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자카파. 왼쪽부터 박용인 조현아 권순일 ⓒ사진제공=플럭서스뮤직
어느날 갑자기 그 노래가 흘러나왔다. 2009년 7월. 계절에 딱 맞는 커피향 가득한 노래가 미니홈피 BGM을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누구의 무슨 노래야? 게다가 이 노래 '커피를 마시고'가 담긴 앨범이 멤버들이 얼마씩 갹출해 만든 자작 음반이었던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뮤티즌들은 이 노래에 흠뻑 취하면서 생소한 그룹 이름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기 시작했다. 어-반-자-카-파? 무슨 이름이 이래?
1st EP '커피를 마시고', 2nd EP 'Sweety You'(2009)
어반자카파의 결성은 2009년 4월이지만 멤버들의 만남은 더욱 일찍 시작됐다. 멤버 박용인의 말대로 "음악 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2004년이었다. 당시 인천 제일고 1학년이었던 박용인은 인천의 한 실용음악학원을 다녔고, 그 학원에서 당시 중3이었던 조현아를 알게 됐다. 조현아는 재즈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서 학원을 다니던 중이었다. 박용인은 곧바로 조현아에게 노래를 하라고 권유했다. "조현아가 노래를 정말 잘했다."(박용인)
하지만 조현아의 부모는 '절대 반대'였다. 하지만 딸이 MBC '별밤 뽐내기'에서 연말 장원을 하면서 반대는 열렬한 지원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2007년 인성여고 3학년 때부터 보컬 전문학원을 다녔고 그러다 '고딩'이었던 그해 '덜컥' 리쌍 5집(발매는 2009년)에 피처링 보컬로 참여했다. 조현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피처링은 지금까지 한 20~30곡 했을 걸요?" 맞다. "음악 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 것이다.
이러는 사이, 열 살 때부터 팝음악을 좋아했던 조숙한 꼬마 권순일은 특유의 미성으로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를 곧잘 부르곤 했다. 그러다 '초딩' 때 SM엔터테인먼트 노래 선발대회에 참가, 입상을 했고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연습생 동기가 훗날 동방신기가 됐고 슈퍼주니어가 됐다. 하지만 중3때 "공부를 해야 한다"는 부모의 만류로 연습생 생활을 그만뒀고 결국 3년 후 경희대 통역번역학과에 진학했다. "음악을 정말 하고 싶었"던 그때, 고교 동창인 박용인이 어느날 찾아와 불을 댕겼다. "음악 하자!"
그래서 박용인 조현아 권순일 셋은 2009년 4월 처음 만났다. 그때는 지금처럼 보컬그룹이 아니라 R&B 밴드 형태였다. 보컬에 최재만이 더 있었고, 윤지민(기타), 최윤정(피아노), 이지호(키보드), 백하형기(콘트라베이스), 한태용(드럼)이 참여했다. 이들 9명은 두 번째 미니앨범까지 같이 했다. 물론 당시는 소속사도 없었고, 두 앨범 모두 자비로 냈다. 그리고 팀 이름 '어반자카파(Urban Zakapa)'는 "연관 검색어에 아무 것도 뜨지 않는 특이한 이름을 찾으려고" 지었다. '도시적'이라는 뜻의 'URBAN', '눈에 띄는'이라는 뜻의 'ZAppy', '변화무쌍한'이라는 뜻의 'KAleidoscopic', '열정적인'이라는 뜻의 'PAssionate'에서 따왔다. 첫 미니앨범에선 '커피를 마시고'가 말 그대로 눈에 띄며 변화무쌍한 반응을 몰고 왔다.
'괜찮아 네가 없는 나도 괜찮아/ 가끔씩 생각나는 날도 괜찮아/ 사실은 아직도 실감이 안나나 봐/ 이렇게 오늘처럼 비오는 날엔/ 우리 함께 즐겨들었던 이 노래/ 한참을 멍하니 그렇게 웃고 있어/ baby baby 그대는 카라멜 마키아토/ 여전히 내 입가엔 그대 향기 달콤해..'('커피를 마시고')
무엇보다 노래 시작하자마 들려오는 권순일의 미성 보컬이 팬들의 귀를 사로잡았고, 조현아와 박용인의 기계적이지 않은 화음이 절묘하게 리스너들 가슴을 후벼팠다. 여름철 쏴 하고 내리는 빗속에서 떠난 '그대'를 그리워하는 20대 싱어송라이터들만의 감수성, 카라멜 마키아토 같은 향기로 '그대'가 여전히 내 곁에 머문다는, 어반자카파 특유의 시적 감수성은 그야말로 '2009년의 발견'이라 할 만 했다.
