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스물 다섯살에 연기를 시작해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성공하지 못하면 연기를 그만 두겠다고 마음먹었다. 무작정 뮤지컬 문을 두드려 단역으로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주인공에게만 쏟아졌다.
TV 드라마에 출연한다고 했다. 부모님은 아들을 보기 위해 TV 앞에 온종일 앉아 있었다. 청년은 드라마에 주인공의 죽은 아들로 등장, 휴대폰에 스티커 사진으로 출연했다.
절치부심했던 청년이 기회를 잡은 것은 스물아홉 때였다. 일일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에 출연한 청년은 비로소 대중에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출연했던 드라마마다 '황진이' '쩐의 전쟁' '뉴하트' 등 경쟁 드라마에 팡팡 깨졌다.
그랬던 청년은 서른둘이 돼 마침내 신인상을 탔다. 그리고 톱스타 김하늘과 영화에서 짝을 이루게 됐다. 강지환이다.
-'7급 공무원'에 코믹한 모습은 '영화는 영화다'보다 드라마 '쾌도 홍길동'과 더 비슷한 것 같은데.
▶ 그래도 '7급 공무원'에 캐스팅된데는 '영화는 영화다'가 더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 영화하시는 분들은 드라마를 잘 안본다고 하시지 않나.
-혹시 언론 기피증이 있나. 데뷔한지는 오래됐지만 인터뷰는 거의 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외부에 알려진 것도 거의 없고. '영화는 영화다' 때도 마찬가지였다.
▶ 작품에 들어갈 때 다른 곳에 신경을 거의 못쓴다. 난 정식으로 연기를 배운 게 아니라 '굳세어라 금순이' 때도 왜 오디션에 붙었는지 잘 몰랐다. 당시에는 매일 매일 살아남아야 한다는 게 최우선이었다. 아는 선배도 없으니 어디서 연기를 배울 때도 없고 오로지 대본만 팠다. 다른 곳에 잠시라도 신경을 쓰면 완전히 감정 몰입이 불가능했다.
그게 습관이 되서 그런지 계속 그런 식으로 대본을 정리하고 한 곳만 팠다.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었고. '영화는 영화다' 때는 일본 일정이 원래 있었는데 개봉이 앞당겨지면서 못했던 것이다.
-무명 시절이 길었다. 주인공을 맡고 나서도 시청률이 경쟁 드라마에 계속 밀리는 시간을 보냈는데.
▶ 스물다섯살부터 연기 시작해서 서른살까지 안되면 포기하겠다고 결심했었다. 안그래도 예민하고 중압감을 많이 느끼는 편이다. '경성스캔들' 때도 나 때문에 안되나, 그러면 어떻게 해야지 돌릴 수 있지, 온통 그런 생각뿐이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도 왜 연기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나.
▶ 제일 처음에는 안되니깐 오기가 생기더라. 뮤지컬을 처음 할 때 일단 돈을 벌어놔야 할 것 같아서 1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다. 그리고 미친 듯이 연습을 했는데 정작 박수는 주인공만 받더라. 사실은 당연한데 그 나이에는 이해가 안됐다.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에는 고두심 선생님의 죽은 아들로 출연했다. 휴대폰 스티커 사진으로만 등장했다. 그래도 아들이 나온다고 부모님이 TV 앞에 앉아서 언제 나오나 기다리시는 것을 보고 눈물이 왈칵 났다. 꼭 주인공을 해야지 마음먹었다.
그리고 뮤지컬 '그리스' 오디션을 보고 주인공이 돼 부모님을 모시고 갔다.
-'90일 사랑할 시간' '경성 스캔들' '쾌도 홍길동' 등 출연작마다 상대 드라마에 시청률에 많이 밀렸는데.
▶ 상도 탈 만큼 다들 좋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마니아는 있지만 반응은 좀처럼 없었다. 그 캐릭터에서 벗어나려고 술로 푸는 나날도 많았다. 그래도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란 생각이 마치 중독처럼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쾌도 홍길동'을 만났다. 물론 '뉴하트'에 시청률에서는 밀렸지만.
-그리고 '영화는 영화다'를 하게 됐는데.
▶'쾌도 홍길동'을 하면서 좀 더 남자다운 작품을 하고 싶었다. 또 첫 상업영화니깐. '영화는 영화다'는 소지섭과 당연히 비교도 될 테고 연기를 까먹지 말자는 생각이 너무 절실했다.
-'7급 공무원'에선 그 허함을 매웠나.
▶잘했는지는 관객이 판단할 몫이지만 난 재가 된 것처럼 모든 것을 다 태웠다. 신태라 감독님이 내가 뒤에 있을 테니 마음껏 해보라고 하더라. 터지기 직전에 있는 화산에 불을 붙여준 격이었다.
매일 촬영을 마치고 매니저에게 '나 오늘 좋지 않았냐'라고 했었다.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감독님과 김하늘씨가 잡아줬다. 적어도 이 작품에선 원없이 했다.
-김하늘과 드라마 촬영 때는 친분이 있었나.
▶그 때는 별 친분이 없었다. 내 연기만 하는 것에도 벅찼을 때니깐. 이번에는 순간순간 하는 애드리브까지 완전히 맞쳐줬다. 이 배우는 언제 터뜨릴지 몰라라면서 완전히 받아주고 더욱 올라가게 만들어줬다.
-독립영화 '방문자'가 사실상 첫 영화였는데 그 경험이 도움이 되던가.
▶단역에 전전하던 때라 주인공이란 말에 무조건 출연했다. 춥고 배고프고 필름값 아껴야 한다는 기억 밖에 없다. 필름값을 아껴야 했기에 대사 토씨 하나 틀릴 수 없었다. 그래도 그 때 스며든 춥고 배고픈 기억이 '굳세어라 금순아' 오디션을 통과시켜줬다. 당시 작가님이 많이 부족한 것 같지만 눈에서 갈구하는 게 느껴져서 뽑았다고 하시더라.
-아직도 많이 목마른가.
▶물론이다. 톱스타도 아니고. 톱배우도 아니고. 한계단씩 올라와 중턱까지 오른 것 같다. 꼭대기는 보이는데 너무 절벽이라 막막하기도 하다. 어떤 작품이 끈이 돼 올라갈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단 시작했으니 정상에 오르고 싶은 게 일차적 목표다. 아직 못 올라가봤으니 어떤 게 2차 목표가 될진 모르겠다.
-유쾌한 모습을 자주 보이지만 실제 성격은 다를 것 같은데.
▶사실 유쾌한 성격은 아니다. 사람도 잘 안사귀고. 다만 이제는 주연으로 분위기를 이끌어야 할 것 같은 책임의식이 있다.
-성공을 하면 할수록 잡음이 들리기 마련인데.
▶그렇더라. 역이 더 커지기에 집중을 더욱 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건방져졌다는 소리도 들리더라. 그래서 회식 때면 제일 먼저 테이블 위로 올라간다. 이런저런 구설수도 들리니깐 더 오픈해야겠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더 움추려들게 된다.
올라가고 있는 것은 같은데 방안에만 있게 된다. 이게 뭐하는 건가 싶더라. 사실 '쾌도 홍길동' 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어 살짝 우울증도 있었다. 그런 게 현재 내 딜레마인 것 같다.
-이제 대본에 집중하느라 주위를 못돌아보는 데서 조금은 여유가 생겼나.
▶'7급 공무원'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더 대본을 팔 것이다. 하지만 조금은 더 여유로워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확 바뀐다는 자신은 없지만.
<저작권자 © ‘리얼타임 연예스포츠 속보,스타의 모든 것’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