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이하 한예조)이 지난 2일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고(故) 최진실의 사망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다.
연기자, 가수, 코미디언들이 대거 소속돼 있는 한예조 측은 6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한예조 사무실에서 고 최진실의 사망과 관련해 긴급 대책회의를 가졌다. 회의에는 김응석 한예조 위원장과 김영선 부위원장, 이기홍 사무총장, 김태형 탤런트지부장, 문제갑 정책위원 등 5명이 참석했다.
한예조 측은 회의 직후인 오후 12시 30분께 "국민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다음은 한예조가 발표한 성명서 전문이다.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
이번 일로 국민 여러분께 충격과 슬픔에 드린 데 대해 모든 대중문화예술인을 대신하여 참으로 안타깝고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아울러 이 자리를 빌어 유명을 달리하신 고 최진실씨께 동료의 한 사람으로서 삼가 명복을 빕니다.
저희는 오늘 국민 여러분과 함께 울고 함께 웃던 동료 배우를 잃은 비통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망자(亡者)를 잃고 애통해 하는 가족들의 심정을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촬영 현장에서 희노애락을 함께 해 온 동료 선후배 연기자들 또한 감당하기 힘든 깊은 슬픔에 잠겨 망자의 가는 길을 눈물로 지켜 보았습니다.
고 최진실씨는 우리나라 대중문화예술계에서 가장 빛나는 스타의 한 사람이었고,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오뚜기처럼 일어나, 국민들에게 새로운 꿈과 희망을 안겨준 이 시대의 진정한 배우였습니다. 고인은 지난 20년 동안 TV 드라마를 통하여 당대 최고의 여배우로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고, 최근까지 열정적으로 방송에 출연해 왔습니다.
저희는 지난 며칠 동안 고인에 대한 관계 기관의 수사 상황을 지켜보면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던 고인의 고통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무엇이 당대 최고의 스타인 고인마저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일까요. 모성이 지극하기로 소문난 두 아이의 엄마로서, 사랑하는 자식마저 두고 떠나야 했던 고인의 감당하기 어려운 심중의 고통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고 최진실씨는 생전에 남긴 메모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배우조차 피할 수 없었던 대중문화예술인으로서 불안한 삶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는 외톨이에 왕따, 숨을 쉴 수 없다.'
국민들의 관심이 지나쳐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스타들의 일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또한 인기에 따라 삶이 바뀌는 대중문화예술인들의 속성상 하루 아침에 대중들의 시야에서 멀어져, 기나긴 인내의 세월을 혼자 감내할 때의 외로움은 그 누구도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일 것입니다.
이번 고인의 경우처럼 인터넷을 통한 악성 리플까지 가세한다면, 사회의 공인이라는 입장을 고려하더라도 그것은 분명 지나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1. 인터넷 악플에 대한 대책 강구
저희는 인터넷 악플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인터넷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관계기관과 함께 적극 대처해 나가겠습니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악플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을 놓고 논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직접 그 피해를 당해 본 사람들은 인터넷 악플이 얼마나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알 것입니다.
인터넷 악플의 가장 심각한 폐해는 터무니없는 주장이 유포되어도 피해 당사자가 아무런 대응을 할 수 없는 '무자비한 폭력성'에 있습니다. 비록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더라도 대중문화예술인들은 이미 추락해 버린 이미지를 회복하지 못합니다.
인기를 먹고 사는 대중문화예술인에게 이것은 생존을 위협하는 행위입니다. 악플의 최대 피해자인 저희들로서는 어떤 형태로든 악플을 방지하자는 취지에 공감하며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모든 노력에 적극 동참하고자 합니다.
이와 함께 저희는 인터넷 민주주의의 한 표현 방식으로서 댓글문화가 갖는 장점을 훼손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는 정치권의 판단 여부에 관계없이 악플로 인해 더 이상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앞으로 적극적인 피해 구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사회안전망의 보호 절실
국민 여러분.