"처음 커피숍에서 만났다. '좋다, 커피라는 테마로 곡을 써보자' 이랬다. 그러다 기타를 치고 멜로디를 붙이고 노래를 흥얼흥얼 하다 보니 '커피를 마시고'가 나왔다. 사실 순일이만 빼놓고 우리 모두 커피 마니아다. 어쨌든 노래를 던져놓고 얼마가 지났는데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반응이 곧바로 왔다."(박용인)
"아무 활동도 안했는데 반응이 오니 실감이 안났다. 앨범 제작비를 한 달만에 음원수익으로 회수했을 정도였다. 특히 (3개월 후에 발표한) 미니앨범 2집 수록곡 전곡을 다운로드 하는 것을 보니 '우리한테 믿음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조현아)
1집 <01>(2011)
어반자카파에서 돋보이는 것은 역시 조현아의 가창이다. 오죽했으면 고등학생 때 리쌍에 피처링 보컬로 참여했을까. 특히 2008년 버벌진트 2집 수록곡 'Circles'와 'Leavin''에 실린 그녀의 피처링 보컬은 '노래 잘하는' 정인이 떠오를 정도로 절창이다. 그래서 2009년 버벌진트, 비솝, 산이, 스윙스 등과 함께 한 오버클래스의 2집 'Collage2', 클라우댄서 2집, 크루시픽스 크릭 2집, 그리고 이 해 발매된 리쌍 5집 '백아절현'의 '난 말이야'와 '역마살'은 조현아를 더 알기 위한 필청곡이라 할 만하다.
이쯤에서 조현아와 정인, 리쌍에 얽힌 인연이 재미있다.
"보컬 학원 다닐 때 시험을 잘 봐서 공연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그때 공연에서 기타를 쳐주신 분이 조정치씨(올해 윤종신 하림과 함께 '신치림' 음반을 낸 그 조정치!)였어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조정치씨가 (리쌍과 한솥밥을 먹던) 여자친구 정인 언니에게 저를 추천해줬던 거죠. 당시 리쌍 보컬이 필요했었다고 합니다. 원래 정인 언니랑도 친분이 있었는데 당시 조정치씨 추천을 받고 '이 현아가 내가 아는 현아 맞나?' 싶었다네요. 하하."(조현아)
소속사도 생기고, 3인조 혼성 어쿠스틱 R&B 보컬 그룹으로 팀 정체성도 잡힌 후 마침내 정규 1집이 나왔다. 그 사이 2010년 조현아는 오버클래스 3집에 참여했고, 어반자카파는 당시 알렉스 호란 이승열 박기영 웨일 등 플럭서스뮤직 가수들과 함께 디지털 싱글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도 냈다.
"14곡이 처음 나왔는데 회사에서 타이틀곡을 하나 더 써보라고 했어요. 그래서 부랴부랴 쓴 노래에요. 처음 우리는 '나비'를 타이틀로 생각했는데 '좀 약하다'는 내부 반응이 있었죠. 아무래도 회사에선 좀 더 대중적인 노래를 원했던 거죠. 그래서 타이틀로 정한 노래가 바로 '그날에 우리'입니다. 그 후속곡이 '봄을 그리다'이고요."(조현아)
이런 사연 때문일까. 타이틀곡 '그날에 우리'가 당시 싸이월드 배경음악 1위에 오르며 큰 반향을 일으킨 와중에도, 3번 트랙에 실린 '나비(Fly Away)'에 더 꽂힌 팬들도 적지 않았다. 떠나는 사람 곱게 보내준다는, 님은 떠나지만 나는 보내지 않았다는 식의 애이불비의 노래. 조현아의 보컬은 예전보다 좀 더 순해졌고, 박용인의 보컬은 예전보다 좀 덜 끈적거렸다. 세 사람의 화음은 이 첫 정규앨범에서도 달콤하기 그지없다.
'Fly away butterfly 그대여 나비처럼 날아가요/ 그 언젠가 내게로 돌아오겠죠/ Butterfly butterfly fly away from me/ 작은 바람결에도 그대 느낄 수 있게/..나 바보처럼 그대 생각하다 또 눈물이 나죠/ 드리운 그리움 떨 곳이 없죠/ 내 마음 둘 곳이 없죠/ 마음은 아프지만 웃으며 보내줄게요..'(나비(Fly Away))
3rd EP 'Beautiful Day'(2012)
어반자카파 노래는 대체적으로 R&B 스타일로 묶일 수 있지만 번뜩번뜩 이들 노래에 스민 것은 1980~90년대 팝적 감수성이다. 특히 2012년 나온 이들의 미니앨범 3집은 타이틀곡 'Beautiful Day', 빌 위더스의 80년 원곡을 리메이크한 'Just The Two Of Us' 등 21세기 20대 청춘들이 받아들인 올드팝적 감수성이 넘실댄다. 이들이 콘서트에서 부르는 애창곡도 셀린 디옹의 1996년곡 'All By Myself'(권순일), 브라운 스톤의 1995년곡 'Half of You'(조현아) 등이다. 이들이 2011년 S.E.S의 'Just A Feeling'을 리메이크해 싱글로 발표한 것도 이런 이들의 취향 덕 아닐까.
