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신기 '주문', 2008년판 서태지 '시대유감' 될까?

길혜성 기자  |  2008.12.03 11:41
↑동방신기(왼쪽)과 서태지


1996년까지 국내에서 발매되는 국내외의 모든 음반은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 심의를 받아왔다. 지금은 사라진 공연윤리위원회는 사전 심의를 통해 선정성, 퇴폐성 등 각종 이유를 들며 적지 않은 수의 노래에 대해 '금지곡'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공연윤리위원회의 음반 사전 심의 제도는 지난 95년 발매된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수록곡 '시대유감' 사건을 계기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서태지는 당시 '시대유감'의 가사가 사회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사전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자, 아예 노랫말을 뺀 연주곡 형태의 '시대유감'을 앨범에 담았다.

90년대 문화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대중음악계를 넘어 사회 전체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서태지였기에 '시대유감' 사건도 '창작자 표현의 자유 확대' 대 '사전 심의 제도 유지' 간의 대결 양상으로 번져 사회 전반에 걸쳐 화제가 됐다.

그리고 96년 6월 7일 공연윤리위원회의 음반 및 노래에 대한 사전 심의 제도는 결국 폐지됐다. 1966년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1966년 설립)를 시작으로 한국공연윤리위원회(1976년 설립)와 공연윤리위원회(1986년 설립)까지 계속된 약 20여 년 간의 음반 및 신곡에 대한 사전 심의 제도가 사라진 것이다.

1996년 6월 7일 이후 각 노래에 대한 방송 금지 여부 등은 방송사가 가수의 음반 발매 뒤, 사후 심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있다.

서태지의 '시대유감'이 주요 발단이 돼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 심의 제도가 폐지된 지 12년이 지난 2008년 12월 현재, 가수들과 창작자들은 이번엔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유해판정' 결정에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월 말 발매돼 이미 30만 장 이상이 판매된 인기 아이돌그룹 동방신기의 정규 4집은 지난 11월 27일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로부터 청소년 유해 매체물 판정을 받았다.

청소년보호위원회 측은 동방신기 4집 타이틀곡인 '주문-미로틱'의 가사가 전체적인 맥락에서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이 앨범에 대해 청소년 유해물 판정을 내렸다.

청소년 유해물 판정을 받을 경우, 해당 앨범은 청소년 보호법에 따라 겉면에 청소년 유해 매체물임을 알리는 표시를 해야 하며 19세 미만에는 판매할 수 없다. 이 결정에 따르지 않을 경우 제작사, 유통사, 판매사 등에는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이에 대해 동방신기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는 "청소년보호위원회의 행정명령에 따라 동방신기 4집 '주문-미로틱’의 수정 버전은 제작하겠다"면서도 "납득하기 어려운 판정이므로 관할 법원에 행정처분(유해 매체물 결정)의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제기할 계획"라고 밝혔다.

인기 가수 비도 지난 10월 중순 발표한 5집 타이틀곡 '레이니즘'이 최근 청소년보호위원회로부터 유해 판정을 받았다. 이에 따라 현재 이 앨범은 19세 미만 판매 금지 스티커를 부착한 채 판매되고 있다.

비 소속사인 제이튠엔터테인먼트도 "법에서 지정하고 있는 방침이라 겸허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이는 선정성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 아닌 비의 활동에 대한 차질을 보호하기 위한 일단의 방침을 진행하는 것으로, 과연 선정성 판단의 기준은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처럼 일부 가수들과 창작자들은 자신들의 원래 창작 의도를 청소년보호위원회가 과장 및 확대 해석했다고 주장하며, 법적 절차도 밟겠다는 입장까지 보이고 있다.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유해 판정 결정과 관련한 심의는 과거 공연윤리위원회처럼 사전 심의가 아니다. 또한 아직 가치관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한 절차라는 점에서, 가요계도 그 존재 이유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비와 동방신기의 경우처럼 최근 들어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유해 판정 결정에 아쉬움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창작자의 의도를 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고 있는 상황이다.

청소년 유해 매체물, 청소년 유해 약물, 청소년 유해 물건, 청소년 유해업소 등의 심의 및 결정 등을 담당하고 있는 청소년보호위원회는 비상임 위원장 및 위원 10인으로 구성돼 있다.

위원들의 자격은 ▶판사, 검사 또는 변호사의 직에 5년 이상 재직한 자 ▶대학이나 공인된 연구기관에서 부교수 이상 또는 이에 상당한 직에 있거나 있었던 자로서 청소년 관련 분야를 전공한 자 ▶3급 또는 3급 상당 이상의 공무원이나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공무원과 공공기관에서 이에 상당하는 직에 있거나 있었던 자로서 청소년 관련 업무에 실무경험이 있는 자 ▶청소년 시설ㆍ단체 및 각급 교육기관 등에서 청소년 관련 업무를 10년 이상 담당한 자 등이다.

이와 관련 적지 않은 수의 가요 관계자들은 청소년보호위원회에서 음반 및 노래와 관련한 심의를 할 땐, 최소한 가요 전문가 등 의견 등도 최종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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