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리', 자살의 굿판 당장 때려 치워라

김경욱 기자  |  2006.09.20 14:22

심청이를 말할 때 항상 그 앞에 붙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효녀'. 어려서부터 접한 전래동화의 영향으로 우리는 '효녀 심청'이라는 말에 큰 거부반응이 없다. 아니, 도리어 '심청이' 하면 효녀가 떠오르고 '효녀'하면 심청이가 떠오르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리라.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생각하는 심청이에 대한 이런 식의 이미지의 바탕에는 심청이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석을 받고 인당수에 몸을 던졌다는 사실 말고는 무엇이 있는지. 이를 두고 과연 '효(孝)'라고 할수 있을까. 우리는 이 전래동화 버젼의 인신매매와 자살 소동에 어떤 근거로 효를 상기시킬 수 있었을까. 자살까지 해가면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강원도 산골마을 무도리. 한자로 없을 '무' 길 '도'의 이름을 가진 이곳은 사람을 아래로 떨어지게끔 홀린다는 도깨비 골이 있는 마을이다. 어느날 자살사이트 운영자인 한 젊은이가 이곳에 찾아와 투신자살하는 일이 일어난다. 이어 인터넷을 통해 무도리는 '천하제일 자살명당'이라는 소문이 퍼지게 되고 전국 각지의 자살희망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조용하고 적적하던 이곳은 자살지원자들로 북적이게 된다.

영화는 이런 무도리라는 닫힌 공간에 외부자들이 스며들면서 생기는 일을 코믹하게 또 가끔은 눈물나게 그린다. 특종을 노리고 마을로 잠입한 방송작가 미경(서영희 분)과 자살도 명당에서 해야겠다는 '살짝' 이해 안가는 자살동호회 회원들. 이런 외부자들과 그들을 맞이하는 무도리 마을의 봉기(박인환) 해구(최주봉) 방연(서희승) 3인방이 얼기설기 엮여 생사를 건 동고동락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화에서 봉기는 우연한 기회에 자살한 청년의 유서를 주워 유족에게 전달한 뒤 엄청난 사례금을 받게 된다. 소금 자루를 짊어지고 개울을 건너던 당나귀가 발을 헛딛여 개울물에 빠진 이후 개울을 지날 때마다 물에 몸을 날린 이야기처럼, 엉겹결에 새로운 사실에 눈뜬 무도리 3인방은 자살하는 사람이 생길 때마다 그의 유품을 챙겨 생활비를 마련하고자 한다. 이들은 이것으로 모자라 아예 자살 대상자들을 상대로 대놓고 민박사업까지 벌인다. 곧 죽을 텐데 돈이 아깝겠어?

죽음을 눈앞에 둔 자살지원자들과 그들을 대상으로 돈벌이를 하려는 무도리 3인방. 그들의 눈에는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의 목숨은 안중에도 없이 머릿수 하나하나가 돈으로 보인다. 그래서 죽음을 말리기 보다는 죽음을 부채질 한다. 자살명당에 잠입한 방송작가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이 죽는 것은 '죽기보다 더 싫어'하면서 남의 죽음을 통해 특종을 잡으려한다.

이처럼 이번 영화에서 한 개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목숨은 누군가에게는 돈 벌이로, 또 누군가에게는 회사에서의 실적으로 여겨진다. 이런 역설이 영화 '무도리' 구조의 핵심 뼈대이며 이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웃음의 기본 코드다.

앞서 당나귀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개울물에 빠져 소금을 녹여보내는 당나귀의 짐을 주인이 솜으로 바꿔 버리는 장면이다. 당나귀의 잔머리야 애교로 바줄 수 있지만 장사 밑천을 잃은 주인의 마음을 생각한다면 짐을 솜으로 대체한 벌은 재법 가볍기까지 하다. '무도리'의 하이라이트 역시 자살로 돈놀이를 하던 봉기에게 물을 머금은 솜의 무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시련과 반전이 닥치는 장면이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석에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의 정성은 갸륵하다. 하지만 자신의 자식을 희생시켜가며 눈을 뜬들 그것이 부모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그리고 자식의 죽음 앞에서 슬퍼할 부모에게는 그것은 오히려 최상의 불효.

'자살'이라는 화두를 독특하게 그린 '무도리'는 이런 '자살'과 '불효'에 대한 이야기다. "죽음의 굿판을 당장 때려 치워라"는 어느 시인의 외침처럼 '무도리' 역시 자살의 굿판을 때려 치우라고 주문한다. 비록 그것이 부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뭐 같은 세상 살기 싫어도 말이다. 왜? 이 영화의 엔딩곡 '해뜰날'처럼 "쨍하고 해뜰 날 돌아온다"니까. 15세 관람가. 오는 2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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