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를 보았다' 공개, 피 뚝뚝 흐르는 날고기 맛

전형화 기자  |  2010.08.12 09:54
절차탁마. 군자가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선 자르고(切) 쓸고(磋) 쪼며(琢) 갈(磨) 듯 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부를 이루기 위해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풀이다.


'악마를 보았다'는 김지운 감독의 절차탁마다. 오랜 동안 쌓아온 노력의 절정이며, 글자 그대로 자르고 쓸고 쪼며 가는 영화다.

11일 오후4시50분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악마를 보았다' 기자시사회가 열렸다. 국내 상업영화가 두 차례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초유의 사태를 겪은 터라 영화기자, 평론가,매니저,제작자 등이 득실댔다. 부산영화제 김동호 위원장도 일찌감치 극장을 찾았다.


호기심 가득했던 최초 관객들은 143분 동안 깊숙한 침묵을 강요당했다. 아니 끌려갔다.

'악마를 보았다'는 연쇄살인마(최민식)에게 약혼자를 잃은 국정요원(이병헌)이 철저히 복수를 감행한다는 하이 콘셉트 무비다. 이병헌은 눈에는 눈, 피에는 피라는 단순한 원칙으로 잡은 범인을 풀어졌다가 나주면서 최민식의 목을 죈다. 쫓기던 최민식은 반격을 개시, 두 사람은 피 비린내 나는 결투를 벌인다.


'악마를 보았다'는 할리우드 문법에 충실하다. 사건의 발단과 전개, 반격과 결말까지 머리 뒤편에 송곳을 꽂듯 단순하고 명쾌하다. 김지운 감독은 할리우드 키드로서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김지운 감독은 데뷔부터 다양한 장르에서 웰메이드 영화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한 편의 영화를 하나의 장르로 완성시키기에는 늘 2%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다. 그랬던 김지운 감독은 장르의 모험에서 쌓은 내공을 '악마를 보았다'라는 공들인 탑으로 완성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긴장감의 유지다. 추격과 응징이라는 반복되는 길 위에 살인과 강간, 반전과 액션을 섞어 머리채를 끌고 가듯 관객을 집중시킨다. 비록 롤러코스터 꼭대기까지 올라가기만 할 뿐 하락의 쾌감은 없지만.


김지운 감독은 벽지도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만큼 비주얼에 공을 들인다. '악마를 보았다' 폭력의 묘사도 그만큼 섬세하고 리얼하다. 폭력의 전시와 강간의 유희화가 범죄를 자극적인 볼거리로 나열했다는 비판을 들을 만도 하다. 그럼에도 상상력을 기초로 한 폭력 묘사와 폭력을 이야기를 점층적으로 끌고 가는 방식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영화적이다. 예를 들어 직접적인 도살 장면은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추격자' 등보다 과하지 않다.

특히 또 다른 연쇄살인범 집에서 선보인 액션 연출, 이병헌이 창문으로 뛰어내려 다시 집으로 뛰어들어가는 시퀀스는 '놈놈놈'으로 쌓은 공력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미술과 음악은 이 영화의 숨겨진 주인공이기도 하다.

종종 배우들의 얼굴에 집중한 채 뒤로 숨어있는 듯 한 클로즈업은 영화에 숨막힘을 더한다. 이병헌과 최민식, 두 명배우의 연기는 강간과 살인의 왕국인 듯한 영화 속 세계에 현실을 더한다. 두 배우의 짙은 눈은 어둠을 들여다보면 어둠 역시 들여다보고 있다는 니체의 글귀를 연상시킨다.

물론 '악마를 보았다'는 지극히 마초적인 영화다. 보호할 대상인 여성, 강간의 쾌락을 느끼는 여성, 피를 부르는 복수는 아드레날린 투성이며, 김지운 감독 표현대로 두터운 육질이 느껴진다. 초밥보단 피가 뚝뚝 흐르는 날고기의 육감이다.

반전에서 드러나는 시나리오의 허점과 지나친 마초성은 '악마를 보았다'의 한계로 지적돼야 마땅하다. 박찬욱 감독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노늬는 듯한 인상도 피할 순 없다. 영화에 대한 평은 수박을 가르듯 둘로 쪼개질 게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단점에도 '악마를 보았다'는, 올 한국영화에서 보아야할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올해 나온 최고 스릴러며, 올해 나온 최고 공포영화다. 최근 한국형 스릴러가 소재주의에 함몰되고, 이야기의 허술함을 사이코패스니깐 용서된다는 식으로 스리슬쩍 넘어가는 것을 고려하며 더욱 그렇다.

이제 김지운 감독은 거장까지 1%가 부족할 뿐이다. 김지운 감독이 이 영화를 끝으로 할리우드 진출을 선언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12일 개봉한다. 아시다시피 청소년관람불가다. 영화를 보면 탈진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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