나눔도 이러한 전통의 일단이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조차 없었던 우리 선조들은 삼복더위를 이겨내기 위하여 일손을 놓고 부채를 이용하거나 냉수욕, 또는 참외나 수박 등 제철과일을 먹으며 그늘에서 쉬는 것이 유일한 대처법이었고, 지금의 용산구 동빙고동이나 서빙고동에 보관된 얼음은 오롯이 임금이나 시혜를 받은 소수 관료들만의 특권층 피서 방법이었다.


어쨌든 우리나라에는 신분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보다 대중적인 풍습인 복달임, 또는 '복땜'이라고 하는 음식문화가 있다. 더위를 물리치고 원기를 회복하기 위하여 궁중에서는 육개장을 끓여먹었다는 기록이 있고, 민간에서는 닭개장이나 보신탕을 끓여먹는다는 기록이 보인다. 오늘날 대중화된 삼계탕이나 개고기 식용도 이런 음식문화의 유습이 아닐까 싶다.


최근 서울시의회에서 '개·고양이 식용금지 조례'가 발의되었지만 찬반양론에 휩싸였고, 그 결과가 어떻게 처리될 것인지 아직은 오리무중이다. 동물의 생명권, 동물복지 등 생명존중사상을 중시하는 사람들과 보신탕집이나 육견협회 등 관련 산업 종사자들 간의 갈등은 복날이 지나면 당분간은 잠잠해질 가능성이 높지만, 저잣거리 견공들 입장에서는 통탄할 일이다.


/사진제공=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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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가축 중에서 인류가 가장 먼저 길들인 짐승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물론 개도 소, 돼지나 닭처럼 길러서 잡아먹기도 했겠지만, 농경사회 이전의 수렵목축사회에서 개 사육의 본질적인 목적은 사냥 곧, 수렵(狩獵)이 아니었을까? 수렵이라는 단어의 '사냥할 수(狩)'와 '사냥할 렵(獵)'자에 모두 '개 견(犬)' 부가 붙어있는 것을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개는 가축 중에서도 인간에게 매우 유익한 조력자임에도 매년 여름, 특히 복날이 다가오면 운명의 기로에 선다.


이처럼 유익한 가축인 개는 현대사회에서는 매우 독특한 지위를 획득하였다. 옛날에도 정승댁 개나 부잣집 개는 처지가 달랐겠지만, 요즘은 우리 이웃에서 마주치는 많은 개들도 일부 서민들의 삶 보다 더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애견호텔이니 애견장례업체도 성업 중이라 한다.


옛말에 "개 팔자가 상팔자"라더니 오늘날 개의 지위는 '애완견(愛玩犬)'을 지나 '반려견(伴侶犬)'에까지 이르렀다. 그나마 가난한 이웃보다 우리 집 개의 지위가 더 높아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기실 사람들은 '개망초'나 '개두릅', 또는 '개살구', '개복숭아'에 그치지 않고, '개뿔' 잘나지도 못했으면서 타인을 '개xx'라고 비하하며, 개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 세상만사를 '개떡같다'며 업신여기거나, 아무데서나 '개지랄' 떨며 주변을 '개판'으로 만들거나, '개망신' 당하려고 작정하고 '개소리'를 지껄이기도 한다.


하여, 양식 있는 사람들은 정명(正名), 또는 위장까지 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위무하려 든다. 보신탕은 본래 '개장국'이라 불렀으나 애견인들의 비호감을 염려하여 영양탕, 사철탕 등과 같이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북한에서는 직설적으로 '개고기국'이라 했으나 1985년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단고기국'으로 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절이 이럴진대 굳이 보신탕을 먹고 싶어도 북한에 가기는 어려울 테니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나라를 여행할 기회에 무척 저렴한 비용으로 개고기를 마음껏 먹고 오면 될 일이지 삼복염천에 '게(蟹)거품' 물고 다툴 일은 아니다.


점잖은 사람이라면 차라리 고사리 같은 산나물과 두부, 버섯, 파 등 채소를 넣고 얼큰하게 끓인 '채식 육개장(채개장)'으로 삼복더위를 이겨내면 어떨까? 식물성 단백질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는 시원한 '콩국수'도 여름철 건강에 좋은 별미다. 여유 있는 사람이라면 '초계국수' 같은 족보 있는 음식을 찾아 즐기는 것도 호사로운 일이다.




- 이원태 문화행정연구소ICST 선임연구위원


문화체육 전문 행정사 법인 CST는

문화예술, 콘텐츠, 저작권, 체육, 관광, 종교, 문화재 관련 정부기관, 산하단체의 지원이나 협력이 필요 한 전반 사항에 대해서 문서와 절차 등에 관한 행정관련 기술적인 지원을 포괄적으로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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