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왜 나만 재밌었을까?

김현록 기자  |  2008.07.03 08:34


'사회부 기자들의 세계를 실감나게 그린 전문직 드라마를 보여주겠다.' 그것이 MBC 수목드라마 '스포트라이트'의 시작이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이상 어느 직업이라고 왜곡이 없겠느냐마는 기자는 특히나 심했다. '인어아가씨'처럼 오죽하면 기자가 등장하는 드라마마다 '기자들이 그렇게 한가하냐', '기자가 무슨 옷을 그렇게 입냐'며 왜곡 논란이 벌어지기 일쑤였을까.

드라마를 즐겨 보는 시청자로서, 사회부에서 경찰서를 출입하며 수습 시절을 보낸 현직 기자로서 '스포트라이트'란 기획에 더 마음이 갔다. 기자가 주인공이고 그들의 세계가 주무대인 드라마는 과연 어떨까.

드라마 초반엔 실망이 더 컸다. 탈옥수 신창원을 연상시키는 장진규 사건이 그랬다. 사건을 취재하는 사회부 기자가 경찰보다 먼저 흉악범에게 접근해 수사를 방해하기도 하고, 특종 욕심에 다방 레지로 변장해 여관방에 들어가는 데선 '에이 해도 너무했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드라마'니까 눈감을 수 있다.

세상에 '온에어'의 오승아같은 배우가 없어도, '뉴하트'의 ... 같은 외과의사가 없어도 드라마니까 나올 수 있다. 그런 사람도 있지 않겠느냐 하는 가능성과 추측에 기대서라도 캐릭터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시청자들도 현실과 허구 사이의 아슬아슬함을 원하기 마련이다. 드라마에서 리얼리티보다 더 중요한 건 극적 재미니까.

오히려 '스포트라이트'는 세부적인 묘사에 있어서는 공감할 여지가 더 컸다. 기자란 일이 끊임없이 생활을 침범하는 직업이다. 울리는 전화 한 통에 평화롭던 휴식시간이 비상 근무시간으로 바뀌기 일쑤. 경찰서 기자실에 쪼그려 밀린 잠을 청하다 머리도 제대로 못 감고 현장으로 향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택시를 휴식처 삼는 주인공 서우진의 모습에선 옛 생각이 절로 났다.

인터넷 미디어가 발달하고 전문적 지식과 글빨로 무장한 네티즌들이 활약하는 가운데 언론 정도를 운운하는 지사형 기자가 다 사라졌다는 푸념이 나오는 이때, 대쪽같은 사회부 캡과 열성적 2진기자는 신선하거니와 대견하기도 했다. 열의만으로 덤볐던 신입 시절 생각도 났다. 열연중인 주인공들의 고생, 시사성을 담으려 애쓴 흔적도 훤히 보였다.

그래서 나는 '스포트라이트'가 더 재밌었다. 그런데 웬걸, 한자릿수로 내려간 시청률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역시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MBC 홍보팀은 "기자들은 많이들 재밌다고 하는데…"라고 말끝을 흐린다. '드라마가 실종됐다'는 평가도 속속 올라왔다. 별 부족함 없는 전문직 드라마가 대체 왜?

드라마를 보며, 시청자 게시판을 보며 끊임없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기자를 바라보는 다른 이들의 시선이었다. 끊임없이 사건이 터지고 쉴새없이 바쁘지만 집념의 기자 서우진을 제외하고는 드라마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드라마가 없다는 평가를 보며 더욱 그랬다.

기자 시청자의 입장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변호하자면, 사회부 기자들의 삶이란 원래 사건의 연속이고 정신없이 일이 몰아치기만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한 사람의 시청자의 입장에서 비판하자면, 열혈 기자 생활의 묘사 만으로 시청자들을 붙잡기에는 뭔가 부족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까칠한 톱스타의 섹스 비디오 스캔들이나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수술실은 그 자체가 극적인 드라마다. '의드불패'란 말이 왜 나왔겠나. 그에 비해 공정보도, 국민의 알 권리 지키기라는 기자의 사명 내지 직업적 소신은 정공법으로 풀어내기에 추상적이고 퍽 '재미없는' 이야깃거리다. 다른 전문직 드라마보다 더 정교하게 배합한 특제 양념과 세심한 조리가 필요했다는 얘기다.

마음 약한 서우진이 위풍당당한 캡을 짝사랑하다 헌신적인 후배 2진의 애타는 사랑에 고민하는 3각관계라도 추가됐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화끈한 키스신도 살짝 넣었다면. '말도 안된다'고 아우성치면서도 아슬아슬한 멜로에 가슴 졸이는 시청자가 조금은 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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