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슬 "나? 지나치게 쿨하다"

윤여수 기자  |  2007.11.29 12:30
ⓒ사진=김병관 기자


"와! 맛있겠다! 너무 예뻐요. 감사합니다."

투명한 유리컵에 초코 시럽으로 모양을 낸 카페 모카가 테이블에 놓이자 그렇게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감탄의 목소리는 맑게 울렸다.

커다랗게 둥글고 검은 눈동자가 뱉어내는 목소리는 '거침없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를 단박에 느끼게 했다.

오는 12월19일 개봉하는 영화 '용의주도 미스신'을 통해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이 된 것도 어울린다 싶다.

한예슬은 "나도 이제 배우예요"라며 스크린에 데뷔한 소감으로부터 인터뷰를 시작했다.

영화 속에서 결혼의 조건을 저울질하며 재벌 3세, 고시생, 연하의 래퍼, 까칠한 이웃집 남자 등과 연애의 줄다기를 벌이다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으로서 한예슬은 인터뷰를 통해서도 실제 자신과 똑같아보이는 캐릭터를 거침없고 솔직하게 드러냈다.

"쿨하다, 지나치게!"라며 한예슬은 자신을 그렇게 드러내고 있었다.

-커피를 좋아하나보다.

▶진한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 커피를 마시면 심장이 뛰고 잠도 잘 못잔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너무 예뻐 사놓긴 했는데 못마신다. 컵에 조금 담아 시럽에, 아이스크림에 이것저것 섞어 마신다. 나도 커피를 잘 마시는 로맨틱하고 우아한 여자이고 싶다.(웃음)

ⓒ사진=김병관 기자


-예민한 성격인가보다.

▶어떤 면에선 그렇다. 또 어떤 면에선 단순하다. 어떤 일에 신경을 많이 쓰면 머리가 아프다.

-쿨한가보다.

▶지나치게. 말을 하더라도 돌려말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화를 낼 상황이면 화내고 정리되면 바로 잊는다. 남자친구에 대해서도 그래서 상대가 서운해할 때도 있다.

-남친?

▶아!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 친구를 말하는 거다.

한예슬은 왜 '믿기지 않겠지만'이라는 전제를 달았을까.

-연애 혹은 이성을 사랑해보지 않았다는 뜻인가.

▶단 한 사람도 내게 '대시'한 사람이 없다. 안믿나본데, 정말이다. 답답하다. 특히 일을 할 때에는 다른 모든 것은 잊는다. 가족들이 미국에 있어서 쉴 때는 미국에 간다. 외출도 잘 하지 않는, '방콕' 스타일이다. 계기도 없고 인연도 없었다. 심지어 전화번호도 자주 바꾸는데 언제 연애를 하나.

영화 속에서처럼 '몇 다리'를 걸쳐본 경험을 물으려는 찰나였지만 그의 답변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결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 것도 그런 그에게는 이미 '준비된 답변' 밖에는 할 말이 없었을 터이다.

▶좋은 남자가 나타난다면 당장이라도 할 것 같은 낭만이 있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 성숙함이 묻어나는 그런 남자 말이다. 하긴, 모든 여자들의 이상형이네. 뭐, 나이가 나보다 어려도 상관없다. 행복하게 사는 여자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가정이 있어야 할 것 같고. 외로울 때 가끔 그런 생각을 하지만 그 때 뿐이다. 지금 내겐 일이 있다.

-행복이라고 했나?

▶20대 초반 철없던 시절, 사회활동을 하면서는 성공해서 돈을 버는 게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나도 커리어를 좀 쌓았고 독립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돈도 벌었다. 그럼 이젠 정신적으로 안정적이고 충만하면 그만이다. 권력과 재력도 정신이 피폐한 사람이 갖는다면 그건 불행이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그런 걸 가질 때 행복한 것 아닐까. 권력과 재력은 그 사람이 가진 모든 걸 극대화해주는 거다. 좋은 사람이 성공하면 다른 사람이 행복하고, 나쁜 사람이 그걸 가지면 다른 사람들이 힘들게 된다.

-당연한 말인데, 참 새삼스럽게 들려온다.

▶잊고 살기 때문이다. 서점에 가면 좋은 말이 씌여진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 깨달음을 자꾸 주기 때문에, 잊고 살기 때문에 새롭게 들리는 거 아닐까.

ⓒ사진=김병관 기자


-'환상의 커플'은 잊지 못할 것 같다.

▶내가 안 보이는 곳에서 칼을 간 뒤에 처음으로 주연한 작품이다. 주연과 주인공은 다르지 않나. 정말 말 그대로 내가 드라마를 이끌어간, 주연작이다. 드라마가 다 끝났을 때 스스로 대견했다. '넌 할 수 있고 해냈잖아'하고 말이다. 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저버린 적이 없다.

그러면서 한예슬은 영화 제목에 빗대 "나는 내게 용의주도하다"고 말했다.

▶영화 속에서 결혼 혹은 사랑을 위해 '몇 다리'를 걸치고 사는 여자가 있다. 현실 속 연애사를 극대화한 얘기다. 아마도 20대 여성이라면 속으로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남자를 만나면서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고르는 것, 그게 잘못된 건가? 조건을 따져보고 시작하지만 그런 사이 상대로부터 편안한 위로를 받는다면 좋은 것 아닌가. 적당한 용의주도함이 필요하다.

-용의주도라.

▶나를 둘러싼 환경이 날 좌지우지하는 게 싫다. 내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 무슨 일이든. 남자도 그렇다. 불안정한 연예 활동을 하고 있는 내게 정신적인 평화를 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다. 서로 모자란 걸 채워줄 수 있는 게 사랑이다.

인터뷰를 끝내고 한예슬이 카메라 앞에 선 뒤 곁에 있던 매니저가 슬쩍 한 마디 거든다.

"미국에서 자라서인지 처음엔 사고방식이 좀 다른 것 같아 보였다. 나중에 보니 그건 매사 정확해야 한다는, 똑부러진 생각 때문이었다."

'쿨하고 용의주도하다'는 한예슬의 말이 되새김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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