"저희 세대는 다 S.E.S를 좋아했다. 어렸을 때부터 팝음악을 무지 많이 들었다. 가요도 좋았지만 셋 모두 팝송에는 자신이 있었다. 특히 팝을 요청하는 방송이 많았는데 같이 부를 수 있는 팝송을 찾다보니 'Just The Two Of Us'가 좋았다. 이 노래는 우리들의 공연 레퍼토리가 됐다."(박용인)
어쨌든 이들이 2012년 4월에 낸 'Beautiful Day'는 음원차트에서 핵폭풍을 일으켰다. 타이틀곡 'Beautiful Day'를 비롯해 'Just The Two Of Us', '그댈 안은 목소리' 'Something Special', 'Let It Rain'이 음악사이트 엠넷의 인디차트에서 거의 한 달 내내 2~6위를 싹쓸이했다. 함께 실린 'Just A Feeling'도 8위에 올랐다. 올 봄에 나온 이 음반부터 어반자카파를 접한 팬들도 적지 않았다.
'Beautiful Day 그대 하나하나/ 내게 왜 이리 설레죠/ Beautiful Day 아름다운 그대/ 내 마음 당신을 향하죠/ Beautiful Wonderful Beautiful I'm love/ 내 마음 왜 이리 떨리죠/ Beautiful Day 나는 오늘밤도/ 쉽게 잠들 수 없겠죠..'('Beautiful Day' = "짝사랑할 때의 느낌을 담으려 했다. 방안에 혼자 있을 때 찾아오는 그런 느낌? 원래 다른 분 드리려고 했는데 우리가 불렀다.")
'..매일 꿈만 같은 하늘 아래 그대와 나/ 말은 필요없죠/ 다시 오지 않을 지금 순간의 떨림 은은한 그대의 체취/ You're so special to me..'('Something Special' = "뭔가 특별한 일이 생기길 기다리는 마음과 그런 일이 실제 생겼을 때 기분을 담은 노래.")
'짙은 어둠속에 위태로운 그대 모습/ 많은 사람들 속에 지독히 외로운 날들/ 그대 뒤 맴돌고 있는/ 많은 속삭임 속에도 내 손 잡아요..'('그댈 안은 목소리' = "힘들 때 음악으로 위로해주고 싶었다. 저희가 사랑에 관한 가사를 많이 쓰는데 이 노래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일종의 힐링송이다.")
2집 <02>(2012)
맞다. 이들은 20대 싱어송라이터들답게 주로 사랑과 이별을 노래해왔다. 노래를 만들 당시 계절의 분위기에서 이러한 사랑과 이별의 방식을 찾은 건, 감수성이 시키는 대로 길을 헤맨 이들의 어쩔 수 없는 귀결이다. 2012년 4월에 나온 'Beautiful Day'는 새 인연이 시작된 봄에 더할 나위 없이 딱 맞는 노래였고, 2009년 12월에 나온 'Sweety You'는 흰 눈이 내린 겨울이었기에 지금 내 곁에 없는 그대가 더 포근하게 느껴질 수 있었던 노래였다.
그러면 가을이 무르익던 지난 10월 말 발표한 정규 2집은? 독한 '이별'이었다. 선공개곡 '니가 싫어'와 'River'를 포함해 12곡 전곡이 모두 이별을 다뤘다. '잃게 될까봐 늘 불안해하는/ 상처받은 내 모습이 무뎌져가는/ 이번만은 정말 다를 거라는/ 헛된 바람을 가지고 또 믿음을 주는'('똑같은 사랑 똑같은 이별') 그런 만남이자 예정된 이별이었다. 헤어진 이와 우연히 다시 만났어도 이들의 정서는 그래서 '해주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 수많은 말들을 남긴 채/ 그렇게 스쳐가겠죠'('재회')라고 지레 등 돌리는 상처받은 정서였다.
왜?
"(노래를 만들 당시의) 그때 감정이 그랬다. 밝은 노래를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조현아)
"결국 앨범이란 우리를 (바깥으로) 내놓는다는 것 아닐까. 어차피 우리들 이야기이니까. 대중한테 우리를 심판받는 느낌?"(박용인)
"개인적으로는 연애를 열심히 하는 편이다. 본능적으로 충실한 것이 결국엔 감정적으로 극대화되는 거니까. 대중과 일일이 만날 순 없지만 그분들한테 이러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아닐까. '어, 이거 내 이야기인데'처럼 공감할 수 있게 들려주는 것. 이 소통의 가장 좋은 매개체가 바로 노래 아닐까 싶다."(권순일)
따사로운 봄날 'Beautiful Day'를 흥겹게 부르다 늦가을 '똑같은 사랑 똑같은 이별', 심지어 'No Love'(조현아 솔로)까지 내놓은 이들. 그랬다. 이러는 사이, 계절은 변화무쌍하게 바뀌었고, 어반자카파는 어느새 입에 착 붙는 친숙한 이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