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수진 ⓒ이동훈 기자 photoguy@
"대웅아~". 지난 9월 30일 인기리에 종영된 SBS '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극본 홍정은, 홍미란·연출 부성철)에서 빈번한 대사다. 500년 만에 봉인이 풀린 요괴 구미호 신민아가 "웅아~"를 외치며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면, 박수진은 이 드라마에서 요염하리만큼 낭랑한 목소리로 "대웅아~"를 외치며 사랑 사수 궐기 대회에 앞장섰다.
박수진(25),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는 인간 이승기와 구미호 신민아의 사랑을 그린 이 작품. 박수진은 극중 자신을 짝사랑하던 이승기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신민아를 괴롭혔다. 사람이야, 구미호야? 온갖 권모술수로 사랑을 되찾으려 안간힘 썼다. 덕분일까. 시청자에게 확실하게 각인됐다. 못된 인간 구미호로. 방송 내내 일부 시청자의 미움을 샀다. 대부분 이승기와 신민아의 사랑을 훼방 놓는 행동에 대한 질타. 박수진이 인간 구미호 캐릭터를 잘 소화했다는 방증이다. 얄밉지만 사랑스러운 '혜인'이었다. 박수진 역시 반색했다. 캐릭터에 대한 질타는 배우에겐 즐거울 수밖에.
6일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사옥에서 박수진을 만났다. 하얗디 하얀 피부는 투명에 가까웠다. 입술은 가을의 단풍만큼이나 고운 붉은빛이 감돌았다. 눈빛은 사슴의 눈동자처럼 청초했다. 활짝 웃음에서는 선함이 묻어났다.
"사실 아쉽다. 좀 더 독하고 정떨어질 정도로 마지막에 사건을 일으킬 줄 알았다. 혜인이가 뒷심을 드러내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다. 더 악했어야 했는데…."
배우 박수진 ⓒ이동훈 기자 photoguy@
악플에도 즐거워하는 이유가 있다. "내가 연기자로 전향했을 때 주변인들은 '너는 얼굴이 선하게 생겨서 절대 악역은 못할 꺼야'라고 말했다. 드라마를 하는 동안 가급적 인터넷 댓글을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사실 나에게 쏟아지는 질타가 많더라. 너무 감사했다. 노력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만큼 혜인이화 돼 박수진이 아닌, 혜인으로 보였다는 것에 대해 만족스럽다."
'여친구'는 홍자매 작가의 작품이고 '스타의 연인' 연출자인 부성철PD의 합작품이라는 점 등에서 방송가 안팎에 화제를 모았던 기대작. '혜인'역에 대한 경쟁도 뜨거웠다. 부성철PD와의 미팅, 딱 한 달이 지난 뒤 연락이 왔다. 출연 확정이다. 꼭 해보고 싶었던 캐릭터이기에 박수진은 쾌재를 불렀다. 만세.
"나에게 기회를 주고, 믿어주신 부성철 감독님께 감사하다. 사실 경쟁이 굉장히 치열했던 것으로 안다. 나에게 혜인의 옷을 입게 해주신 부감독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더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했다."
그렇다, 그의 말대로 그는 노력형 배우다. 물론 타고난 재능과 외적 아름다움은 겉으로 드러나지만 여성그룹 슈가 멤버에서 연기자로 전향, 그는 배우로서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다. 노력의 결실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MBC '선덕여왕'에서 함께한 고현정을 떠올렸다. '미실' 고현정이 보여준 '0.5초 미학'이다. 모든 감정을 싣지 않지만 많은 것을 함축한 얼굴표정이 그것이다. 혜인에게서 '미실'의 모습이 묻어난 이유였다. 이 드라마를 위해서도 데뷔이후 줄곧 고수한 긴 머리카락을 잘라냈다. 이 역시 '당연한' 노력 중 하나였다.
"남들이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깨고, 이겨냈을 때 찾아오는 쾌감, 최고다. 연기를 통해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참 매력적이다."
극중 라이벌, 구미호 역할에 대한 부러움은 없었을까.
"(신)민아 언니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미호는 정말 여자가 봐도 사랑스러운 캐릭터고 민아 언니가 너무 잘 살려줬다. 나도 보면서 미호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 언니가 하는 것마다 너무 귀엽고 너무 사랑스러웠다. 언니는 실제 성격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 같다. 연기를 언니와 많이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박수진에게 이 드라마는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의 출연작 MBC '선덕여왕', KBS 2TV '꽃보다 남자' 등은 시청률 면에서 크게 선전했다. 박수진은 두 작품에서 모두 호평을 이끌어 내며 극 초반 시청자 시선 잡기에 일등공신임에는 확실하다. 하지만 마지막엔 그가 없었다. 드라마의 중심인물 이긴 하나 이내 사라지는 역할이었다. 그렇기에 '여친구'는 더 각별하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혜인'을 통해 유종의 미를 거둔 셈이다.
박수진은 '여친구' 방송당시 현장을 방문한 슈가 멤버 한예원과의 사진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가수에 대한 미련은 없을까.
"사실 슈가로 활동하며 4명이 생활할 때의 그리움은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재미가 있었고 힘든지 모르고 살았다. 지금은 혼자 감당해야하고 짊어져야한다. 하지만 가수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 연기가 더 잘 맞는 것 같다. 연기가 좋다."
박수진은 훗날 함께 호흡을 맞추고 싶은 배우로 고현정과 차승원을 꼽았다. '선덕여왕'에서 함께 한 고현정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은 마음에서다. 더불어 연기자로서 실력을 쌓아서 당당하게 연기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차승원의 경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박수진은 "과거 화보 촬영할 때 살짝 마주쳤는데 엄청난 포스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여친구' 종영 일주일째. 아직 그 여독에 빠져있지만 또 다른 성장을 약속한 그다.
"일단 '혜인이'를 많이 미워해주시고 욕해주셔서 감사하다. 나를 응원해주고 사랑해주는 분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이 악물고 했다. 노력하고 발전하고 절대로 제자리에 있지 않는 배우가 되겠다."
배우 박수진 ⓒ이동훈 기자 photogu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