최근 몇 년 사이에 저희는 수많은 동료 연기자들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연기자들이 우울증에 시달리며, 만성적인 생활고로 눈물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도 병상에 누워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많은 선배 연기자들이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저희는 단지 '연예인'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근로자라면 누구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4대 사회보험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습니다. 연간 1천만원 남짓 되는 소득으로 살아가는 연기자들이 전체의 69%에 달한다고 하면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제작사로부터 출연료를 못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화장실조차 갖춰져 있지 않은 야외 촬영장의 열악한 작업환경은 새삼스런 일도 아닙니다.
저희는 4대 보험을 비롯한 사회안전망의 구축이 너무도 시급한 당면 과제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대중문화예술인 지원에 관한 특별법의 제정과 관련 법 개정을 위한 청원운동을 펼쳐 나가려고 합니다.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지지와 성원을 바랍니다.
3. 법률지원센터 윤리위원회 설치
국민 여러분께서 아시는 바와 같이 저희는 사소한 일상까지 노출의 위험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놓고 도움받을 곳을 찾기 어려울 뿐 아니라,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경험과 이해의 부족으로 많은 불이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저희는 법과 제도의 보호와 지원이 가능한 '법률지원센터'를 설치하여 더 이상 무지와 소외로부터 고통받는 일이 없도록 준비해 나가겠습니다.
이와 함께 사회의 공인으로서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과 의무에 더욱 매진하고, 내부의 규율을 높이기 위한 자구 노력의 일환으로 '윤리위원회'를 구성하여 국민 여러분의 질책과 우려를 해소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4. 방송사 제작사 배우 간 제작환경 개선위원회 공동운영 제의
전세계에 한류 붐을 일으키고, 대한민국이 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하기까지 저희는 방송사 제작사와 함께 우수 문화콘텐츠 생산에 앞장서 왔습니다.
우리의 드라마와 공연에 세계가 감동하고 온 국민이 깊은 관심과 사랑으로 저희를 성원해 주시는 동안, 저희는 이 땅의 대중문화예술인으로 살아온 것이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무대에서 내려와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대중문화예술인이기 이전에 저희는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여 생계를 이어가는 이 땅의 일하는 사람의 일원입니다.
지금 촬영 현장에 만연해 있는 출연료 미지급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임과 동시에 외주제작 시스템의 폐해가 심해지는 현실을 반드시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문제를 내놓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오늘 공식적으로 KBS MBC SBS를 비롯한 방송사와 외주제작사에 대해 '제작환경 개선을 위한 공동위원회' 구성을 정식으로 제안합니다. 이 길만이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외주제작 시스템을 개선하는 유일한 길임을 다시 한 번 천명하는 바입니다.
5. 저희에게 용기를, 유족들에게 위로를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희 대중문화예술인들은 국민 여러분의 사랑으로 존재합니다. 단 한 컷의 짧은 방송이라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촬영에 촬영을 거듭하는 것은 오직 국민 여러분께서 저희의 열정을 알고 갈채를 보내주시기 때문입니다.
국민 여러분께 간곡히 호소합니다.
국민 여러분에게 웃음과 감동을 전해 드리겠다는 일념으로 현장에서 땀흘리는 저희의 노력을 더 큰 사랑으로 성원해 주십시오.
그 감동이 오래 이어질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의 품 안에서 저희 배우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저희를 감싸 안아 주십시오.
이제 무대 위의 최진실은 더 이상 국민 여러분 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안재환도 더 이상 저희 곁에 없습니다. 고인이 가족들의 아픔을 뒤로 하고 세상을 떠난 지금, 유족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시고 위로해 주십시오.
남아있는 저희 동료들은 고인이 생전에 국민에게 감동을 드렸듯이 더 나은 연기로 국민 여러분의 사랑에 보답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가족들과 동료들의 피눈물을 뒤로 하고 떠난 자리에서, 저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시고 그 가족을 위로해 주십시오. 저희는 더 나은 연기로 국민 여러분의 사랑에 보답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2008년 10월 6일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
위 원 장 김 응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