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엘로이는 대단한 작가다. 대표작은 이른바 'LA 4부작'(LA Quartet). 그중 'LA 컨피덴셜'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호평을 받았으며 '블랙 달리아' 또한 영화화됐다(나머지 두 작품은 '더 빅 노웨어'와 '화이트 재즈').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는 인물들의 심리를 강인하게 드러내는데, 특히 암울함을 시적으로 그려내는 문장력이 발군이다. '스트리트 킹'은 엘로이가 원안을 썼고 각본 작업에도 참여한 작품이다. 엘로이의 작품치고는 유별나게 현대가 시대 배경이다.
키아누 리브스는 명실 공히 세계적인 스타다. 리버 피닉스와 출연한 '아이다호'를 비롯해 프로필에는 비주류의 길을 걸으려는 의지가 가득하지만, 행인지 불행인지 '스피드'와 '매트릭스' 시리즈는 그를 주류 스타의 자리로 인도했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좋아하고 악역이나 단역도 마다하지 않은 등 나름대로 연기 세계도 확고하다. '스트리트 킹'은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을 맡은 영화다. 대배우 포레스트 휘태커가 함께 출연하기도 한다.
데이비드 에이어는 유명 각본가 출신이다. 'U-571' '트레이닝 데이' '분노의 질주' 'S.W.A.T. 특수기동대' 같은 히트작의 각본을 썼다. '스트리트 킹'은 에이어가 감독에 데뷔한 작품이다.
이처럼 그럴 듯한 이름들이 크레딧을 채우고 있으니 작품 또한 그래야 하건만 어찌된 셈인지 '스트리트 킹'은 이름값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첫 장면부터 진부하다. 지친 표정으로 잠에서 깨고(주인공이 누구인지 드러난다) 총을 매만지고(주인공의 직업이 나타난다) 거울을 보면서(주인공의 정신 상태를 알게 된다), 지금껏 수많은 영화가 걸어온 길을 답습한다. 진부하기는 그 뒤로도 오랫동안 마찬가지다.
영화가 시작되고 30분만 지나면 주인공 톰 러들로가 빠진 함정의 정체가 놀랍도록 선명하게 드러난다. 진정한 악당이 누구인지 아는 것은 말 그대로 시간 문제인데, 장담컨대 그 시간은 결코 한 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물론 범인의 정체가 빨리 드러나는 것이 흠은 아니다. '추격자' 같은 걸작은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범인이 아예 자수한다. 문제는 그 뒤의 전개. '스트리트 킹'은 어지간한 이야기를 어지간한 대사와 연출력으로 그려내는 어지간한 작품이다.
어찌나 밋밋한지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추리 영화처럼 사건이 풀려가는 과정에 집중하기에는 범인의 정체가 너무 뻔하다. 도시의 추악한 진면목을 사정없이 고발하는 데서 통쾌함을 느끼기에 ‘부패 경찰’이라는 소재와 ‘경찰이 경찰을 죽이는’ 설정은 다른 곳에서 이미 써먹을 대로 써먹어 군내가 날 지경이다. '더 쉴드' 같은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만날 다루는 게 그런 사건 아니던가. 그렇다고 대사나 액션이 남다르지도 않다.
‘하우스 박사’ 휴 로리가 연기하는 내사과 우두머리 제임스 빅스 역이 그나마 반전을 이끌지만, 높은 곳에서 얼레를 쥐고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캐릭터가 세상에 빅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패 경찰의 아지트에서 톰 러들로가 냉장고를 방패 삼아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이 그나마 박진감 넘치지만, 영화의 진부함을 통째로 감당하기에 하나의 액션 시퀀스는 너무나 순식간이다. '스트리트 킹'은 별 네 개 만점에 두 개 이상 주기가 어려운 범작이다.
잘난 척 한번 하자면, ‘한국인을 비하했네’ ‘배급사가 언론을 막았네’ 하는 잡소리가 들릴 때부터 시원찮을 줄 알아봤다. 모름지기 걸작은 사소한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는 법이니까.
<김유준 에스콰이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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