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가 '어게인 2002년'에 속을 끓이고 있다. 한국 축구대표 선수들이 남아공 월드컵에서 선전을 펼치면 펼칠수록 극장에 관객이 뚝 떨어지는 효과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
14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주말(11일~13일) 극장을 찾은 관객은 총 130만 4224명이었다. 이는 이달 첫째 주 주말(4~6일) 165만 4348명보다 무려 35만명이 줄어든 수치다.
1위를 기록한 '방자전'은 경우 토요일인 12일 오히려 평일보다 관객수가 줄었다. 다름아닌 이날 한국 대 그리스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12일 극장을 찾은 관객은 46만여명으로 지난 5일 70만명보다 20만명 이상 줄었다.
영화계에선 악몽 같았던 2002년 월드컵 블랙홀 효과가 올해도 재현되는 게 아닌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당장 17일 이번 월드컵 16강 진출에 분수령이 될 한국 대 아르헨티나 경기가 열린다. 16일 개봉하는 '포화 속으로'는 직격탄을 받을 우려가 있다.
실제 2002년 한일 월드컵에는 극장이 텅 비다시피 했다. 당시 6월 극장을 찾은 관객수는 244만명으로 5월 332만명, 7월 413만명보다 현저히 줄었다. '후아유' 등 당시 개봉작들은 쓴 맛을 톡톡히 봤다.
올해 관객수가 급감한 것은 한국 경기의 시차가 한 몫 한다. 그리스전이 오후 8시30분에 중계돼 오전부터 응원열기가 불붙어 극장을 찾을 관객이 대폭 줄었다. 아르헨티나와의 경기 역시 오후8시 30분에 열리는 터라 극장이 한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이 16강에 오를 경우 극장의 한파는 더욱 지속될 전망이다. 국민이 관심이 월드컵으로 소용돌이처럼 빨려 들어갈 게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의 경우 한국 경기가 새벽에 중계된 데다 16강 진출에 실패해 극장에 큰 영향은 없었다. 오히려 2005년 같은 달보다 관객이 늘었다. 이는 '엑스맨' 등 화제작의 영향도 컸다.
올해도 2002년의 악몽이 되살아날까? 2002년 극장이 썰렁했던 데는 한국의 선전 뿐 아니라 대박영화가 적었던 탓도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관객이 다소 감소했던 것은 한국의 선전과 적었던 시차 탓도 있지만 화제작이 적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일단 '포화 속으로' 뿐 아니라 24일 '맨발의 꿈'과 '나잇 앤 데이'가 대기 중이다. '포화 속으로'는 110억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데다 권상우 탑 차승원 김승우 등 톱스타들이 줄줄이 출연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맨발의 꿈'은 동티모르에 축구 신화를 이룬 실화를 바탕으로 한 터라 월드컵과 맞물려 관심을 끈다.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가 호흡을 맞춘 '나잇 앤 데이'는 올 여름 가장 기대를 모으는 할리우드 영화다.
뭐니뭐니해도 올 6월 극장가 성적은 한국 축구국가대표 선수들의 선전과 밀접한 영향이 있다. 공교롭게도 한국과 나이지리아와의 경기는 23일 열린다. '맨발의 꿈'과 '나잇 앤 데이' 개봉 하루 전이다.
16강을 넘어 8강, 그리고 4강까지 2002년의 신화를 다시 이룰 경우, 7월 극장가도 장담을 못하게 된다. 한국 축구와 영화계의 명암이 어떻게 이어질지, 월드컵 대표 팀의 성적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