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시 우승반지 9개를 따내려면 이런 강심장을 가져야 하는 걸까. 고향으로 돌아온 박혜진(35·부산 BNK 썸)이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위닝샷을 꽂으며 클래스를 증명했다.
BNK는 20일 오후 7시 부산 사직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아산 우리은행 우리WON과 하나은행 2024~2025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5전 3선승제) 3차전에서 55-54 역전승을 거뒀다.
이로써 BNK는 아산에서 열린 1, 2차전을 모두 잡은 데 이어 홈에서 3차전까지 승리하면서 2019년 창단 후 처음으로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성공했다. 또한 2년 전 첫 챔프전에서 우리은행을 상대로 3전 전패를 했던 걸 그대로 돌려줬다.
이번 시리즈의 MVP는 3경기에서 평균 38분 49초를 소화, 12.7득점 2.0리바운드 6.3어시스트를 기록한 안혜지였다. 여기에 이이지마 사키 역시 이에 못지 않은 활약을 펼치며 힘을 보탰다. 반면 박혜진은 1차전 14점을 몰아쳤지만, 2차전에서는 득점을 올리지 못하면서 스탯상으로는 눈에 띄는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박혜진은 수비나 리바운드에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상대 에이스 김단비를 괴롭히며 쉬운 득점을 내주지 않았다. 3차전에서도 팀 내 최다인 7개의 리바운드를 따내면서 후속 찬스를 만들었다.

여기에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결정적인 득점도 올렸다. BNK는 4쿼터 종료 38초를 남겨두고 김단비에게 레이업 득점을 허용해 52-54로 밀리고 있었다. BNK가 공격 기회를 잡은 가운데, 박혜진은 스크린을 거는 척 빠져나와 오른쪽 45도 3점 라인으로 향했다. 안혜지의 패스를 받은 그는 수비가 쫓아오기 전에 3점슛을 던져 그대로 성공시켰다. 55-54 리드를 잡는 순간이었다. 경기 종료 18초를 남기고 나온 극적인 득점이었다.
이후 마지막 수비에 나선 BNK는 우리은행의 계획이었던 이명관의 백도어 컷인을 차단했고, 결국 김단비가 해결에 나섰지만, 박혜진은 끈질기게 김단비를 수비했다. 결국 마지막 김단비의 슛이 림을 맞고 튕겨 나오면서 BNK는 우승을 확정지었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박혜진도 두 팔을 벌려 벤치에서 나오는 선수들과 포옹했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박혜진은 "솔직히 안 믿긴다. 여기 올 때 우승을 바라지 않았다. 팀 옮기고 그동안 한 팀에서 너무 익숙한 농구를 하다 보니 새로운 동기부여를 가지고 분위기 전환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 "우리 선수들을 너무 낮게 봤는지 목표를 플레이오프만 보고 달려왔다. 여기까지 감독, 코치, 선수들이 다 노력했는데 보상받은 것 같아서 행복하다"고 우승 소감을 전했다.
마지막 3점슛 상황에 대해서는 "지든 이기든 내가 책임져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다행히 (안)혜지가 패스 잘 해줬고, 찬스가 나면 내가 해결하려 했는데 다행히 잘 마무리된 것 같다"고 했다.

박혜진은 지난해까지 우리은행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였다. 200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우리은행에 입단한 그는 총 16시즌을 뛰며 8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만들었다. 2014~15시즌부터 3년 연속 챔프전 MVP를 차지한 건 덤이었다. 그런 박혜진이 올 시즌을 앞두고 고향팀 부산을 연고로 하는 BNK로 이적했고, 챔피언결정전에서 우리은행을 만난 것이다.
"그동안 인터뷰에서 '경기일 뿐이다, 집중하겠다'고 했지만 그냥 내가 선택한 것이었는데도 우리은행을 마주칠 때마다 슬픈 감정이 컸다"고 고백한 박혜진은 "처음에는 (정규시즌) 6번만 참으면 된다 생각했는데 챔프전까지 만났다. 위성우 감독님에게는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크다"고 했다.
비록 부상으로 인해 4~5라운드를 날려야 했지만, 박혜진은 팀의 리더로 자리 잡으며 선수들을 독려하고, 채찍질했다. 열정 넘치는 김소니아가 불이라면, 포커페이스의 박혜진은 얼음이었다. 후배 변소정은 승리 직전 자유투를 헌납해 동점을 허용한 후 눈물을 보였는데, 박혜진은 그에게 "코트에서는 절대 울면 안 돼"라고 말해줬다.
그런 박혜진도 눈물을 펑펑 쏟은 적이 있었다. 그는 "여기 와서 눈물 보인 적 없는데 6라운드 삼성생명전 패배 후 라커룸에서 펑펑 울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언니만 믿고 따라오라고 했는데 결과가 좋지 못하면 나한테 불신 쌓일 것 같았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발악한 것 같다"고 전했다.
우리은행 시절 8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이어 BNK에서도 트로피를 들게 된 박혜진. 이제 10번째 우승에 도전하는 그는 "농구공을 잡고 있을 때는 내가 제일 잘하는, 열심히 하는 걸 하면서 다음 시즌을 열심히 준비하고 좋은 결과를 기대할 생각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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