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올림픽]복서는 물어뜯고, 레슬러는 팽개치고

신발끈 풀고 100m 세계新, 렌즈 빼고 유도 동메달

장웅조 기자  |  2008.08.25 07:30
↑발로디아 마토스(쿠바)의 심판폭행을 보도한 해외언론

24일로 베이징올림픽은 막을 내렸다. 이번 올림픽은 메달과는 상관없이 황당한 모습을 연출해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던 몇몇 선수 때문에도 인상 깊게 기억될 전망이다.

경기 중 상대방을 물어뜯은 타지키스탄 복서나 심판에게 발차기를 날린 쿠바의 태권도 선수, 시상식에서 동메달을 팽개친 스웨덴 레슬러가 그 '얼굴'들이다.

이와 종류는 조금 다르지만, 신발끈이 풀린 채로 달려 100m 세계신기록을 세운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22)나, 콘택트렌즈가 빠져 앞이 거의 안 보이는 채로 동메달을 따낸 한국의 정경미(23)도 관중에게 황당함을 선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다음은 사건별로 알아보는 올림픽 이모저모.

◆ '타이슨의 후예', 물어뜯는 복서 쿠르바노프
지난 19일 복싱 라이트 헤비급 8강전에서 타지키스탄의 자혼 쿠르바노프(22)는 상대인 카자흐스탄의 예르케불란 시날리예프(21)를 물어뜯어 '제 2의 핵이빨'이란 별명을 얻었다. 17초를 남긴 상황에서 12대 6으로 크게 뒤지게 되자 다급한 마음에 저지른 돌발행동이었다.

시날리예프가 고통을 호소하며 심판에게 상처를 보이자 심판은 쿠르바노프의 실격패를 선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1997년 6월 마이크 타이슨에게 귀를 물린 에반더 홀리필드가 이 경기를 관전해 눈길을 끌었다.

◆ 태권도의 앙헬 마토스, 심판에게 '거침없이 하이킥'
23일 남자 80㎏이상급 3-4위전에서 앙헬 발로디아 마토스(쿠바)는 자신의 기권패를 선언한 심판에게 항의하다가 앞돌려차기로 주심인 샤키르 첼바트(스웨덴)의 얼굴을 가격했다. 자신이 실수로 타임아웃을 연장하지 않아 패배한 책임을 심판에게 '물은' 것이다.

그는 옆에서 말리던 선심들에게도 발길질을 해댔다. 한편 세계태권도연맹(WTF)은 곧바로 집행위원회를 소집, 폭력을 행사한 선수와 이에 동조한 코치에게 영구 제명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 "심판이 불공정해", 동메달 팽개친 아브라하미안
지난 14일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84kg급 시상식에서 스웨덴의 레슬러 아라 아브라하미안은 자신이 딴 동메달을 매트에 팽개쳤다. 심판 판정에 불만이 있어서였다. 아브라하미안은 이날 안드레아 미구치(이탈리아)에게 패한 뒤 심판 판정에 항의했지만 심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제레슬링연맹(FILA)도 다르지 않았다. 아브라하미안의 코치는 FILA에 비디오판독을 의뢰했지만 FILA는 이 요청을 거절했다.

메달을 팽개친 결과 그는 페어플레이 정신을 저버렸다는 비난을 들었고, IOC로부터 동메달을 박탈당했다. 그러나 본인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아브라하미안은 인터뷰에서 "동메달은 신경 쓰지도 않는다. 내가 원한 건 금메달이었다. 이 경기가 내게는 마지막 경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스포츠중재위원회(CAS)는 24일 아브라하미안(스웨덴)의 주장을 수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들은 'FILA는 올림픽 헌장에 따라 심판 판정에 대한 선수의 주장이 타당한지 여부를 충분히 살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그래도 박탈된 메달을 돌려주는 것은 아니다.

◆ 지고 있는데 시간끌기, 미국 복서 러시 워런
13일 복싱 경기를 보고 있던 국내 시청자들은 웃음을 터뜨렸고, TV 해설자들은 일제히 "저 선수 왜 저러죠?"를 외쳤다. 한국 이옥성(27)의 플라이급 32강 상대였던 미국의 러시 워런(21) 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해당 경기에서 30초를 남겨놓고 8-9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공격의 의지를 보이지 않고 이옥성의 주변만 맴돌며 시간을 끌었다. 점수를 착각해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30초가 지나자 심판은 허무하게도 이옥성의 승리를 선언했다.

◆ 신발끈 풀리고도 100m 육상 세계新, 우사인 볼트
16일 육상 남자 100m 결승에서 1위를 차지한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가 신발끈이 풀린 채로 달렸던 것으로 밝혀져 또 한 번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그는 결승선 앞에서 우승 세리머니를 하고서도 9.69초의 세계신기록을 세워 관계자들을 놀라게 한 바 있다. 네티즌들은 그가 정상적인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달릴 경우 어디까지 기록을 세울 수 있는지를 놓고 토론 중이다.

◆ 콘택트렌즈 빠졌는데도 동메달, 여자유도 정경미
정경미는 지난 14일 유도 여자 78kg급에 출전해 경기 중 콘택트렌즈가 빠진 상태에서도 동메달을 따냈다. 정경미는 유럽선수권 우승자 하이데 볼레르트(독일)가 상대였던 8강전에서 한쪽 눈의 콘택트렌즈가 빠졌지만 한팔 업어치기 한판으로 승리했다.

이어서 벌어진 얄레니스 카스티요(쿠바)와의 4강전에선 다시 한번 왼쪽 렌즈가 빠지며 지도패를 당했지만, 곧이어 벌어진 3-4위 결정전에서는 에디난치 실바(브라질)를 경기시작 2분만에 누르기 한판으로 잠재웠다. 양쪽 눈의 콘택트렌즈를 모두 빼고 나섰던 경기의 결과였다.

외신 로이터는 '눈이 먼(blind)' 상태에서 기적적인 메달을 따낸 선수라고 그녀를 소개했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사실 잘 보이지 않는 상태로 경기에 임했다"며 고백했다. 이어 그는 “나는 상대가 가까이 올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바로 앞까지 상대선수가 다가와야 얼굴이 보이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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